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족이자 부자인 토마스 데이
- 번번히 청혼 거절당하자
- 고아소녀 데려다 아내로 교육
- 18세기말 지배계급 사회상 기록
- 여성 혐오 역사·의식구조 통찰
이 책을 어떤 종류의 책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알맞을지 궁리를 좀 해야 했다. 18세기 말 조지 왕이 다스리던 영국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추적하고 복원한 책이지만, 그렇다고 역사책으로 분류하기는 어딘지 딱 떨어지는 느낌은 아니었다. 전기나 평전이라 하기도 어렵고, 논픽션이므로 문학으로 분류하기도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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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픽션 ‘완벽한 아내 만들기’ 주요 인물인, 19세기 영국 조지 왕 시대의 토마스 데이(왼쪽)와 사브리나 시드니의 초상화. 글항아리 제공 |
그래서 애매한 쪽 말고, 이 책이 가진 확실한 점을 꼽아보기로 했다. 결론이 금방 나왔다. 논픽션 특유의 긴장감과 흥미로움이 책 전체를 장악한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재미있다. 이는 저자가 열심히 자료를 찾고, 취재하고, 치열하게 글을 썼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웬디 무어가 쓴 완벽한 아내 만들기의 이야기 얼개는 이렇다. 때는 18세기 후반. 조지 왕이 다스리던 영국(이를 책에서는 ‘조지 시대’로 표현한다)은 산업혁명이 이뤄지면서 사회 구조가 바뀌고, 경제는 한창 팽창하고 있었다. 토마스 데이라는 괴팍하고도 열정적이며, 부자인 데다 교양과 지식을 갖췄으며, 문학과 자선을 사랑하면서도 고집불통의 성격인 ‘복합적인’ 남자가 살았다.
데이는 당시 한창 왕성하게 성장하던 영국 지배계급의 정신세계(멘털리티)를 상징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과학과 지식 그리고 규율로 세상을 통제할 수 있고 통제해야 한다고 믿었다. 웬디 무어는 이 책에서 데이의 정신세계가 조지 시대의 시대정신 또는 욱일승천을 준비하던 영국 지배계급의 자신감 넘치는 세계관과 관련이 있다는 언급을 직접 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실제 인물인 숱한 영국 지식인과 기업인, 귀족, 젠트리 계층의 활동과 생각에서 이는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데이는 자기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여성들에게서 번번히 ‘퇴짜’를 맞는다. 결혼을 못 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거액을 상속받은 부자이던 데이는 모종의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고아원을 찾아가 거액의 후원금을 내는 등 신뢰를 쌓으면서 11살밖에 안 된 어린 소녀를 데려와서(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사실상 납치하는 것이다) 데이 자신의 ‘기준’으로 기르고 교육해 ‘완벽한 아내’로 만들어 결혼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또한 현대인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발상이었다.
실제로 데이는 그 계획을 실행하지만, 일은 그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가 데려왔던 사브리나 시드니는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삶을 살고, 자기의 길을 걷는다.
이 책은 ‘피그말리온 신화부터 계몽주의 교육에 이르는 여성 혐오의 연대기’라는 부제로 삼아 여성 혐오의 역사와 의식 구조에 관한 통찰을 주는 책임을 분명히 한다. 그에 앞서 이 책은 일종의 미시사 관점에서 18세 말 조지 시대 영국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탁월한 기록이며 논픽션 문학이다. 등장인물들은 생생하게 살아있고, 그 시대의 분위기와 역사적 사건은 생생하게 재현됐다. 저자는 폭넓게 취재하고, 치밀하게 책을 구성했다.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