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시절 겪은 추억 그리며
- 일곱 남매 아버지·어머니의
- 웅숭깊은 자식 사랑 이야기
- 마음 속 깊은 애틋함도 담아
아들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일까. 요즘 젊은 아빠들과는 다르게 한 세대 전의 아버지들은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 웅숭깊은 자식 사랑이 오죽했을까. 다만 철없는 자식들이 그걸 알지 못했을 뿐이다. 먼 훗날 아들은 아버지가 되고서야 그 사랑을 다시 느낀다. 많은 문학과 예술이 사모곡을 부른다. 여기에 더해 사부곡을 부르는 양민주 시인을 경남 창녕 우포늪에서 만났다. 우포늪 옆에서 시인의 아버지는 평생 농사를 짓다 돌아가셨다.
그의 시집 제목은 ‘아버지의 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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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끝자락의 우포늪을 찾아 시집 ‘아버지의 늪’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양민주 시인. |
■고향이고 아버지인 우포늪
양민주 시인은 1961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부산공업대(현 부경대) 기계과, 인제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6년 ‘시와 수필’을 통해 수필가로, 2015년 ‘문학청춘’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산문집 ‘아버지의 구두’와 시집 ‘아버지의 늪’을 발표했다. ‘아버지의 구두’로 원종린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인제대 교무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창녕에 들어서자 그는 “붉은색 완행버스를 타고 통학하던 비포장 길을 지나는 중”이라며 고향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누나와 일가친척이 아직 살고 있어 그는 자주 창녕을 찾는다. “창녕에 올 때면, 다니러 오는 것이 아니라 집에 오는 기분입니다”라며 스쳐 지나는 풍경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이 따뜻했다.
마침 점심 때라 화왕산 입구 한 식당에 들어섰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주 모시고 와서 밥을 먹은 곳이에요. 이 식당 음식을 좋아하셨지요. 지금도 식당 안 어딘가에 어머니가 계시는 것 같아요.” 눈가에 눈물이 비쳤다. 그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은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겨울 우포늪을 찾아온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바싹 바른 갈대 위로 찬바람이 지나가고, 늪지 가는 얼어 있었다. 다른 계절보다 좀 삭막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운치가 있었다. 겨울은 새봄의 생명을 준비하는 기간이니, 저 늪도 몸 안 깊숙이 생명을 보듬고 보살피며 겨울을 나는 중이다.
“저의 호가 ‘우포’입니다. 우포늪 옆에서 살았고, 제가 소띠거든요.” 그의 산문집 ‘아버지의 구두’에 그림을 그려준 서예가 박범지를 비롯해 많은 지인이 그를 ‘우포’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부모님의 삶의 터전인 고향인 우포늪은 그에게 아버지였고, 그 자신이었다.
■아들의 말로 듣는 부모님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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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늪 - 양민주 지음/황금알/2016 |
산문집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아버지는 그 당시로는 많이 배웠지만, 야윈 몸으로 장손 역할을 한답시고 도회지 생활을 하는 대신 시골에서 물려받은 전답으로 농사를 지었다.”
산문의 언어로 만나는 아버지는 속마음을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의 언어로 만나는 아버지는 달랐다. 아버지는 시간 저편에서 아들에게로 걸어왔고, 미처 드러내지 못했던 마음을 아들의 말로 하고 있다.
시 ‘아버지의 늪’ 한 대목이다. “오줌 마려워 잠 쫓아 눈 비빌 때/ 새벽잠 없던 아버지/ 내 머리 쓰다듬으며/ 호젓이 한 말씀 던지셨다/ 기러기들이 소벌牛浦 의 숨구멍 찾아간다고// 삶의 향연 속으로/ 기러기 떼 무심히 빠져들면/ 백발로 피어나는 안개의 늪은/ 잔잔한 호흡으로 출렁거렸다/ 갈목 애연한 우포늪/ 한겨울에도 잠들지 않는 숨구멍으로/ 아버지는 거친 숨결로 빠져들었다.” 새벽녘에 늪과 함께 깨어난 아버지는 어린 아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밭일을 나가셨다. 한겨울 우포늪에서 양민주는 아버지의 숨결을 다시 느끼는 듯 늪을 오래 바라보았다.
시집 ‘아버지의 늪’에는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장인 장모에 대한 마음도 담겼다. 자신의 현재를 존재하게 한 부모님들이다. 그러니 그의 시는 그대로 읽는 사람의 삶에 닿는다. 다정하게, 따뜻하게, 때로는 아프고 슬프게.
시 ‘부엌’에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어린 아들의 애틋함이 배어있다. “사내새끼는 부엌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짓고 싶은데 어머니는 자지가 삐뚤어진다고 부엌에 얼씬도 못 하게 했다 사내로 태어난 것을 후회하며 자지를 떼버리고 싶었다 부엌에는 개다리 밥상, 사기그릇, 박바가지, 수저통, 대소쿠리, 드므가 있었다 청솔가지 불에 가마솥처럼 눈물 흘리는 어머니가 있었다”
우포늪 옆에서 땅을 일구었던 아버지, 가족을 품에 안고 쓸고 닦고 빛을 낸 어머니. 일곱 남매를 낳아 하나도 잃지 않고 키워낸 부모님 이야기를 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다. 그래서 더 잘 들린다.
우포늪에서 시집을 보면서 그 이야기를 들어서 그랬을까. 문득, 왜 ‘아버지의 늪’인지 알 것 같았다. 한겨울 매서운 바람 앞에서 녹색의 생기란 없이 황량하고 쓸쓸해 보이는 우포늪은 모든 것을 자식에게 내어주고 스스로 빈껍데기로 남은 부모님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저 늪은, 사실 얼마나 싱싱한 생명을 품고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우포늪은 자연생태현장만이 아니라, 시인에게는 아버지였고, 어머니였다.
그리고 이제는 양민주 시인이 우포이다.
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