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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취향을 파는 큰 서점·작은 서점 <상> 오프라인 서점의 변신

서점, 이제 더는 책 파는 곳 아니다…라이프스타일 읽는 일상 속 여행지다

  • 국제신문
  •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
  •  |  입력 : 2018-01-01 19:21:09
  •  |  본지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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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와 만남·강연 문화생활 즐기고 ‘예쁜 쓰레기’고르며 트렌드 발굴
- 속도·가격 전쟁서 이긴 공룡서점도 아날로그·오프라인 감성 그리워하다

- 커피 마시며 책장 넘기는 여유…멀리 떠나지 않아도 되는 휴식처
- 서점, 인테리어·분위기·규모로 승부…무리한 경영에 적자 감당 못하는 곳도

오프라인 서점은 끝났다고 믿었다.

1997년 국내에 처음 등장한 온라인 서점이 기세등등 세를 불리다 마침내 오프라인 서점의 총매출을 추월한 2010년, 동네 서점은 이미 태반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나마 살아남은 서점들도 베스트셀러와 중고생 참고서 판매에 열을 올려야 겨우 생존할 수 있었다. 동네 중소서점의 형편은 지금이라고 다르진 않다.

2010년 서면 동보서적이 폐점하고 남포동 문우당서점이 폐업 방침을 발표했을 때(문우당은 이후 폐점하지 않고 규모를 대폭 줄여 원래 자리 근처로 이전했다), 부산 사람들이 잃은 것은 그저 큰 서점 두 곳과 그에 얽힌 추억뿐이었을까. 증세가 옅긴 했지만 아날로그시대가 정말 끝났다는 망연함과 집단적인 우울감은 분명 있었고, ‘서점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당시 신문기사·칼럼에서 그 분위기를 유추할 수 있다.

그렇게 끝나는 듯했던 서점의 시대가 2015년 교보문고 부산점 개점을 신호탄으로 다시 열렸다. 물론 서점의 부활과 대변신을 이끈 것이 기존 온라인 공룡 서점이라는 점에서 경제 민주화적인 의미를 찾기는 힘들지만, 서점을 비롯한 문화산업의 트렌드를 파악하기에 가장 좋은 분야인 것은 확실하다.

그 트렌드를 한 줄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큰 서점은 더 커지고 작은 서점은 정말 작아졌다. 이 ‘크기’라는 것은 단지 하드웨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요즘 사람들의 취향과 욕구를 충실히 반영하고 나아가 창조·설계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부산에서 영업 중인 큰 서점·작은 서점들을 통해 이 흐름을 정리할 키워드들을 만들어봤다.


   
지난달 부산 기장군 기장읍 아난티코브 내 서점 이터널저니에서 ‘취향의 여행-엄마와 함께 떠나는 후쿠오카 여행’이란 주제로 열렸던 북토크. 아난티코브 이터널저니 제공
◆키워드 1-라이프스타일 ① 책을 팔지 않는다

요즘 어떤 사업을 하려 해도 이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용어를 연구하지 않고서는 성공하기가 힘들다. 서점은 바로 그런 소비 트렌드의 최전선에 서 있다.

지금까지의 서점은 인문·문학·아동 등 고객의 필요에 따라 카테고리를 나눠 책을 진열하고, 출간되는 모든 책을 구비하려고 애써왔다. 이런 효율과 실용의 측면이라면 오프라인은 온라인에 뒤질 수밖에 없다. 온라인의 한없는 진열성과 책 보유량, 그리고 무엇보다 그 검색 능력을 당할 수 있겠는가.

요즘 오프라인 서점의 전략은 ‘책을 팔지 않는 것’이다. 그게 무슨 서점이냐 하겠지만 이들은 단지 책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판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나들이처럼 서점을 찾아간다. 매장을 천천히 둘러본다. 제인 오스틴·헤밍웨이·윤동주의 작품을 따로 모아 진열하는 기획전이 눈에 띈다. ‘새해에 읽고 싶은 책’ ‘당신의 연애세포를 살려줄 책’ 기획전도 열리고 있다. 마음이 가는 책 한 권을 뽑아 들고 서점 내 커피점에서 커피도 한 잔 사서 카페처럼 꾸며진 독서테이블에 가 앉는다.

한동안 책을 읽다 일어나서 이번에는 서점 안에 있는 문구 코너로 간다. 여행상품, 아이디어 문구, 인테리어 소품…. 젊은 층은 이것을 두고 ‘예쁜 쓰레기’라고 표현한다. 딱히 쓸모는 없는데 소유욕을 자극하는 창의적인 상품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용품들을 보면서 없던 취향이 생기기도 하고, 몰랐던 내 취향을 발견하기도 한다. 내 삶에서 새로운 필요가 발생한다.

교보문고 부산점 김한글 과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예쁜 여행용품을 보면서 여행에 대한 호기심과 욕구가 생기고, 이것이 다시 여행책에 대한 소비로 이어지는 현상이 한 매장 안에서 일어나게 되죠. 그래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판매한다는 표현을 쓰는 겁니다.”

서점을 찾는 것, 책과 물건을 고르는 것, 새 취미와 만나는 것, 구매하는 것, 귀가하는 것에 포함된 모든 문화적인 활동과 삶의 패턴을 발굴해주는 것이 요즘 서점의 전략인 것이다. 서점마다 앞다퉈 마련하는 저자와의 만남, 강연 등 프로그램도 소비자들의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며 취향을 찾도록 돕는다.


◆키워드 1-라이프스타일 ② 작은 책방

또 하나 주목할 것, 서점이 이렇게 취향을 판매하는 공간이 되면서 서점의 규모는 양극화되고 있다. 온갖 취향의 집합체인 대형서점과 단일 취향을 제안하는 미니 서점.

독립 책방, 1인 책방이라는 불리는 미니 서점에 비치된 몇 권의 책은 서점 주인의 취향과 철학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시집만 가득한 서점, 철학서·사회과학서만 빼곡한 서점도 있고, 일본 만화책만 가득한 책방, 소소한 에세이와 화보 등 감성을 파는 책방도 있다.

전포동 카페거리를 비집고 들어선 인문학 서점 ‘책방 밭개’, 연산동 ‘카프카의 밤’, 부산 작은 책방의 대표 격으로 이민아 시인이 운영하는 보수동 ‘낭독서점 詩집’ 등 어려움 속에서도 알차게 운영하는 작은 서점이 꽤 있고, 20대 젊은이들이 차리는 1인 책방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동네의 문화사랑방 역할도 하는 이런 작은 서점은 공간의 제약 때문에 주제와 스타일이 명확히 드러나게 되고, 독특한 스타일과 문화생활에 목말라 있는 이들을 유혹한다. 손님과 주인이 지적·감성적인 취향을 공유하고, 또한 작은 서점끼리도 교류하면서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조용히 자리잡고 있다.


◆ 키워드 2-아날로그 : 경험을 산다

   
부산 수영구 F1963 내 예스24 중고서점에는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대형 인쇄기와 활자주조기가 설치돼 있다. 신귀영 기자
지난해 수영 F1963에 문을 연 예스24 중고서점. 주말에 이곳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이 장소의 위력을 알 수 있다. 예스 24 중고서점 최세라 팀장은 “오픈일인 지난해 9월 24일 이후 하루 평균 방문객 2500명, 주말에는 하루 4000명 이상이 찾는데 가족 단위 고객이 특히 많다”고 밝혔다.

한쪽 코너에는 책과 출판의 역사를 시대별로 정리한 도표와 매장에 전시된 고풍스러운 활자주조기가 있다. 아날로그 서점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설치물이다. 고려제강의 옛 공장으로 55년의 역사를 간직한 공간 자체가 아날로그의 감성을 극대화한다. 최 팀장은 “단지 책과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이 중고서점은 국내 온라인 사업 거물인 네이버·예스24·야놀자가 손잡고 만든 오프라인 서점이다. 트렌드에 민감한 이들 사업자가 주목한 것이 바로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경향이다. 손으로 책장을 넘겨가며 종이책의 기품을 느끼는, 아날로그 서점의 문화적 이미지를 적극 빌려 쓰려는 전략으로 탄생한 것이 이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월스트리저널은 뉴욕시립대 리처드 오제코 교수의 말을 인용해 “디지털시대의 덧없음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아날로그 선호 현상을 해석했다. 만질 수 있는 것, 경험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강한 욕구가 젊은 세대를 사로잡아 옛것을 다시 불러내 재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 해운대구 반디앤루니스 신세계센텀시티점을 찾은 사람들이 아늑하게 꾸며진 독서공간에서 책을 읽고 있다. 은은한 조명과 분위기가 독서 욕구를 돋운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키워드 3-커피 : 일상의 여행

요즘 대형서점에는 종이 냄새가 아닌 커피 향기가 난다. 서점에서 왜 커피를 팔까. 새 책에 커피를 쏟는 ‘사고’가 속출하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커피 한 잔이, 팍팍한 일상을 견디는 사람들에게 한숨 크게 돌릴 여유를 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커피와 책이 함께할 때 ‘일상의 여행’은 완벽하게 구현된다.

부산 해운대구 반디앤루니스 신세계센텀시티점 정재연 점장은 “서점 내 커피점은 직영으로, 수익사업으로서 기능은 거의 없다. 커피는 서점을 휴식공간으로 느끼게 하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교보문고 김한글 과장은 혼자 서점에 와서 머무는 사람들이 ‘군중 속의 고독’을 즐기며 책과 친해지는 중이라고 표현한다. “북적이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백색소음 속에서 마치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커피를 마시며 책장을 넘겨요. 이런 환경에서 책을 읽으면 책이 친근하게 느껴지니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책도 많이 팔린다는 큰 그림이죠.”

‘여유-머무는 서점’이라는 특징이 극대화된 곳은 기장의 이터널저니다. 휴양 리조트 아난티코브에서 가장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장소는 레스토랑도 스파도 아닌 서점이다. 이터널저니의 전반적인 콘셉트를 기획하는 이호진 퍼시픽 에머슨 수석은 “이터널저니는 휴양공간의 일부가 아니라 시작이며 그 자체”라고 말한다.

“우리 서점이 표방하는 것은 ‘멀리 떠나지 않아도 되는 일상의 여행공간’이죠. 여행에서는 쫓기는 법이 없잖아요. 차를 마신다는 건 여유를 즐기기 위한 훌륭한 매개죠. 이터널저니의 가장 큰 특징은 ‘뭔가를 하라’고 종용하는 책이 없다는 거예요. 처세와 재테크 같은. 일상의 쉼표를 찍기를 원하는 사람, 취향을 갖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공간이죠. 이건 사실 서점의 혁명이 아니라 본래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에 위치한 교보문고 부산점. 2015년 11월 개점한 이 공간은 ‘라이프스타일형 서점’의 선두주자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키워드 4-생존 : 규모의 경제 혹은 치킨게임

작은 서점의 어려움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청년창업의 중요 모델이라며 주목받았던 지역의 한 1인 책방은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이리저리 옮기는 ‘유목 책방’이 됐다. 지난달에는 분명히 있었는데 이달에 가보니 폐업하고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책방도 많다.

작은 서점의 주인들은 “좋아서 시작한 일이고 어려움을 예상하긴 했지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고 하소연한다.
한 서점 주인은 “작은 책방에 대한 유별난 지원을 바라지는 않아요. 하지만 작은 책방이 들어감으로써 분위기를 띄운 골목에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 그 가게가 쫓겨나는 건 정말 슬픈 일이죠. 비단 서점의 문제만은 아니잖아요. 이걸 해결할 정책이란 정말 없는 건지….”

그리고 의외지만, 대형 오프라인 서점도 경영상의 어려움을 안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 대형 서점의 실무자는 “만족도 높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인테리어에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 하고, 무엇보다 입지가 좋은 곳에 경쟁적으로 입점하다 보니 임대료를 감당 못 하는 매장이 생겨나고 있다”며 “예전처럼 많은 책을 빽빽이 진열하면 인테리어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베스트셀러 진열에 치우치는 경향이 더 강해져 전통적인 서점 고객의 불만은 오히려 늘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또 다른 간부급 실무자는 “도서정가제로 가격경쟁이 의미가 없어져 인테리어와 분위기, 규모로 승부하려는 경향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며 “오프라인 서점의 변신이 독서층을 넓히고 있다고 해도 서점의 양적 팽창을 따라잡지 못하는 실정이고 그 와중에 치킨게임의 패자가 속속 생겨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 대형서점들의 롤모델 日 츠타야

- 책과 생활용품 결합시킨 원조 ‘문화기획사’
- 동네책방서 1500개 점포 확장 신화

   
한국의 대형 오프라인 서점들은 일본 츠타야 서점을 벤치마킹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오리지널리티가 츠타야에 있기 때문이다.

지주회사 ‘컬처컨비니언스클럽’이 소유한 츠타야는 1983년 작은 동네 책방으로 문을 열어 지금은 1500개 점포와 600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거대 서점기업이 됐다.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모든 것을 수집하고 진열하며 제안하는 ‘문화기획사’. 이것이 츠타야가 내건 모토다.

책과 음반은 물론 소품, 문구, 전자제품까지 생활의 모든 용품을 한 매장에서 만날 수 있게 한 숍의 형태는 현재 우리나라 대형 오프라인 서점과 흡사하다. 츠타야가 30년간 축적한 노하우를 한꺼번에 들여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돼 베스트셀러가 된 책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사진)에서는 창업주 마스다 무네아키 회장이 사내 블로그를 운영하며 사원들과 공유한 ‘경영 일기’가 실렸다. 현대 소비자의 변화와 문화적 욕구를 분석한 놀라운 비즈니스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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