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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원래 이런 것’ 위계질서 아래 묵인된 폭력 끊어내야”

이윤택 성폭력 사태 일파만파 부산연극계 충격·자성 목소리

  •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
  •  |   입력 : 2018-02-22 18:42:09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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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희단거리패 출신 연극인 “그곳에서 그는 왕이자 신”

- 폐쇄적이고 맹목적인 집단
- 잘못 알아도 참을 수밖에
- 김소희 대표도 가담·방조
- 이제라도 법적대응 나설 것

# 중견 여성 연극인 “연극계 모두가 반성해야”

- 잘못된 관행 무뎌지다보니
- 바로잡지못해 부끄러울 뿐
- 남성·연출가 중심의 문화
- 장기간 지속되며 문제 키워

‘이윤택 성폭력 파문’는 부산 연극계에도 큰 충격과 영향을 끼쳤다.
   
부산 연극계에서는 이번 이윤택 성폭력 사태를 예술계의 낡은 관행과 폐쇄적 구조를 혁신할 계기로 삼자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지난 19일 성폭력 사과기자회견을 하는 연극인 이윤택 씨와 공연 장면을 합성한 것이다.
이윤택 씨는 1986년 부산 중구 광복동 가마골소극장에서 연희단거리패를 탄생시켰고, 서울로 진출하는 한편 부산 가마골소극장, 경남 밀양연극촌, 김해예술창작스튜디오 등에 거점을 마련해 지역과 꾸준히 긴밀한 관계를 이어왔다. 부산 연극인들은 “참담하다”는 반응과 함께 “강력한 위계질서 속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던 폭력이 문제의 핵심임을 인식하고 이를 끊어내는 예술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연희단거리패 단원이었던 뮤지컬 극단 ‘끼리프로젝트’ 변진호 대표는 “잘못된 방법인 줄 알면서도 버티면서 그(이윤택)를 우상으로 모셨다. 우리만 참으면 엄청난 작품이 결과물로 나오기 때문이다. 최고의 연극으로 상을 휩쓸었다. 그러니 ‘연희단은 곧 이윤택’이 되고, 집단 최면에 걸릴 수밖에 없다”며 “그런 분위기에서 신입 단원은 말 한마디도 할 수 없고, ‘연극은 원래 이런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연극에 대한 열정 하나로 밀양까지 간 친구들이다. 그 열정이 클수록 피해를 당해도 참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끼리 프로젝트’의 기획실장 홍선주 씨도 변 대표와 같은 기간 연희단거리패에 있었다. 홍 씨는 이번 사태와 관련, “김소희 대표 또한 이 씨의 성폭력 과정에서 적극 가담했거나 방조했다”고 폭로했다. 홍 기획실장은 “맹목적으로 따라야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굉장히 폐쇄적인 그곳에서 왕이자 신인 선생님을 모실 수밖에 없다. 이번에 밝혀진 피해자들과 함께 (이 씨에 대한 고소와 처벌 촉구 등) 대응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희단거리패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연극인들도 참담한 심정은 마찬가지다. 부산에서 25년가량 연극을 해온 여성 배우 A 씨는 “먼저 선배 연극인으로서 부끄럽고 마음이 무거웠다. 이번 사건으로 모두 충격이 크다”며 “남성 연극인들도 그동안 스스로 인식 못 했던 잘못된 행동을 고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간혹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연출자를 만나도 그저 괴팍한 스타일 정도로 치부했는데, 이제는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연극계 전반에 깔린 폭력적 문화에 나 또한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충격적 사건이지만, 이를 계기로 폐쇄적이던 연극계 문화도 바뀌어 가리라 생각한다. 다만 현장에서 열심히 하는 연극인들이 함께 매도당하거나, 무대를 꿈꾸는 친구들이 포기하는 안타까운 일이 없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부산에서 30년가량 활동한 여성 배우 B 씨는 강력한 위계질서에 따라 약자가 설 자리가 없다는 구조를 지적했다. B 씨는 “폭력적인 위계질서가 남아있다. 하소연이라도 하면 비난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의 말을 듣고 고쳐나가야 하지만 많은 부분 묵살된다. 그럴수록 권력 구조는 공고해진다. 나 또한 선배가 되고 나서는 무뎌진 것이 아닌지, 후배들이 문제제기를 할 때 들어줄 자세가 되었는지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윤택과 또 다른 거장급 원로 연출가가 가해자로 거론된다. 이들이 가지는 특별한 힘과 남성중심문화가 결합해 장기간 문제가 지속됐다.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만큼 한순간 들끓다 끝나지 않고 연극계 전반이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젊은 연극인들은 이미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30대 초반 연출자 송근욱 씨는 대학 졸업 후 기존 극단에 들어가지 않고, 마음 맞는 동료와 곧바로 팀을 꾸렸다. 그는 “기존 질서를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공동대표 체제로 독단적인 분위기로 흐르는 것을 막고, 배우장을 뽑아 배우와 연출의 힘을 맞추고자 했다. 작업 초반부터 모든 단원이 동등하게 참여한다”고 방식을 설명했다. 젊은 연극인들은 작품에 따라 팀을 자유롭게 구성하고 해체하는 등 다른 방식을 도모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이윤택 감독과 관련이 깊은 극단 가마골을 영구 제명 조처한 부산연극협회 손병태 회장은 “사건 이후 걱정이 돼 긴급이사회를 열고 부산 현황을 파악하며 자성과 반성을 당부했다. 속속들이 내부사정을 알 수는 없으나, 행여나 사건이 생긴다면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다”며 “한 사람의 권력이 너무 커져 버린 데 따른 문제라고 보고 있다. 부산 극단은 사실 배우가 부족하고 절대적인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은 아니라 그런 일이 상대적으로 덜 할 것이란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또 “협회 차원에서 캠페인이나 윤리 서약 등의 실천도 해나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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