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은 개개인과 타인을
-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이 필수
- ‘문단 거목’부터 ‘연극계 거장’
- 권력 앞세워 여성에 상처 입혀
- 무겁고 참담하고 무섭지만
- 어정쩡하게 멈춰서는 안돼
예술계의 ‘미투(Me Too) 운동’이 번지고 있다. 그것을 보는 심정은 무겁고 참담하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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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력을 저지른 ‘권력 있는’ 가해자들을 고발한 피해 여성들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타임’의 지난해 12월 18일 자 표지. |
최영미 시인이 ‘괴물’이라는 시에서 ‘문단 거목’을 사실상 지칭하며 그가 과거 오랜 세월 여성 문인들에 대한 성폭력을 행사했다고 사회에 고발하면서 문단에서 미투 운동의 불씨가 붙었고, 이는 연극계로 옮겨 붙어 큰 불길이 되고 있다. 연극연출가 이윤택이 과거 오랜 기간 저질렀다는 성폭력을 밝히는 피해 여성들의 고발은 증언과 정황이 매우 구체적이고, 심각하며, 끔찍하다.
미투 운동은 ‘권력’을 가진 자가 권력을 이용해 지위가 낮거나 힘이 약한 여성에게 위력을 과시하고 성폭력을 저지른 것을 피해 여성들이 직접 고발하고 밝히는 것이다. 이런 행태는 동성 간에도 이뤄졌을 수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현재 스스로 밝혔거나 드러난 피해자는 여성들이다.
예술이 갖는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본다. 예술이 사회에서 도대체 왜 가치를 지니며, 존중받아야 하는지 묻는 질문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 이것이 사회적 차원에서 예술이 가치를 지니며,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고 본질이고 핵심이다. 서로 같아지지는 않되 잘 어우러진다는 뜻이다. 19세기나 20세기에는 어땠는지 모르겠고, 21세기는 확실히 그렇다.
구성원 개개인이 모두 개성과 독립성, 자기 철학과 자기 방식대로, 다르게 보고 다르게 살 권리를 존중받으면서도, 서로서로 어우러질 줄도 아는 사회는 활력이 넘친다. 그리고 강하다. 창의성이 걸림 없이 터져 나와 발전하는 데도 유리하다. 역사에서 이런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다. 그 반대가 서로 같아지되 서로 잘 어우러지지 못하는(同而不和) 사회다. 독재국가를 떠올리면 된다. 남이 나와 어떻게든 같아지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질투한다. 그런 사회는 활력을 잃고 기운다.
예술은 ‘서로 같아지지는 않되 잘 어우러진다’는 가치와 물샐틈없이 정확히 일치한다. 개성, 독립성, 자기 철학, 자기 방식, 다르게 보고 다르게 살 권리를 침해당한 예술이나 예술가를 상상할 수도 없다. 거꾸로 말하면, 예술은 사회에 바로 이와 같은 가치와 덕목을 끊임없이 수혈해준다는 뜻이다. 이것이 예술의 사회적 의미다.
예술의 사회적 의미를 살리려면, 첫째 자유 둘째 상대와 개인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필수불가결의 근본 조건이다. ‘화이부동’을 달리 표현하면 ‘우리의 다름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인데, 서로 인정·존중하지 않으면 화이부동이고 뭐고 시작도 못 한다. 이것이 없으면 사회에서 예술은 아무것도 못한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라는 가치가 침해당하면 사회와 개인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받는다. 예술과 민주주의가 함께 가는 뗄 수 없는 쌍인 이유다.
예술계에서 권력을 가진 자가 그 권력과 위력을 앞세워 저지른 성폭력은 바로 이런 가치를 근본부터 무너뜨린 것이다. 피해자는 개인이자 주체로서 존중도 인정도 받지 못했다. 마땅히 존중받았어야 할 피해자의 영혼은 그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예술은 대체로 과거부터 축적되어온 성취를 바탕으로 앞으로 나간다. 그런데 21세기를 한창 항진 중인 지금 돌이켜봤을 때, 그 과거의 성취라는 것의 적지 않은 분량이 이처럼 근본 가치를 훼손한 채 이뤄진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예술계 미투 운동은 어정쩡하게 멈춰서는 안 된다.
한국 사회에서 사는 남성이며, 예술계를 비교적 오랜 기간 취재한 나는 솔직히 두렵다. 나 또한 어떤 이유에서든 성적인 측면에서 불쾌감이나 상처를 예술인에게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 때문이다. 부디 그런 일이 없었기를 바라지만, 행여 있었다면 깊이 반성하겠다. 벌도 받겠다.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