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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25> 김수열 시인의 시집 ‘물에서 온 편지’

아름답고 아픈 섬의 사연, 생생한 제주어로 펄떡인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12-18 18:53:01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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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서 나고 사는 시인
- 고소한 보말죽의 맛과 냄새
- 제주 4·3의 아픔과 진실을
- 이야기하듯, 노래하듯 전해

- 방언으로, 문자로 읽지 말고
-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 가슴으로 느끼며 읽다보면
- 낯설던 시의 뜻 헤아려져

우리가 매일 하고 있는 말이 얼마나 생생한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정돈된 문장, 정확한 발음은 아니라도 우리가 하는 말은 살아있고, 활기차다. 우리의 말이 곧 삶이기에 그렇다. 제주의 김수열 시인이 펴낸 시집 ‘물에서 온 편지’는 제주의 삶을 담고 있다. 제주의 바다처럼 푸르고 생생하다. 그래서 더 아름답고, 또 아프다. 김수열 시인을 제주도에서 만났다.
김수열 시인이 제주시 아라동 노인회관 앞에 서 있는 오래된 멀구슬나무 아래 가만히 섰다.
김수열은 1959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1982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어디에 선들 어떠랴’ ‘신호등 쓰러진 길 위에서’ ‘바람의 목례’ ‘생각을 훔치다’ ‘빙의’ ‘물에서 온 편지’ 산문집 ‘김수열의 책읽기’ ‘섯마파람 부는 날이면’을 펴냈다.

부산에서 첫 비행기로 날아간 터라 속히 헛헛했는데, 시인이 각재기국을 권했다. 싱싱한 전갱이를 손질해 배추를 듬뿍 넣고 된장을 푼 제주도 토속음식이다. 시인을 따라 각재기 살을 숟가락으로 살살 풀어냈다. 먹기가 더 수월했다. 한 숟가락 떠먹었는데, 속이 확 풀리는 깊은 맛이다. 한 그릇 먹고 나니 든든하다.

김수열은 제주시 아라동에서 살고 있다. 큰 키로 성큼성큼 걷는 시인의 뒤를 따라 아라동을 돌아보았다. 아라동에는 시인의 단골카페가 있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마치 집필실처럼 생각하고 들르는 곳이다. 시인이 즐겨 앉는 탁자는 도서관 책상처럼 널찍하고 튼튼했다. 그가 마을산책 때마다 만나는 멀구슬나무는 노인회관 앞에 서 있다. 오랜 세월 마을을 지키고 또 보아온 나무이다. 마을길을 둘러싼 돌담 위로 드리워진 담쟁이덩굴에는 단풍잎이 아직 매달려있었다. “돌담이 제법 높아서 거의 성곽처럼 보이지 않아요?” 시인이 돌담을 쓰다듬었다. 그는 개발광풍에 휩쓸려 나무가 베어지거나 돌담이 쓰러지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마을을 산책한다. 그 마음으로 제주섬에서 살며, 제주의 말로 시를 쓰고 있다.

■제주 말로 쓴 시의 맛

물에서 온 편지- 김수열 /삶창 /2017
시집을 보려면 혹 제주방언사전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시인은 “사전이 있다는 말은 더 이상 방언이 아니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정리를 하면 표준어가 되는 겁니다. 시집 ‘빙의’를 낼 때, 독자들이 제주 말로 쓴 시를 읽기 힘들 거라고 걱정하는 분들이 있어 표준어로 쓴 시를 함께 수록했는데, 시의 맛이 떨어지더군요.”

시집 ‘물에서 온 편지’에 수록된 시 ‘보말죽’의 일부를 읽어보자. 제주시 한림읍에서 20분 정도 배를 타고 가는 작은섬 비양도에서 쓴 시다. 비양도 포구의 식당에서 보말(고둥)을 파내는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 말씀을 시로 적었다. ‘제주 말로 쓴 시의 맛’을 흠뻑 느껴볼 수 있는 시다.

“물 싸민 갯것이 강 그거 잡아당/ 솥단지에 놩 개끔 부각헐 때꼬지 솖앙/ 이불바농으로 눈 멜라져가멍 토다아장 그걸 파내엉/ 딱지도 때내곡 또시 고는 체에 놩/ 손으로 박박 문대기믄 요물은 남곡 똥은 해싸지곡/ 똥 해싸진 물에 곤쏠 불린 걸 놩 보글보글 끓을 때/ 보말 요물 넣곡 당근 송송 썰어 넣곡 마늘쫑 쫑쫑 썰어 넣곡/ 다시 바질바질 끓으민 약헌 불에 맞췅 촘지름 넉넉허게 놩/ 휘휘 저시믄 그게 보말죽이주/ 배추김치에 참깨 절인 것에 혼번 먹어봐, 잘도 코시롱허여”

이 시를 ‘문자 읽기’로 하면 제주 방언 때문에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품을 게워낼 때까지 삶아낸 보말을 굵은 이불바늘로 돌돌 돌려 똥까지 깨끗하게 파내는 할머니를 떠올리며, 보말죽을 끓이는 과정을 상상하며 읽으면 시의 맛이 느껴진다. 채에 놓고 문대면 살만 남고, 보말똥이 흩어져 물에 녹고, 그 물에 불린 흰쌀 넣고 보글보글 끓이고, 당근 마늘쫑 넣고, 참기름 둘러 배추김치와 함께 먹으면 얼마나 고소할지 입에 침이 고인다.

그렇게 상상하는 동안 몇 개의 제주 방언을 알게 됐다. 소리 내어 읽어보면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시인은 말했다. “요즘은 제주에서도 이렇게 보말죽 끓이는 사람이 없다고 해요. 할머니가 남긴 ‘보말죽 레시피’인거죠.” 이 시는 할머니의 말과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시는 문자 이상의 것을 품고 있는 것이다.

■말과 삶을 품은 詩

김수열의 시를 읽으면 제주에서 출발한 잔잔한 파도가 육지에 선 나의 발밑으로 밀려와 닿는 기분이다. 시는 글자로 읽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임을 알게 한다. 모르는 말이 있으면 또 어떤가. 그 말은 그대로 두고, 또 읽었다. 그걸 몇 번 반복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말자. 그러면 처음에는 낯설었던 말의 의미가 서서히 본래의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시집 ‘물에서 온 편지’가 품고 있는 제주 4·3의 아픔과 진실도 그렇게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시 ‘몰라 구장’은 4·3을 기억하는 섬사람들의 기억 하나를 이렇게 들려준다.

“아이구 말도 마라, 우리 동넨 몰라 구장 덕분에 살았주 경 안 해시믄 하영 죽어실 거라, 4·3 시절에// 군인 경찰이 들이닥쳔 우리 구장신디 누게 누게 어디 갔느냐 물으니까// …몰라……모르커라”

구장의 목숨 건 ‘모른다’는 이렇게 이어진다. 모른덴허난, 정말 모르쿠다케, 모르는 걸 어떵합니까…. ‘모른다’는 섬의 말이 그대로 가슴에 와서 박히는 듯하다. 말의 힘이 사람을 살렸고, 시로 남았다. 김수열 시인의 시집에는 ‘말과 삶’이 있다.

책 칼럼니스트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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