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자와 저널리스트의 대담집
- “로봇·자동화에 밀려 고용 위기
- 앎을 실행할 ‘일’을 찾지 않으면
- 기계와 덧없는 전쟁 반복될 것
- 기여에 의한 분배경제 필요”
당신은 일과 고용이 같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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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자동화’를 고용에서 해방될 기회로 본다. 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문화이론가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이 둘을 다를 뿐 아니라 심지어 배척되는 개념으로 본다. 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는 스티글레르와 저널리스트 아리엘 키루의 대담집이다. 이 대화에서 스티글레르는 ‘일’이란 무언가를 성취함으로써 ‘앎’을 키워가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 앎은 점점 커져 타인과 공유할 수도 있고,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도 있다. 반면 고용이란 개인을 단지 ‘구매력 가진 소비체’로 만들기 위해 임금을 주는 수단이다. 여기서는 개인에게 주어진 나사못 하나를 끼우는 것 이상의 앎은 필요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방해가 된다. 앎이 커질수록 의문과 저항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철저한 분업과 동기 박탈을 통해 진짜 ‘일’을 빼앗고 고통스러운 고용 속으로 사람들을 몰아넣었다.
그러나 대량 생산, 대량 고용, 대량 소비의 자본주의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허점을 드러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전체 산업의 이윤율이 점점 떨어지자 자본주의는 금융자본주의라는 무기로 맞섰지만, 터질 일은 터졌다. 결국 2008년 미국에서 발발한 서브프라임 사태가 전 세계를 덮쳐 체제의 허망함을 까발렸다.
놀랍게도 여기까지는 1920년대에 이미 마르크스가 예측한 과정이다. 단,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결함으로 이윤율이 떨어져 고용이 붕괴할 것으로 예견했지만, 사실상 고용의 해체를 불러온 것은 ‘자동화’ ‘인공지능’ ‘로봇화’라고 스티글레르는 말한다. 메르세데스사는 이미 전 과정 자동화로 엔진을 생산하고, 아마존은 도서 창고 관리의 완전 자동화를 추진한다. 곧 자율주행차가 상용화하고 슈퍼마켓에서 계산도 자동으로 하게 될 것이다. 이것만 봐도 사라지는 일자리가 얼마나 많은가. 고용의 해체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스티글레르는 우리가 할 일은 자동화 기계와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비자동화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악기 연주자가 오랜 연습 끝에 숙달한 ‘자동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연주법을 창조해내는 것과 같은 능력. 창조적 해석과 방법을 만드는 능력이다. 정부는 시민이 이 능력을 배양할 수 있도록 기초교육을 재편하고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야 한다.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는 어쩌나. 그는 무너지는 고용을 대체할 개념으로 ‘기여경제’를 역설한다. 프랑스의 ‘예술인 실업급여제도’를 모델로 삼은, 새로운 재분배 방식이다. 임금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회 기여에 기초한 재분배. 그렇다면 노화나 빈곤, 장애로 기여도가 낮은 사람은 굶어야 하나. 물론 이런 계층을 위한 ‘기본소득’도 보장돼야 한다. 공정하고 이성적인 재분배가 이뤄지지 않으면, 고용에서 내몰린 사람들은 자동화에 대한 분노만 키우고 기계와 덧없는 전쟁을 벌일 뿐이다. 그 옛날 러다이트 운동처럼.
고용의 소멸로 고통에 빠질 청년 세대를 위해,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이후 다가올 새로운 세상에서 인류가 공공의 풍요를 누리기 위해 기여경제 모델로의 혁명적인 이행은 필수라고 스티글레르는 역설한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