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낮다 하시면 이층, 삼층으로 올려드리겠어요. 마당이 더럽다면 마당을 쓸어 드리지요. 시궁창이 막히면 시궁창을 뚫어 드릴게요. 하찮은 일부터 큰일까지 집안의 대소사를 제가 다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저를 사위로 삼아주세요.”
 |
| 부처님에게 귀의한 사람은 우주 법계를 가득 채우고 있는 깨달음에 녹아든다. 사진은 파키스탄 라호르 박물관에 있는 ‘고행하는 부처상’. 국제신문 DB |
부처님 나라에 진리를 구하러 가던 저팔계가 예쁜 세 딸을 둔 과부를 만나 자기를 사윗감으로 추천한다. 완전히 종노릇하겠다는 건데 이럴 거면 뭐 하러 사위가 되려는 걸까? 이에 과부는 저팔계에게 신부 잡기 놀이를 제안한다. 눈을 가리고 아무나 잡으면 그 딸을 아내로 주겠다는 것이었다. 눈을 가린 저팔계가 보니 패옥 소리 짤랑대고, 난초 향기 풍겨오는 것이 세 딸이 방에 있다는 것이 분명하였다. 팔계는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딸들을 잡으려 했지만 좀처럼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낭패였다.
세 딸의 이름은 진실, 사랑, 아름다움이었다. 팔계는 이 궁극적 가치를 여자를 소유하듯 내 것으로 소유하고자 한다. 진실, 사랑, 아름다움은 모든 곳에서 패옥 소리, 난초 향기처럼 확인된다. 다만 특별한 모양에 한정하여 그것을 찾는다면 100% 실패한다. 도대체 사랑이 길고, 짧고, 모나고, 둥근 무엇으로 특정되는 무엇이던가? 진정한 사랑은 우주 법계에 공기처럼 퍼져있고, 바닷물에 소금처럼 녹아있고, 버터에 기름처럼 배어있다. 진실과 아름다움 역시 그러하다. 이것을 특별한 무엇에서 따로 잡으려니 될 일이 아니다. 저팔계는 이렇게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다가 주둥이가 터지고 머리에 멍이 들어버렸다. 그래서 두 손을 들고 하소연한다.
“장모님! 따님들이 너무 미끄러워서 잡을 수가 없습니다. 어떡합니까?”
“이렇게 하세. 내 딸들이 솜씨가 좋아 진주를 박은 비단 속옷을 한 벌씩 만들었네. 자네가 그것들을 입어서 몸에 맞는 것이 있으면 그 딸을 아내로 주겠네.”
저팔계가 좋아하며 진주 속옷을 입자마자 옷에서 밧줄이 자라나 온몸을 칭칭 묶어 버린다. 세상에 진주가 있다면 밖으로 내놓지 그것을 속옷에 감출 일은 없다. 불교적으로 보자면 지금 당장 하찮은 이것들이 부처라는 진주가 드러난 자리다. 저팔계는 이것을 버리고 어디엔가 진주로 만든 속옷과 같이 남몰래 숨겨진 특별한 부처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찾아내어 나의 것으로서 소유함으로써 남다른 존재가 되고자 한다.
사실 이 과부의 성은 ‘가짜’였고, 죽은 남편의 성은 ‘없음’이었다. 어머니의 성을 붙이면 세 딸은 가짜 진실, 가짜 사랑, 가짜 아름다움이 된다. 아버지의 성을 붙이면 특별한 모양의 진실은 따로 없음, 특별한 모양의 사랑은 따로 없음, 특별한 모양의 아름다움은 따로 없음이 된다. 진리를 찾는다 하면서 특별한 모양에 의미를 부여하고, 내가 그것을 성취하는 주인공이 되려는 한, 그는 진주 속옷의 밧줄에 묶인 저팔계다.
바야흐로 봄이다. 진정으로 봄을 즐기는 사람은 봄에 녹아들지, 봄을 소유하려 하지는 않는다. 깨달음 역시 그렇다. 진정으로 부처님에게 귀의한 사람은 우주 법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이 깨달음에 녹아든다. 만약 내가 깨달음을 소유하는 주체가 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저팔계다.
동의대 교양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