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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근절 행동나선 문화예술계…한국사회 변화 계기되나

2주 째로 접어든 미투운동

  •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
  •  |   입력 : 2018-02-25 18:46:09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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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단의 거장’ 고은 시인 이어
- 감독 이윤택·배우 조민기 등
- 문화계 전방위 폭로 잇따라
- 즉각 계약 해지·지원금 중단
- 국립극단, 성폭력 조항 보완
- “피해자 지지” 위드유 운동도

■미투 넘어 위드유 운동 확산

문화예술계의 뿌리 깊은 성폭력 문제를 근절하자는 자발적인 움직임이 시작됐다. 25일 서울 대학로에서는 관객들이 공연계 성폭력 피해자를 응원하는 ‘위드 유(With You·함께 하겠다)’ 집회가 처음으로 열렸다. 공연 보이콧을 선언한 관객도 많다. SNS에서도 ‘미투’를 넘은 ‘위드 유’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연희단거리패’ 출신 배우인 ‘끼리프로젝트’의 변진호 대표·홍선주 기획실장은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대응하겠다”고 밝히며 뜻을 분명히 했다. 이윤택 씨 성폭력을 폭로한 피해자들은 법률 자문을 거쳐 이 씨에 대한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연극, 뮤지컬 관객과 시민들이 공연계 성폭력을 규탄하고 피해자들의 용기를 지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국립극단은 24일 공식 입장문을 통해 “큰 책임을 통감한다. 사태의 원인이 된 성폭력 및 인권침해에 대한 인식 부재와 시스템 부족을 개선하고자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국립극단은 “계약서 내 성폭력 관련 조항 보완을 위해 법률 자문을 받고, 성폭력 관련 지침과 정기 교육을 하겠다.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한 신고와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고, 문제 발생 시 예외 없이 즉각 조치하겠다”고 전했다. 미온적인 대처로 강하게 비판받은 여성가족부도 뒤늦게 종합대책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여가부는 다음 달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종합 대책’을 발표한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여성단체연합는 문화체육관광부 진상조사위 구성을 촉구했다.

그러나 근본적이고 책임 있는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화예술계 종사자의 분노는 크다. 지난 24일 한 예술인은 부산문화재단 홈페이지에 ‘부산 문화예술계 성폭력 실태조사를 요청한다. 참담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한다’는 글을 올리고 “지난해 10월 문화예술계 성폭력을 고발하는 해시태그 운동이 있었다. 문학 미술 음악 사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성폭력 사실이 피해자의 용기 있는 발화로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2차 가해에 노출되고 무고죄와 명예훼손이라는 법적 명분에 긴 싸움을 해야 했다”며 “수많은 피해자가 또다시 자신의 고통을 호소해야만 현실을 알게 되는 일은 여기서 멈춰야 한다. 구조적인 변화가 시급하다. 만연한 문화예술계 성폭력이 더이상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개인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도록 부산문화재단에서 실태조사를 하고 전담창구와 같은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미투’와 ‘위드유’는 계속되고 있다. 어떻게 전개될지, 한국사회를 과연 바꿀지 관심이 뜨거워진다.

■전방위 확산, 이어지는 폭로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가 지난 14일 페이스북을 통해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감독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한 이후 ‘미투(나도 당했다)’ 운동은 2주째로 접어들었고, 문화예술계 전방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 씨의 지속·상습적 성폭력은 다수의 피해자가 동참하며 세상에 더 많이 알려졌고, 19일 이 씨의 공개 사과와 함께 연희단거리패는 해체됐다. 이 씨의 사과 기자회견은 사전 연출 논란과 반성 없는 태도로 더 큰 분노를 촉발했다.

‘미투’ 운동은 권력과 권위를 이용해 성폭력을 일삼은 이들의 만행은 속속 밝히고 있다. 문단의 거장 고은, 연극계를 대표한 원로 연출가 오태석, 인간문화재이자 밀양연극촌장 하용부 씨의 은폐된 성폭력이 폭로됐다. 이어 창작뮤지컬 대부 윤호진, 유명 배우이자 청주대 교수였던 조민기, 연희단거리패 출신 배우 오달수, 중진 배우 조재현, 유명 사진가 배병우, 영화감독 조근현 등 유명한 예술인들의 성추행 의혹이 제기되고,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나며 충격을 던졌다.

■신속한 ‘아웃’

지난달 29일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고백 이후, 최영미 시인의 폭로로 문화계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은 2주쯤 흐른 지금 ‘미투’ 해시태그를 단 고백이 이어지며 사회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

폭력 수준이 심각하고 국민적 공분이 큰 만큼 가해자들에 대한 조처는 비교적 신속하게 진행된다. 과거 시간을 끌고 온갖 변명과 방어막을 동원하던 모습과 비교하면 확실히 바뀌었다. 연희단거리패와 공간 위탁 운영 계약을 맺었던 부산 기장군, 경남 밀양시·김해시 등은 즉각 계약을 해지하고 지원을 중단했다. 전남 순천시는 배병우 사진가의 창작스튜디오를 폐쇄했다. 문화재청은 명확한 사실관계가 드러나기 전까지 인간문화재 하용부 씨에 대한 지원금 지급을 신속히 중단했다. 고은 시인은 경기 수원시 ‘문화향수의 집’을 신속히 떠났다. 이 집은 수원시가 제공했고, 해마다 관리비를 내줬다. 연극 분야 교과서 집필진은 이윤택과 오태석의 작품을 내년부터 빼기로 했고, 고은 시인의 작품 또한 교과서에서 퇴출당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청주대는 조민기 씨에 중징계를 내렸고, 조 씨의 사표 제출에 면직처분 조처했다. 서울예대는 성추행 논란을 일으킨 연출가 오태석 교수를 수업에서 배제하겠다는 입장과 함께 사과문을 냈다. 오 교수는 입장 발표를 하기로 했다가 묵묵부답인 상태다. 조재현은 ‘DMZ국제다큐영화제’ 집행위원장, tvN드라마 ‘크로스’에서 물러났고 조근현 감독은 최근 개봉한 자신의 영화 ‘흥부’ 홍보에서 곧바로 배제됐다. 이는 과거 가해자들이 변명, 부인으로 시간을 끌다 역공을 가하기도 하고, 사건이 흐지부지되게 하던 관행과 다른 양상이다.

그러나 가해자들에 대한 법적 조치가 이뤄지지 않거나, 반성 없는 ‘선 긋기’ 식 신속한 조처는 성급히 무마하는 태도에 불과하다는 비판 또한 높아지고 있다.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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