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짐 그랜트 유니세프 前총재 다뤄
어린이에게 예방 접종을 하기 위해 전쟁을 멈추게 한 협상력을 발휘한 사람, 71개국 국가수반과 88명의 정부 대표를 모아 ‘어린이를 위한 세계 정상 회담’을 성사시킨 인물. 1980년 유니세프 수장에 올라 유니세프 위상을 드높인 짐 그랜트의 업적이다.
휴머니스트 오블리주는 그가 유니세프 3대 총재로 재임했던 15년의 치열하고 대담했던 삶을 그린 에세이다.
그는 책의 부제처럼 ‘선의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던 현실주의자였다. 모든 것을 하려고 동분서주하는 대신 정말 심각한 문제에 집중해 성과를 냈다. 그의 초기 관심은 ‘경구 재수화염’이었다. 소금과 설탕을 일정 비율로 섞어 물에 타서 먹이면 아이들의 설사병을 잡을 수 있었다. 그는 셔츠 주머니가 불룩하도록 경구 재수화염 봉지를 넣고 다니며 각국 정부 수반을 만날 때마다 뜯어서 시연했다. 다음 관심은 아동 예방 접종이었다. 예방접종을 하려고 한창 벌어지던 전쟁을 멈추도록 중재하는 대담한 일도 벌였다. 엘살바도르를 비롯해 수단, 레바논,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시 휴전한 상태에서 예방 접종을 성공적으로 실시했다.
유니세프 추산으로, 그가 총재였던 시절 2500만 명 어린이가 생명을 건졌다. 그가 추진한 ‘아동 생존 혁명’으로 1980년 16~17%대였던 예방 접종률은, 1991년을 기준으로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내는 6가지 질병만 따져도 80%를 넘겼다.
모두가 그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건 아니다. 그는 직원들을 한계 이상으로 밀어붙이고 대면하기 싫은 현실은 무시해 반감을 샀고, 관료적인 유엔 문화와도 충돌했다.
그는 1995년 암으로 세상을 떴다. 독재자와 손을 잡더라도 가난하고 아픈 아이를 구하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남은 우리의 몫이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