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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한국영화의 어떤 경향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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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1-04 19:21:58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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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2017)’을 보면서 뭔가 익숙함을 느꼈다. 영화의 얼개는 단순하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는 군사정권에 맞서서 부검을 지시한 검사, 진실을 밝히려는 언론, 독재에 반대해 학생 운동에 뛰어든 대학생 등 여러 인간 군상의 개별적인 서사가 한 줄기로 모여 6월 민주항쟁의 순간을 향한다. 부당한 권력의 폭압에 의해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고, 그 희생을 목격한 민중은 일치단결해 본격적인 저항의 대열로 나선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
문제는 유사한 형태의 영화로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2017)’와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2013)’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폭력의 역사가 안겨주는 비극적 페이소스를 전시함으로써 ‘괴물(2006)’ 이래 ‘정부에 의해 피해 입는 민중’이라는 한국 영화의 클리셰를 반복하는 정형화된 희생양 서사를 보여준다. 부림 사건과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항쟁을 각기 다루지만 근본적으로 이 영화들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처럼 보인다. 민주화 운동은 정치에 무관심한 평범한 사람들을 일깨워 정치의 장으로 소환하기 위한 종교적 제의(祭儀)가 되며, 배경에 깔린 민중의 희생은 온 국민의 하나됨(at-one-ment)과 정치의식 계몽이라는 이상을 표현하기 위한 연민의 제물로서 바쳐진다.

19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을 다루는 영화 중 이러한 틀을 벗어나는 영화가 있는가? 다시 말해 ‘1987’이나 ‘택시 운전사’는 굳이 ‘지구를 지켜라(2003)’의 장준환, ‘고지전(2011)’의 장훈 감독이 아니더라도, 연출자를 교체 투입해서라도 만들 수 있는 일률적인 영화들이며, 모두 똑같은 이야기를 그린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상의 영화들은 안전한 만큼이나 동어반복적인 기획의 소산이다. 또한 창작의 중심에 서서 산업구도 안에서 작가적 개성을 관철해야 할 감독의 역할이 몰개성하고 진부한 플롯의 각본을 영상으로 구현하기 위해 고용된 기능공으로 전락해버린 현실의 부인할 수 없는 증거이다.

시대상에 대한 리얼리즘으로 옹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건과 인물을 일정한 드라마의 공식과 프레임에 가둬놓음으로써 영화는 역사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봉쇄하고 말았다. ‘택시 운전사’에는 군사독재의 부당함에 분연히 일어나 싸운 시민군의 모습이 자체적인 검열처럼 삭제되어 있고, ‘1987’에는 단합된 국민의 승리 이후에 기다리고 있을 야권 분열과 군부 정권의 연장이라는 좌절의 순간이 선별적으로 잘려나가 있다. 반쪽의 리얼리즘. 이는 촛불 시위를 경험한 현재의 한국에 대한 역사적 대응물로서 사건을 재단한 결과이며, 역사의 비극과 실패를 외면하는 비겁함에 불과하다.
지금의 경향이 과연 환호하고 감격할 측면만 있는 것인가? 이상의 작품들이 영화적 만듦새와 가치에 비해 분에 넘칠 정도로 환대받는 건 지금 한국사회의 맥락(context)과 대중의 불안에 영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사회적, 경제적 불안에 대한 대체재를 과거의 낭만화로부터 찾는 건 현재의 문제를 냉정하게 직시할 용기, 미래에의 상상력을 상실한 퇴행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영화는 ‘컨텍스트 의존 중독’이라는 늪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리고 있으며, 틀에 박힌 기획의 난무로 창작자의 개성과 자유는 죽었다. 이것이 작금의 한국 영화의 암담한 현주소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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