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정책 때문이건 국민 가치관의 문제이건, 어떤 이유에서건 약자가 보호되지 못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고 볼 수 없다. 오늘날 학교나 사회 일각에서 ‘왕따 문화’가 성행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가진 깊은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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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이 동생을 보살피며 자전거를 태워준다. 약자를 보살피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 기독교 정신이다. |
독일 중학교를 다니던 딸아이가 네덜란드의 어느 작은 마을로 수학여행을 간 적이 있다. 3박 4일의 즐거운 수학여행 중에 불상사가 일어났다. 교사가 두 아이의 부모에게 연락해 아이들을 데려가도록 조치한 것이다. 놀라서 직접 수학여행지까지 차를 몰고 온 한 부모는 자기 애가 뭘 잘못했는지 따졌고, 선생은 그 이유를 설명했다.
수학여행팀은 이 작은 마을에 숙소를 정하고 자전거를 빌려 타고 주변을 이동하면서 다니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독일에서는 이미 초등학교 때, 자전거 면허시험을 보기 때문에 모든 학생이 당연히 타리라 생각했는데, 토마스라는 아이가 자전거를 탈 줄 몰랐던 것이다. 선생은 수레를 빌려 자기 자전거 뒤에 달고 토마스를 태우고 다녔다. 이동 시간도 더디고 번거로울 수밖에 없었다. 토마스는 갑자기 좀 성가신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런 가운데 문제가 된 두 아이가 토마스를 비웃으며 괴롭혔다. “자전거도 못 타는 바보 같으니라고” 하면서 계속 그를 코너에 모는 언행을 했다. 선생님은 이들에게 “자전거를 못 탈 수도 있지” 하면서 더는 토마스를 괴롭히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두 아이는 계속 토마스를 괴롭혔고, 선생이 마지막 경고를 내렸음에도 듣지 않았다. 그러자 이런 조치를 내린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설명을 들은 아이의 부모가 항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교사의 처벌이 정당하다고 하면서 두말없이 애를 데리고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밑바닥에 깔린 건강한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약자를 괴롭히거나 왕따시키는 것을 가장 큰 부도덕으로 여기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도 왕따문화가 성행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인종차별했고, 예루살렘의 유대인은 변방 갈릴리의 유대인을 낮잡아봤다. 나아가 종교지도자들은 율법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죄인과 세리 등을 소외시켰다. 그러나 예수님은 도리어 변방 갈릴리를 중심으로 사역하면서 그들을 제자로 삼았고 죄인과 병자들의 친구가 되셨다.
구약도 그러하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토지를 골고루 분배해 모든 국민이 자기 소유의 땅에서 농사짓고 살 수 있는 공평한 사회로 출발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가면서 어쩔 수 없이 빈부 격차가 생기고 가난한 자들이 나왔다. 이들을 위해 하나님은 7년마다 있는 안식년을 면제년이라 칭하면서 채무자의 빚을 탕감해주도록 했고, 50년마다 오는 희년에는 토지를 잃어버린 자에게 무상으로 되돌려주도록 율법으로 규정했다. 그러고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고아와 과부 그리고 이방인들을 돌보는 것을 신앙의 최고의 덕목으로 세웠다.
기독교의 정신은 이것이다. 그 사회의 약자를 보살피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 오늘날 맘몬에 오염되고, 경제논리, 성장논리에 매몰된 교회들이 이 기독교정신으로 돌아와 바르게 설 때, 교회도 살고, 그 교회가 몸담고 있는 사회도 바르게 살게 될 것이다.
부산중앙교회 담임목사· 부산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