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의 서방 vs 사악한 중동
- 그릇된 이분법 수용이 문제
- 농경사회 인도의 소는 큰 재산
- 고기 못먹게 하려 종교가 필요
스타일리시한 영상과 박력으로 세계 관객을 홀린 영화 ‘300’이 서양 중심 사관으로 똘똘 뭉친 역사 왜곡물이라는 비판은, 개봉 당시 그 인기만큼이나 거셌다.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공을 다룬 이 영화에서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1세는 음험한 눈빛에 주술에 의존하고, 온몸 피어싱을 한 야만인으로 묘사됐다. 흑마술사와 영혼 없는 살인귀로 구성된 그의 군대는 기세등등 그리스로 쳐들어오지만, 레오니다스 왕이 이끄는 300인의 스파르타군에 판판이 깨지다가 비열한 방법을 동원해 승리를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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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중심적 시각과 오리엔탈리즘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영화 ‘300’. |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압도하는 문명 대제국이었다는 사실, 애초 이오니아를 침공해 전쟁을 촉발한 것은 아테네라는 사실, 전쟁광으로 묘사된 크세르크세스 1세는 선왕의 유지를 받들어 2차 그리스 원정에 나섰지만 그다지 의욕이 없었다는 사실 등을 무시한다 해도 이 영화가 어떤 종류의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현대의 패권을 쥔 서양인은 그리스를 ‘내 편=정의’로, 페르시아를 ‘적=악’으로 드라마를 쓰고 싶어 한 것이다. 놀랍게도 이 ‘전쟁’은 현실에서도 진행형이다. ‘정의의 서방 vs 사악한 중동’은 세계의 지배적 관념이다. 서양인 아닌 우리조차 중동 석유를 둘러싼 이권 다툼, 제국주의 시대부터 이어온 서방의 정치공작,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 등 복잡한 문제에는 눈감은 채 이런 이분법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 뿌리가, 타 문화권을 ‘타락한 죄인’으로 본 중세유럽 기독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문화심리학자 한민이 쓴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는 어떤 문화가 어떤 문화보다 태생적으로 우수하다는 사회진화론적 관점을 다시 한 번 반박하고, 문화상대주의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소고기를 못 먹는 힌두교도, 돼지고기를 안 먹는 이슬람교도를 ‘이상하다, 비합리적이다’ 나아가 ‘광신도’라고 규정하는 것은 문화상대주의 관점을 전혀 익히지 못한 태도다. 소는 인도 농경사회의 큰 재산이었기에, 유목 생활에 부적합한 돼지를 아랍 유목민이 기르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이들 고기를 아예 안 먹는 금기가 생겨났지만, 맛이 환상적인 이들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려면 ‘신의 명령’ 즉 종교의 힘까지 필요했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서도 ‘비정상적인’ 식문화를 비판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 문화에 관해서도 무릎을 칠 만한 분석이 많다. ‘정’이나 ‘한’ 같은 정서를 외국인은 이해할까. 사랑하는 마음, 슬퍼하는 마음이라는 인간 보편의 정서는 있지만, 한과 정은 그런 보편개념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저자는 서양 심리학에 의존해서는 한국인의 심리, 특히 문화심리를 제대로 알기는 힘들다고 말하며, 우리 심리는 우리가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의 미덕은 재미다. 책 전체는 쉽고 흥미로운 사례로 엮었고,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저자가 말하려는 문화심리학적 이론이 기다린다. 그건 그렇고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 힌트를 주자면 1930년대 미국 대공황과 관련이 있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