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보물섬’ 주인공 실제모델

- 뉴욕서 명성 쌓아가던 키드선장
- “식민지 주변 해적 소탕해 달라”
- 뉴욕·메사추세츠 총독 요청 수용
- 잉글랜드 국왕 윌리엄 3세에도
- 적국 선박 약탈 권리 부여 받아

- 무굴황제 가까운 귀족 화물 실린
- 적 프랑스 깃발 단 상선 나포 후
- 분쟁·자신들 정치적 입지 우려
- 후원했던 정치인들 모두 등돌려

- 해적·살해혐의로 본국으로 압송
- 47세 나이에 잉글랜드서 교수형

내 또래 장년층 대부분 어린 시절 읽어봤을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이라는 그림책이 있다. 이 책에는 외딴 섬의 보물을 찾아 헤매는 해적선 선장 롱 존 실버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실제 존재했던 윌리엄 키드, 혹은 키드 선장이라 불리던 인물을 모티브로 창작되었다.

스티븐슨의 소설 ‘보물섬’에 나오는 해적 롱 존 실버의 모델이 된 키드 선장의 초상화와 국가가 키드 선장을 잡기 위해 뿌린 전단 그리고 교수형에 처해진 키드 선장 그림.

키드는 앞서 설명한 드레이크(국제신문 지난달 17일 자 22면)와 비교한다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 권력을 쥔 정치가들의 배신 탓에 1701년 47세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교수형에 처해진 그의 시신이 해적 행위에 대한 처벌의 본보기로 3년간 효시되었다 하니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한 셈이다. 국가 권력에 의해 철저히 버림받은 비운의 해적이었다.

■‘국가의 부름’ 받은 키드

키드의 출생지는 스코틀랜드의 던디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목사라는 설이 있지만 여전히 단언할 수는 없다. 키드의 행적이 더 명확히 드러난 시기는 그가 식민지 아메리카의 뉴욕에 진출한 뒤부터다. 1691년 30대 후반의 키드는 20대의 부유한 미망인과 결혼해 어느 정도 재력을 확보했다. 그는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남아 있는 트리니티 교회 건립에 도움을 주고 지역의 정치인과도 교제할 정도로 명망을 쌓아 나갔다.

뇌물 수수혐의로 윌리엄 3세에게 파직당한 벤자민 플레처를 대신해 뉴욕과 메사추세츠 총독으로 임명된 벨로몬트 백작 리차드 코트가 키드와 관계를 맺은 유력 정치인 중 하나였다. 이러한 사회적 지위의 키드가 결국 ‘해적’으로 처형된 배경은 무엇일까? 키드와 친분이 있는 벨로몬트 백작은 식민지로 들어오는 물건을 약탈해 식민지의 경제적 이익을 위협하는 해적 토마스 튜, 존 아일랜드 등의 제거를 키드에게 요청했다. 잉글랜드 국왕 윌리엄 3세도 키드에게 잉글랜드 식민지의 적국 선박을 나포해 이에 따른 이익을 챙길 권리를 부여했다. 단, 나포에 따른 경제적 이익의 10%는 국왕에게 귀속된다는 단서조항도 있었다.

■어드벤처 갤리호의 ‘무례’

키드는 이런 사략선 선장의 조건을 수락하고 1695년부터 본격적 활동에 나섰다. 키드는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대략 300ｔ에 34문 대포를 갖추고 150명 선원을 승선시킬 수 있는 사략선 ‘어드벤처 갤리’호를 구입했다. 키드가 정치권력의 지원을 꾸준히 받았다면 ‘해적’이라는 오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련은 이내 찾아왔다. 어드밴처 갤리호의 첫 출항 당시 키드는 자신이 선발한 선원들이 최고 자질을 갖췄다고 자부했다. 이런 선원을 태운 키드의 배가 템즈 강을 따라 항해하는 도중 잉글랜드 왕실의 해군 선박과 마주쳤다. 당시 관례는 왕실 소속 선박이 지나칠 때 모자를 벗는 등 예의를 표시하는 것이었다. 키드의 선원들은 그런 관례를 지키지 않았고, 관례를 지키지 않은 데 대한 항의표시로 경고사격을 하는 왕실 해군을 조롱하는 행위도 마다하지 않았다. 왕실 해군 선박 선장은 이런 키드의 선원들을 처벌하기 위해 어드벤처 갤리호를 떠나 왕실 해군 선박에 근무하라고 명령했다. 가장 우수한 자질의 선원이라 자부한 선원들을 항해 초부터 키드는 뺏긴 셈이다.

키드는 뉴욕에 도착해 어드벤처 갤리호에 승선시킬 새로운 선원을 모집해야 했다. 새로 승선한 이들 중에는 밀수업자, 해적 등의 전력을 가진 선원이 다수였다. 후원자들이 기대했던 성과를 키드가 이러한 선원들의 도움으로 완수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퀘다 머천트호를 나포하다

뉴욕에서 재정비 이후 키드는 1696년 희망봉을 향한 항해에 나섰다.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선박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지만, 소득은 미미했다. 선원들은 경제적 보상 없이 길어지는 항해에 불만이 늘어갔다. 1697년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배를 만나 경제적 보상을 얻기 위한 공격을 선원들이 제안했지만, 키드는 거부했다. 윌리엄 3세가 태어난 네덜란드의 선박에 대한 공격은 명백한 ‘해적질’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키드의 이런 결정에 강력히 항의하던 포수 윌리암 모어를 키드는 논쟁 끝에 살해하고 말았다. 선장 권한이 강력했다 해도 키드의 이런 행위는 선원 살인을 금지한 당시 17세기 잉글랜드 해사법을 위반한 행위였다. 선상 반란도 불사할 것 같은 선원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전기가 필요했다.

1698년 어드벤처 갤리호는 프랑스 국기를 내건 상선 ‘퀘다 머천트’호를 나포했다. 이 배에는 비단, 금, 은 등 값비싼 화물이 가득 실려 있었다. 프랑스 국기를 단 적국 상선 나포는 사략선장 키드의 권리여서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퀘다 머천트호 선장이 영국인이었고 그가 자신의 항해를 영국 동인도회사가 중개한 것이라 증언하자 키드는 우려했다. 키드는 약탈한 화물을 되돌려주자고 선원들을 설득해 보았지만, 프랑스 여권을 가진 선박 나포는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선원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등 돌리는 정치권력

선상 반란도 불사할 것 같은 선원의 불만을 달래야 했고 또한 선원들이 주장하듯 나포 행위를 정당화할 근거가 있었기에 키드는 약탈한 화물을 싣고 뉴욕으로 향했다. 키드가 인식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퀘다 머천트 호의 화물은 무굴제국 황제와 가까운 귀족의 소유였다. 퀘다 머천트호 약탈은 동인도회사에 대한 무굴제국 지배층의 반감을 야기할 수 있었다. 1685년에도 잉글랜드 해적이 수라트와 예멘을 오가던 순례선박을 약탈한 바 있어 무굴제국 황제는 이번 약탈도 동인도회사의 보호를 받는 해적의 행위라 생각했다. 동인도회사의 상관이 설치된 수라트의 잉글랜드 상인 체포도 주저하지 않은 무굴제국 황제의 노여움을 해소하지 않는다면, 동인도회사의 인도양 무역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키드의 사략선 활동을 후원하며 이득을 챙기던 휘그 정치가들에게 동인도회사의 위상 축소는 인도양 무역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다. 네덜란드, 프랑스 등과 인도양 무역 패권을 다투던 잉글랜드 집권세력 휘그당이 이런 상황을 초래한다면, 정권을 토리당에 넘겨줄 수 있었다. 토리당의 정치공세를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키드의 사략선 활동을 후원한 휘그 정치세력은 관계를 단절할 필요가 있었고, 그를 사략선업자가 아닌 ‘해적’으로 재규정해야 했다.

■키드 선장, 비운에 발목 잡히다

키드는 이제 잉글랜드 왕실의 수배자가 되었다. 뉴욕에 도착하기 전, 키드가 자신이 수배자가 됐다는 사실을 듣고 약탈한 보물 일부를 석방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려고 카리브해의 섬 어딘가 숨겨 놓았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현재까지 키드의 보물 위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뉴욕에 도착한 키드는 벨로몬트 백작의 도움을 기대했지만, 그 역시 키드의 변호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여겨 외면했다. 1701년 잉글랜드로 압송된 키드는 해적 행위와 윌리암 모어 살해 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키드는 결국, 해양에 대한 국가권력의 통제가 아직 확실하게 미치지 못한 때 국가권력에 이용되다가 버려진 비운의 인물이었다.

박원용 부경대 사학과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사학과, 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