- 땅·바다 네모라고 생각한 중국인
- 천주교 전하러 온 마테오 리치의
- 둥근 모양 세계지도 보고 ‘경악’
- ‘산해여지전도’란 이름으로 번역
- 중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지만
- 유교·중화사상·군주천명론 등
- 전통적 가치관 허물기엔 역부족
- 바다는 여전히 공포의 대상으로
마테오 리치(Matteo Ricci)는 31살 되던 해 마카오로 갔다. 중국에 천주교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1582년이었다. 중국어와 유교사상을 배우던 리치는 다음 해 좀 더 내륙인 조경(肇慶)이라는 도시로 옮겨갔다. 리치를 만난 중국인들은 그가 전도하려던 하느님이나 예수님보다 다른 데 호기심을 보였다. 그가 가져온 세계지도였다. 당시 중국인의 눈에 리치의 지도는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그 지도에는 중국인이 생전 처음 보는 아메리카 대륙이 있었다. 스스로의 문명을 최고라 자부하던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대륙이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그것에 더하여 둥그렇게 그려진 땅과 바다의 모습은 중국인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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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베이징 천단공원에 있는 원구. 사진 출처=천단공원 www.tiantanpark.com |
그때까지 중국인은 땅과 바다는 네모나고 하늘은 둥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이라 했다. 땅과 바다는 당연히 네모나다고 생각하는 중국인의 눈에 둥그런 땅과 바다 즉 지구(地球)는 선뜻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중국인은 세계지도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고 결국 한문으로 번역해 달라고까지 했다. 리치는 1584년 지도를 한역하고 ‘산해여지전도(山海輿地全道)’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지도는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지방(地方) 개념 대신 지구 개념을 확산시켰다. 명나라 말 대표적 백과전서 ‘삼재도회’에도 ‘산해여지전도’가 실리기까지 했다. 조선에는 1708년(숙종 34년) ‘곤여만국전도’라는 이름으로 모사본이 전해졌다. 이렇게 ‘산해여지전도’가 확산되면서 지방 개념이 사라지고 지구 개념이 유행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지방 개념은 유교사상과 중화사상의 핵심 개념일 뿐 아니라 군주천명 이론의 핵심 개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왜 주역엔 해(海)나 양(洋)이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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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테오 리치(1552~1610)가 중국에 가져가 한문으로 번역한 세계지도 ‘산해여지전도’. |
지방 개념과 지구 개념은 땅과 바다 모습에 대한 생각뿐 아니라 땅과 바다의 속성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게 만든다. 지구 개념에 따라 그려진 ‘산해여지전도’를 생각해보자. 둥근 지구 안에 여러 대륙과 섬이 바다 여기저기 흩어져 존재한다. 그런 공간 구조에서는 특정 대륙이나 섬이 지구 중심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또한 대륙과 섬은 크기에서 차이가 날 뿐 본질적인 차이를 갖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대륙과 섬에 사는 사람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나아가 대륙과 섬에 사람이 산다면 당연히 바다를 건너 교류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이런 생각에서 바다는 대륙과 대륙을 잇고 섬과 섬도 이으며 사람과 사람을 소통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공간으로 간주된다. 즉 지구 개념에서는 땅과 바다 및 사람에 대해 산만, 교류, 평등 방식으로 생각하게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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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네모난 땅이 있고 그 사방을 거대한 바다가 둘러싼다는 지방 개념을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땅에 모여 살 뿐 바다에서 살지 않는다. 당연히 지방 개념에서는 변두리 바다보다 중앙의 땅이 중심 공간으로 보이게 된다. 땅 중에서도 가운데가 중심으로 보이게 된다. 바로 그 네모난 땅의 한가운데 중국 사람들이 독점적으로 모여 산다는 생각이 중화사상의 핵심이다. 아울러 섬은 원래 네모난 땅에 붙어있어야 할 것이 잘못 떨어져 나간 것으로 간주되어 비정상적인 땅으로 보인다. 이런 생각에서 땅과 섬은 평등하지 않게 보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네모난 땅 중에서도 가운데와 변두리는 평등하지 않게 보인다. 그래서 네모난 땅의 가운데 부분과 변두리 부분에 사는 사람 나아가 섬에 사는 사람은 평등하지 않게 보인다. 네모난 땅에 사람이 모여 산다면 굳이 바다로 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땅을 벗어나 바다로 나가려는 사람이 있다면 뭔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것으로 의심된다. 이에 따라 지방 개념은 땅과 바다 및 사람에 대하여 집중, 폐쇄, 차별 등의 생각을 하도록 작동한다.
천원지방 사상에서 바다를 어떻게 보는지는 최고의 유교경전이라는 ‘주역’에 잘 나타나 있다. ‘주역’에는 해(海)나 양(洋) 등 바다를 직접 표시하는 용어 자체가 없다. 단지 감(坎)이라는 용어로 바다를 비롯해 강, 호수 등을 포괄할 뿐이다. ‘주역’에서 바다가 별로 중요시되지 않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주역’에서 바다를 상징하는 감이란 움푹 파인 구덩이라는 뜻이다. 구덩이는 생명을 빠뜨리는 위험한 존재로 간주된다. 움푹 파인 구덩이는 텅 비었기에 무엇인가 받아들이는 존재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 구덩이에는 물이 차 있다. 그래서 감괘(坎掛)는 구덩이, 위험, 공허함, 물, 강, 바다 등을 상징한다. 천원지방 사상과 ‘주역’ 감괘를 결합해보면, 감은 네모난 땅 안의 것과 밖의 것으로 양분된다. 구덩이 위치뿐 아니라 구덩이에 차 있는 물의 성질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네모난 땅 안의 구덩이에 물이 차면 우물, 연못, 호수, 강 등이 된다. 이런 곳의 물은 대체로 민물이고 마실 수 있으며 바다로 흘러간다. 네모난 땅 밖의 구덩이에 들어찬 물은 바다가 된다. 바닷물은 짠물이고 얼른 보면 고인 물로 보인다. 그런데 ‘주역’에서는 물의 본성을 ‘윤하(潤下)’라 하였다. 아래로 흐르며 만물을 윤택하게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윤하하는 물이 정상적인 물이고 그 물은 민물이다. 반면 흐르지도 않고 짜서 마실 수도 없는 바닷물은 물의 본성을 잃은 위험한 물이다. 이런 생각으로 바다를 바라보면 바다는 위험한 짠물이 가득 찬 구덩이일 뿐이다. 그래서 바다는 공포의 대상 또는 금지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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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 지단공원의 방구. 사진 출처=지단공원 www.dtpark.com |
■바다를 ‘없는 공간’으로
지방 개념이 군주천명 이론과 결합하면 바다는 아예 없는 공간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중국에서 군주천명 이론은 원구단(圓丘壇)과 방택단(方澤壇)으로 상징됐다. 원구단은 군주에게 천명을 내리는 둥근 하늘 즉 원구(圓丘)가 설치된 제단이다. 전통시대 유교 문화권 국가는 천명을 받은 군주의 통치권을 드러내고자 궁궐 앞쪽에 원구를 설치하곤 했다. 궁궐 뒤쪽에는 군주 통치권이 행사되는 땅을 표시하기 위해 방택(方澤)을 설치했다. 방택은 ‘택중지방구(澤中之方丘)’를 줄인 말로 ‘연못 속 네모난 언덕’이란 뜻이다. 그래서 방택은 방구(方丘)라고도 했다. 당연히 방구는 천원지방의 ‘지방’을 상징하고, 방구 아래 연못은 사방 바다를 표상한다. 이런 원구와 방구의 표준이 명나라 때 자금성 앞뒤에 건설된 원구단과 방택단이었고 천지단으로 통칭됐다. 천지단은 청나라 때도 이어져 현재의 천단공원과 지단공원이 됐다.
한국은 고려 때 원구와 방구가 설치됐고, 대한제국기에 원구가 설치됐다. 현재 자금성 뒤쪽 지단공원 내 방구는 붉은 벽돌로 쌓은 2층 네모난 제단 그리고 그 제단을 둘러싼 평지로 이뤄졌다. 2층 네모난 제단은 네모난 땅 즉 지방을 상징한다. 네모난 방구를 둘러싼 평지는 사방 바다를 표상한다. 본래 방구 아래는 그곳이 바다임을 드러내기 위해 연못으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평지로 바꾼 이유는 아예 바다가 없었으면 하는 생각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유교사상, 중화사상, 군주천명 이론이 연결된 지방 개념을 리치의 세계지도가 일거에 지구 개념으로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리치의 지도 전래 뒤로도 오래 한국과 중국에서는 지방 개념이 유행했고 바다는 여전히 험하고 짠 물구덩이로 간주됐다. 그것을 넘어서는 지구 개념이 정착되려면 중화사상과 군주천명 이론의 해체가 필요했다.
신명호 부경대 사학과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사학과, 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