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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편 잡는 시인의 정갈하고도 따뜻한 詩

조향미 네 번째 시집 ‘봄 꿈’

  •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
  •  |   입력 : 2017-12-03 19:14:37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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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 눈에 비친 삶·세상 담겨
- 안일한 현실에 자성 목소리도
- “아이들에 열린 시각 주고싶다”

땅에 발을 딛고 있을 때, 시(詩)도 아름답다. 세상의 온갖 말을 수집해 혼신의 공을 들여 조합한다 해도 그 말이 구름 위에 떠있다면 손짓 한 번에 흩어질 뿐이다.

조향미 시인이 11년 만에 낸 새 시집 ‘봄 꿈’(산지니 펴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1986년 등단한 조 시인은 현재 만덕고 교사이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1986년 등단한 시인 조향미가 11년 만에 네 번째 시집 ‘봄 꿈’(산지니)을 냈다.

조향미의 시는 내가 아는 얘기를 하거나, 내가 모르는 얘기라도 누군가는 아는 얘기를 한다. 아는 얘기를 하는데 내가 실은 그 얘기를 잘 몰랐구나, 안일하게 생각했구나, 깨닫게 만든다. 그의 자성과 사무침은 정갈한 시어로 전달되고 사람들은 시인과 함께 깨어난다.

밥 한 그릇이 태산 같다/죽 한 사발이/바다 같다/나는 한 마리 개미가 되어/빌빌거리며 산을 올랐다(‘밥 한 그릇-항암치료’ 중)

‘항암치료’라는 부제가 붙어있지 않다면, 밥 한 그릇의 숭고함에 대한 찬양이 되고 말았을까. 멀쩡한 사람에게 밥 한 그릇이 대수랴. 배고프면 뚝딱 비우고, 배부르면 물렸다가 나중에 먹으면 그만이다. 독한 항암제를 맞고 항문에서부터 치솟는 구역질을 견뎌야 하는 사람에게 밥 한 그릇은 태산보다 높다. 죽인다고 해도 못 먹겠는데, 살려면 먹어야 하니까 태산이다.

조향미 시인은 고교 교사다. 혁신학교인 만덕고 교사다. 그래서 시에 학교가 많이 등장한다. 교정을 내다보며 점심 도시락을 먹는 것도, 여자친구가 생긴 후부터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귀여운 남학생도, 공부의 사막을 낙타처럼 맥없이 걸어가는 아이들도 그에게는 모두 시, 시다.

방년 십팔 세 꽃다운 나이/남학생 녀석들/운동장에서 뻥뻥 공만 찬다/러닝셔츠 흠뻑 젖어/꽃그늘에 앉아 땀 닦으면서도/등꽃 한 번 안 쳐다본다… 겅중겅중 뛰기만 하는/수노루 같은 놈들/내 차마/짐승 같은 놈들이라고는 안 한다만(‘남학생들’ 중)

슬몃슬몃 누르다가 마지막에 조그맣게 폭발하는 애정. 그 한마디 유머에 본 적도 없는 시커먼 남고생들이 사랑스럽다. 얼마나 사랑해야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랑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을까. 천생 교사인가 한다.

그의 시 다수에는 따뜻한 충만감이 찰랑거린다. 일상의 아주 작은 것에도 쉽게 행복해하는 사람의 특권이리라. 행복의 소중함을 알기에 그는 세상의 불행을 아파한다. 밀양 송전탑 마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낀 울분과 슬픔은, 정제하느라고 애썼다는 그의 시를 비집고 나온다.

체중 34키로 골다공증 굽은 몸으로/산을 오르고 나무 부여잡으며 보낸 십년/구덩이 파고 목줄까지 묶으며 싸운 할매는/말이 곧 사람임을 믿었다…그러나 씹다 만 껌보다 가벼운 권력자의 말/할매는 믿던 도끼보다 독하게 찍혔다(‘부엉이’중)

‘결핍의 겸허함’을 알기에 풍요에 도취돼 질식하기를 경계한다.

요금제를 확 낮추었다…예금 잔고와 통신 데이터 반 너머 줄어들 때/무언가 그리운 것이 파고든다/무제한은 신의 영역/생은 제한이어서 이렇듯 애틋한 것이다(‘무제한’ 중)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안정지향적이고 비판이 둥글거라는 편견이 있다 했더니 웃으며 말한다.

“국어교육과를 나왔지만 교사를 하겠다는 생각이 젊을 땐 없었어요. 내 글을 쓰고 싶었지. 어쩌다가 교사가 됐는데, 교사 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소명의식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싶고 아이들이 잘 컸으면 좋겠어요. 열린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인문학적 소양도 익혔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에게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그걸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죠.”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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