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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반짝반짝 문화현장 <41> 광복동 ‘코헨’ 이야기

아날로그 감성으로 지켜온 16년…음악 속에서 즐겼고, 나눴고, 버텼다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18-01-18 18:39:19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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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운 실내 테이블 다섯개
- 시인과촌장 이글스 퀸…
- LP 3500장 CD 1000장
- 듣고싶은 노래를 적어내면
- 재빨리 앨범 꺼내드는 주인장

- LP바 원조라 할 순 없지만
- 정체성 잃지않은 뚝심·세월이
- 이 작은공간을 사랑하게 만든다

‘코헨’이 부산 중구 광복로 뒷골목 지금 자리에 문을 연 건 2002년 2월 9일이다.
다음 달 개업 16주년을 맞는 부산 중구 광복동의 작은 음악 공간 ‘코헨’. 김종진 기자
LP 3500장, CD 1000장. 음악. 병맥주. 테이블 다섯 개. 괜찮은 스피커. 음향이 좋게 울리도록 공들여 마감한 나무 벽면. 단출한 안주(‘미역꼬다리’와 과자를 약간 곁들인 한치구이 또는 노가리구이 등 네 가지). 음악을 신청하는 데만 쓰는 메모지와 볼펜. 약간 어두운 조명. 군더더기 없는 싸움꾼의 몸처럼, 광복동 코헨의 구조와 배치는 다른 것에 관한 집착도 잡념도 없이 한 가지에 집중한다. 음악이다.

코헨은 음악 카페이고, 주점이므로 ‘코헨의 밤’에는 맥주가 어우러진다. 하지만 인기 좋은 ‘맛있는 생맥주’는 없다. 병맥주뿐이다. 코헨에 온 경험이 좀 있는 손님은 냉장고에서 국내외 병맥주를 직접 꺼내 마신다. 안주를 시키지 않아도 아무 문제 될 게 없지만, 그렇다고 출출하다며 따끈한 국물이나 든든한 음식을 주문할 수도 없다. 팔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코헨 주인장에게 이렇게 하는 이유를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음악 듣느라 바빠서였다. 지금 와서야 생각해보니, 이런 구조와 배치와 운영에는 이유가 있다. 음악이다. 이곳에서는 손님이 부탁한 음악 또는 코헨을 홀로 운영하는 주인장이 고르거나 추천한 음악을, 주인장이 직접 LP 턴테이블이나 CD 플레이어에 걸고, 그걸 함께 듣는다. 생맥주 따르는 시간과 국물 안주와 더 많은 테이블은 이런 코헨의 방식에 방해가 된다.

코헨에 없는 게 또 있다. 컴퓨터다. 컴퓨터로 음원을 재생해 들려주는 방식이 여기서는 안 통한다. 이 집 LP와 CD에 없는 음악은 들을 수 없다. 틀 수도 없다.

그런 코헨이 다음 달 9일로 16주년을 맞는다는 것만큼 명확한 게 있다. 그 16년 동안 코헨의 이런 풍경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디지털 시대의 분위기를 거슬러

코헨 벽면에 가득 꽂힌 LP.
16년 전 코헨이 문을 열 즈음 한국에는 ‘인터넷 열풍’이 강하고 뜨겁고 새롭게 불고 있었다.

그때를 전후해 천지사방에 광케이블이 깔렸고, 집마다 아파트마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들어갔으며, 알타비스타·와카노·라이코스·엠파스·넷츠고·심마니·프리챌·한미르 등등등 네이버·다음·구글만 알 것 같은 요즘 세대에게 생소할 숱한 포털사이트와 검색엔진이 피 튀기는 경쟁 속에 명멸했다. 디지털이 첨단이었고, 첨단만이 정답인 시대 분위기였다.

코헨은 그런 시대에 거꾸로 걸었다. 부산시청도 부산시경도 연산동으로 옮겨가 쇠락한 광복동 뒷골목 작은 건물 좁은 2층에 탁자 다섯 개와 LP 3500장을 놓고, 시대의 총아인 ‘디지털’의 적 또는 그냥 ‘루저’(loser) 아니면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같은 향수로만 여겨지던 ‘아날로그’ 경영 철학의 음악 주점을 연다는 데 말리는 사람이 왜 없었겠는가?

그리고 16년. 코헨이 그 세월 내내 승승장구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음악과 함께 제법 긴 그 시간을 즐겼고 견뎠고 살아남았다. 코헨이 LP 노래를 듣는 아날로그 중심 음악 공간의 원조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코헨이 문을 열 때 그런 음악 공간이 부산에는 이미 있었다. 하지만 16년 동안 음악을 즐기고, 음악 속에서 버티고, 음악을 사랑하는 작은 공간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은 사이, 어느새 코헨이 부산에서 대표적인 아날로그 중심 음악 공간이자 대중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작은 명소가 된 것도 명백하다.

LP 레코드를 1만5000여 장 보유한 서울의 유명하고 큰 LP 바(Bar) ‘트래픽’의 대표가 코헨에 한 번 찾아와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렇게 아담하고 ‘속닥한’ 음악 공간”이라며 좋아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런 일화는 많다. 2016년 10월 어느 밤이었다. 유럽에서 부산을 찾은 젊은 대학원생 2명이 우연히 코헨에 들어섰다. 맥주를 마시던 그들은 곧 코헨의 음악과 분위기에 빠졌다. 둘은 주섬주섬 전화기를 챙겨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어느새 작은 음악 명소가 되다

손님들이 음악을 신청한 메모지.
그러자, 근처에 있었던지 다른 유럽 청년들이 하나둘 모여 어느새 15명이 됐다. 국적이 다양했던 이들은 제각각 노래를 신청해 듣다가 풀즈 가든(Fool‘s Garden)의 ‘레몬 트리’가 흘러나오자 감흥이 일어 이 노래를 합창했다. 작은 공간코헨이 유럽 청년들의 ‘레몬 트리’ 합창으로 부풀어 올랐고, 그 장면을 찍은 사진이 지금도 코헨 벽면에 붙어 있다. 몇 해 전 늦은 밤 초로의 일본 남성이 홀로 코헨에 올라왔다. 하필 그때 자리가 없어 “다음에 오셔야겠다”며 돌려보내려 했다. 그때 그 일본 남성은 벽에 세워놓은 통기타를 발견하고 다급히 말했다. “나는 예술가예요!(I‘m an artist!)” 그는 다른 손님과 섞여 앉아 멋진 기타 연주를 들려줬다. 알고 봤더니 일본에서 알려진 기타리스트였다.

음악 속에서 16년을 걸어온 코헨의 매력은 또는 저력은 뭘까? 음악이다. 마음이 쓸쓸할 때나 친구와 함께 흥에 겨웠을 때, 불쑥 어느 뒷골목 작은 건물 2층에 올라가 들국화, 시인과 촌장, 김광석, 배호, 레너드 코헨, 버피 세인트 메리, 클라투, 마이클 올드필드, 등려군, 장국영, 안예은, 바버렛츠, 세이수미, 이글스 , 퀸 그리고 수많은 아트록의 명곡까지 노래를 부탁하면 놀라운 속도로 척척 뽑아내 틀어주는 음악 공간이 있다는 것에 ‘아날로그 단골’들은 위안과 기쁨을 얻었다.

또 한가지 있다. 음악에 대한 존중과 서로에 대한 배려다. 15년 동안 코헨을 들락거린 처지에서 겪고 관찰한 바를 말하자면, 테이블 다섯 개의 작은 공간인 코헨은 문 닫는 시간인 자정까지 손님이 한 팀밖에 없는 날도 있지만, 좀 바글바글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음악에 대한 존중과 서로에 대한 배려 원칙이 더 철저하게 적용된다. 한 단골이 말했다. “이 작은 공간에서는 돈 있다고 노래를 먼저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좋아한다고 자기 노래를 내내 들을 수도 없고 원한다고 없는 노래를 틀어달라 할 수도 없다. 배려와 존중을 발휘하지 않는 이에게 코헨은 마음에 드는 공간이 아닐 수 있다.”

16년 전, 시대 분위기를 거슬러 뚜벅뚜벅 걷기 시작한 아날로그 중심의 작은 음악 공간 코헨은 그렇게 뚝심과 원칙으로 이 첨단 초스피드 디지털 시대를 여전히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음악과 함께.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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