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웨덴 대주교 올라우스 마그누스
- 종교개혁 피해 이탈리아 망명 후 펴낸
- ‘북방민족의 역사’서 청어어업 소개
- 북해서 발트해로 가는 입구 준트 해협
- 산란 위해 몰려드는 청어어장 중심지
- 경제적 가치 알아본 독일 뤼베크시
- 가공·유통·저장용 소금 공급 독점
- 청어교역권 바탕으로 한 네트워크
- ‘한자동맹의 여왕’으로 번영 누려
북국에 몰아닥친 바람은 매서웠다. 독일에서 시작된 종교개혁의 소용돌이가 북유럽에 몰아치자 올라우스 마그누스(Olaus Magnus)는 스웨덴의 대주교였던 형과 함께 이탈리아로 망명해야 했다. 그의 형 요하네스가 사망했을 때(1544년), 형의 뒤를 이어 스웨덴의 대주교로 임명되었지만 끝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할 운명이었다.
| |  |
| 1539년 스웨덴의 올라우스 마그너스가 펴낸 ‘카르타 마리나(Carta Marina)’. 스칸디나비아 일대를 정확히 그린 해도(海圖)로 유명하다. 김문기 교수 제공 |
비록 추방당한 몸이었지만, 고국을 향한 올라우스의 애정은 남달랐다. 이탈리아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내내, 그는 기억을 더듬어 북유럽에 대한 저술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 첫 성과가 1539년 베니스에서 인쇄된 ‘카르타 마리나(Carta Marina)’, 말 그대로 스칸디나비아의 ‘해도(海圖)’였다. 이것은 스칸디나비아를 정확하게 묘사한 최초의 지도로 유명하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크고, 가장 정확하며, 가장 상세한 스칸디나비아 지도”라고 일컬어지고 있었듯이, 스칸디나비아에 산재하는 다양한 인종과 동물, 그리고 그 생활상이 실감 나게 묘사되어 있다. 그것도 잠시, 먼바다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해도’라는 제목처럼, 이 지도의 제일 큰 매력은 바다에 있다. 노르웨이 서쪽 바다는 기기괴괴한 ‘괴물’로 가득 차 있다. 선박을 공격하는 거대한 뱀, 인간을 잡아먹는 거대한 바닷가재, 대항해시대 이후까지 두려움의 대명사였던 크라켄 등 헤아릴 수 없는 바다괴물이 등장한다. 그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물을 뿜으며 배를 위협하거나 공격하는 괴물이다. 이 괴물이 무엇인지는 쉬 짐작하리라. 바로 고래(whale)다. 올라우스가 묘사한 바다괴물은 대부분 고래, 바다코끼리, 대왕오징어 등 실제 해양생물을 모델로 한 것이다. 바다에 대한 두려움, 정보의 부정확함은 해양생물을 과장하고 변형시켜 거대한 괴물로 만들었다. 르네상스가 도래했음에도 여전했던 중세적 상상력을 이 한 장의 지도는 보여준다.
■ 물고기와 ‘괴물’을 가른 기준은?
| |  |
| 올라우스 마그누스가 1555년 펴낸 유명한 책 ‘북방민족의 역사’에 나온 준트 해협 청어어업. |
머나먼 고향, 북유럽에 대한 올라우스의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1555년, 필생의 역작 ‘북방민족의 역사(Historia de Gentibus Septentrionalibus)’가 로마에서 출간됐다. 전체 22장, 800여 쪽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이 책은 스칸디나비아의 자연, 종교, 민속, 산업, 전쟁, 동물 등에 대한 정보를 망라한다. 올라우스는 각 장에서 ‘카르타 마리나’에 묘사된 그림을 설명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런 면에서 ‘북방민족의 역사’는 ‘카르타 마리나’에 대한 상세한 주석서이자, 방대한 해설서 성격을 띠고 있다.
‘북방민족의 역사’의 마지막 여섯 장은 스칸디나비아의 가축, 새, 물고기, 벌레 등 동물을 실었다. 21장은 ‘괴물 물고기’을 다루었는데, ‘카르타 마리나’에서 보았던 ‘바다괴물’의 모습을 해설과 함께 확인할 수 있다. 20장은 스칸디나비아의 ‘물고기’ 어업을 다루고 있다. 이 둘의 비교는 흥미롭다. ‘카르타 마리나’를 살펴보면, 바다괴물은 모두 노르웨이의 서쪽 바다에만 출몰하지, 발트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지(未知)’와 ‘기지(旣知)’의 차이가 괴물의 존재를 규정한 것이다.
올라우스는 발트해에서 가장 중요한 어떤 물고기의 어로 모습을 재밌게 나타냈다. 그림을 보면, 네 무더기의 물고기 떼가 있다.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먼저 상단에 있는 무더기는 물고기가 너무 몰려들어 해안가에 ‘그냥’ 널브러져 있다. 가운데 뜰채 그림은, 물고기가 너무 많이 몰려드니 굳이 먼 바다로 나갈 필요 없이, 해변에서 뜰채로 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단 왼편은 이렇게 잡은 물고기를 가지런히 정리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물고기 떼 위의 미늘창은 무엇을 뜻할까?
발트해에서 이렇게 묘사될 수 있는 물고기는 오직 하나, 오늘날에도 기네스북에 바다에서 제일 많이 나는 물고기로 등재되었던 물고기, 바로 청어(herring)였다. 북해에서 발트해로 들어가는 입구인 준트 해협은 청어가 산란을 위해 회유하는 길목으로, 스칸디나비아반도 최남단의 스코네 지방과 그 맞은편 뤼겐섬이 어장의 중심지였다. 올라우스는 바로 이 스코네 지방에서 행해진 청어 어업을 그림으로 남겼던 것이다.
매년 9월에서 10월이면 준트 해협에 엄청나게 몰려드는 청어의 경제적 가치에 눈독을 들인 것은 독일 북부 상업도시 뤼베크였다. 기름기가 많은 청어는 쉬이 부패했으므로 저장을 위한 소금이 필요했다. 발트해는 염도가 낮아 소금을 만드는 것이 어려웠다. 뤼베크는 이 점에 주목했다. 다행히 뤼베크의 남서쪽에는 암염 산지인 뤼네부르크(Luneburg)가 있었다. 뤼베크는 뤼네부르크에서 확보한 소금을 공급해 청어교역에서 유리한 입지를 다졌다. 어로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았지만, 가공부터 유통 그리고 염장용 소금 공급을 독점하면서 뤼베크는 엄청난 부를 쌓았다.
■ 뤼베크가 한자동맹의 여왕이 된 이유
| |  |
| 1830년대 일본 박물학자 모리 바이엔의 ‘매원어보’에 실린 청어 그림. |
중세 유럽 경제를 지배했던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은 발트해와 북해가 연결되는 뤼베크와 함부르크가 1241년 맺은 상업동맹이 발단이 되었다. 독일 북부와 발트해의 상업도시들이 가입함으로써 전성기에는 200여 개에 이르렀다. 한자동맹은 유럽을 넘어 아시아로 연결되는 강력한 상업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런 한자동맹을 지탱했던 것이 발트해에서 풍부하게 나는 청어였다. 당시 스코네와 뤼겐섬을 지배하고 있던 덴마크는 한자동맹의 청어교역 독점을 견제해 여러 차례 압력을 가해왔다. 한자동맹은 굴복하지 않았다. 1370년 슈트랄준트 협약을 맺으면서 청어교역에 대한 독점권을 끝내 지켜냈다. 한자도시라는 개미군단이 국가라는 코끼리에 마침내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로써 화려한 한자동맹 시대가 전개되었다.
이제 남겨놓았던 질문으로 돌아가자. 대답은 올라우스가 직접 할 것이다. “청어는 풍부하게 공급되기 때문에 매우 싸게 살 수 있다. 그것들은 엄청나게 몰려들어 바닷가에 스스로를 바치는데, 어부들의 그물을 찢어놓을 정도일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떼로 몰려들 때는 도끼나 미늘창을 그 한 가운데 꽂으면 꼿꼿하게 서 있을 정도이다.” 청어가 얼마나 많은지 막대기를 꽂아도 자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자동맹의 중심지로서 번영을 구가했던 뤼베크는 ‘한자동맹의 여왕’ ‘영광 중의 영광’으로 불리었다. 뤼베크를 ‘한자동맹의 여왕’이자, ‘영광 중의 영광’으로 인도했던 것은 청어라는 이 물고기였다.
지상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 영광의 순간은 어느샌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올라우스가 아스라한 북국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을 때 발트해를 가득 메웠던 청어는 이미 사라져갔다. 한자동맹의 영광도 종말을 맞이했다. 이제 청어가 이동해갔던 북해의 국가, 네덜란드와 영국이 그 영광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올라우스가 그린 ‘물을 뿜어대는 괴물’ 이미지는 당대의 지리학자 세바스찬 뮌스터, 동물학자 콘라드 게스너 등에게 영향을 주었고, 대항해시대 바다를 건너 중국을 거쳐 조선에도 전해졌다. 올라우스가 묘사했던 청어잡이 모습이 바로 이 땅에서도 펼쳐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을까? 하나의 물고기는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이어주고 있다.
김문기 부경대 사학과 교수
공동기획:부경대 사학과, 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