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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75> 시래기와 시락국

시래기 넣고 ‘팔팔’ 밥 말아 ‘뚝딱’… 이것만큼 흔하고 구수한게 없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12-19 18:53:01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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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래기의 경상도말 ‘시락’
- 무청·배추 겉잎·얼갈이 배추
- 햇볕에 잘 말리고 물에 불려
- 겨우내 국·찌개·나물 재료로

- 주로 멸치육수에 된장 국물내나
- 장어·돼지고기·소고기 쓰기도
- 해안지역 영도는 곰피 활용

서민들에게는 친숙하면서 추억이 담뿍 담긴 음식, 시락국. 시락국은 비교적 싼 가격에 먹을 수 있으면서, 영양가 또한 담보되는 음식이다. 때문에 오래 전부터 가난한 이들에게는 친구처럼 편안한 음식이기도 했다.
무청시락국 한 상.
부산에서 시락국은 으레 시장의 허름한 백반집이나 시락국밥집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던 음식이었다. 시장에 지천으로 나뒹구는 배추 겉잎이나 값싼 얼갈이, 한때 내버리던 무청 등을 걷어다, 멸치 육수에 된장 묽게 풀고 미리 데친 시래기를 넣어 끓여내면 시락국이 되었다. 원래 ‘시락’은 시래기의 경상도 말.

이 시락국을 한 솥 끓여놓고, 오는 사람 가는 사람 국밥으로 말아주고, 새벽 상인들 뜨끈한 해장술국으로 내어주고, 시장을 찾는 서민들 가벼운 호주머니 사정에 맞는 백반의 토장국으로도 제공했던 것이다.

■시락국은 시래깃국의 경상도 말

배추시락국 한 상.
시래기는 가을 무청을 한 묶음씩 짚으로 묶어 말려놓았다가 겨우내 필요할 때마다 조리해 먹던 식재료로, 전국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흔하면서도 부담 없는 서민들의 식재료였다. 특별히 재료가 필요하지 않고, 조리하는 방법도 비교적 간단하기에, 시래기로 밥을 지으면 시래기밥이 되고, 죽을 쑤면 시래기죽이 되었다. 이렇게 국과 찌개, 나물 등 시래기만 있으면 다양한 ‘시래기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가 있었다.

나물과 죽은 구수한 맛을, 국이나 찌개는 깊고 시원한 국물 맛을 낸다. 시래기밥 또한 풍미가 좋아 요즘 별미의 건강음식으로 꼽히고 있다. 시래깃국은 지역마다 육수를 달리 하고 있어 특별하다. 부산경남의 해안지방은 멸치와 장어로 육수를 내고, 경상도 내륙지방은 돼지고기로 육수를 낸다. 중부지방에는 소고기로 육수를 내기도 한다. 최근에는 삶은 시래기를 된장에 버무려 냉동시켜 놓으면 언제라도 가정에서 쉽게 조리해 먹을 수도 있다.

무청(왼쪽), 무청시래기.
부산에는 이 시래기의 식재료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무청과 배추 겉잎, 얼갈이배추 등이 그것이다. 특별하게 영도지역에는 시래기와 함께 해안가에 지천이던 곰피를 활용해 시락국을 끓이기도 했다.

원래는 말린 무청으로 끓여내던 시락국이, 무청이 비싸지면서 기존의 식재료 대신 쉬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대체해 활용하게 된 것. 이는 구하기 쉽고 싼 가격에 마련할 수 있는 ‘대체 식재료’를 활용하는 부산의 특별한 음식조리문화에서 기인한 것이라 추측된다.

시래기 중 무청은 식이섬유가 많아 식감이 풍부하고 뒷맛이 진하고 깊다. 배추 겉잎은 적당한 식감에 적당히 고소하면서 시래기와 국물 맛이 서로 조화롭고 정제되어 있다. 얼갈이는 부드러운 식감에다 국물이 편안하고 깔끔해 뒷맛이 좋다. 때문에 지금은 각각의 특징들을 살린 다양한 시락국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무청, 배추 겉잎, 얼갈이배추 활용

무청시래기를 물에 불린 것.
육수는 멸치를 쓰기도 하고 장어 등을 고아서 쓰기도 한다. 들깨가루를 쓰는가 하면 산초를 듬뿍 뿌려먹기도 한다. 양념도 먹는 이의 입맛에 맞춰 다진 청양고추와 마늘, 소금, 고춧가루, 산초가루 등을 넣어 먹을 수 있는 것이 부산의 시락국이다. 이마저도 ‘이주민의 도시’ 부산이기에 다양한 지역에서 정착한 사람들의 입맛을 모두 수렴하는, 부산만의 ‘식문화 풍속’에서 기인한다.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다양한 음식으로 변주되는 음식 또한 시락국이다. 국밥으로, 술국으로, 해장국으로, 산초 듬뿍 넣으면 추어탕식 음식이 됐다가, 된장을 많이 풀면 토장국이 되기도 하고, 장어로 육수를 내면 장어탕이, 돼지고기를 숭덩숭덩 썰어 넣으면 돼지찌개처럼 되기도 하는 것이 시락국이다.

얼갈이 배추.
시락국밥은 서민들을 위한 가장 대표적인 ‘슬로우푸드’이자 ‘패스트푸드’이다. 시락국의 주재료인 시래기는 무청이나 배추 겉잎 등을 겨울바람과 햇볕에 천천히 말려야 그 맛이 웅숭깊어진다. 육수에 풀어 넣는 된장은 또 어떠한가? 오랜 세월 장독에서 숙성과 숙성을 거듭하며 길고 긴 발효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제 맛을 낸다. 가히 오랜 세월이 빚어야만 제대로 된 음식이 되는 음식이 시락국이다.

그러나 어느 시장 어느 식당에 가든 주문과 함께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 또한 시락국밥이다. 솥에서 한창 끓고 있는 시락국에 밥 한 덩이 척 말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찬도 소박하다. 깍두기나 김치 한 보시기면 된다. 그러하기에 가장 정성스런 음식이면서 가장 보편적인 음식이기도 하겠다.

■따뜻한 추억을 소환하는 부산음식

삶은 배추시래기.
대학생 시절 시장 구석빼기에서 공짜 시락국에 막걸리 한 잔 들이키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늘 가난했고, 그런 우리를 시락국집 할매는 빈 시락국 그릇을 계속 채워 주는 것으로 우리를 이해했다. 민주주의니, 독재정권이니 하면서 울분을 토하던 시절, 막걸리 한 잔과 시락국 한 그릇에 시대의 정신이 형형하게 빛났던 것이다.

몇 년의 서울생활을 마치고 귀향하던 날, 추적추적 궂은비가 내렸다. 심신이 꿉꿉하던 차에 역전 작은 식당에서 낯익게 구수한 냄새가 나는 것이다. 식당 문 앞에 큰 솥을 걸어놓았는데, 시락국이 슬슬 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 부산에 도착했구나! 갑자기 울컥해지는 마음을 추스리느라, 한참을 시락국이 끓는 솥 앞에 서 있었던 기억이 있다.

이렇듯 시락국은 부산 사람들의 추억을 소환하는 마음의 음식이었다. 어린 시절 밥이 모자라면 어머니들은 시락국에 밥을 말아 국밥을 끓여주셨다. 그 국밥에 무김치 하나 입에 물면 그나마 감지덕지 했던 시절이었다.

겨우내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며 잘 말린 시래기에, 촌 된장으로 바글바글 끓여낸 시락국. 국물 한 술 뜨면 부드러우면서 구수한 국물이 참~ 소박하고 담박했다. 멸치장국으로 맛을 내 시원하고 깔끔함 또한 여느 국과 비할 바가 없었다.

국에 밥을 말아 한 술 뜨면, 부드러운 목 넘김에 세상의 갑갑함 또한 시원하게 풀렸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쯤이면 입안은 입가심하듯 개운해지고, 뱃속은 편안하고 든든해지는 것이다.

시래기에는 항산화효과가 있는 비타민C와 뼈에 좋은 칼슘, 혈압 조절에 유효한 칼륨도 풍부하다. 식이섬유가 많아 변비를 예방하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며, 몸 안의 독소와 노폐물을 배출시키는 효과도 있다.

그러하기에 ‘시락국’은 한겨울 부족한 영양소를 충분히 보충해주고, 으슬으슬한 심신 또한 따끈하게 지져주는 음식이다. 뜨거운 시락국 한 모금으로 겨울의 아침이 환하게 밝아오고, 시락국 두 모금으로 온몸이 온통 따뜻하게 풀려나는, 우리 부산의 정겨운 겨울음식이기도 하다.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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