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은 남편 빚에서 도망친 여인
- 법복 벗어던진 중년의 판사
- 싼 골반수술 원하는 주부 등이
- 같은 인도 패키지 여행에 모였다

- 사진과 다른 호텔 실망도 잠시
- “결국 모든게 다 잘될거에요”
- 변화의 기회 앞에서 두려워않고
- 각자의 방식으로 인도를 배워가

관광객과 여행자의 차이는 뭘까요? 미국 작가 폴 바울즈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마지막 사랑(The Sheltering Sky)’은 이렇게 구별합니다. “관광객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한다. 반면에 여행자는 안 돌아갈 수도 있다(A tourist is someone who thinks about going home the moment they arrive. Whereas a traveller might not come back at all).”

	그림=헌즈 작가

여기 관광객들과 여행자들의 집단이 있습니다. 전부 은퇴한 황혼의 영국인입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떠넘긴 빚을 갚느라 빈털터리가 된 에블린. 그녀는 심적 평온을 위한 휴식이 간절합니다. 정년까지 몇 년 더 남아있건만 “난 하루라도 더 미룰 수 없어(Today is the day)”라고 외치곤 법복을 벗어 던진 판사 그레이엄. 그는 옛 동성 연인을 찾아 떠나기로 합니다. 외국인을 싫어하고 발음하기 어려운 음식엔 입도 안 대는 전업주부. 그녀의 해외여행 목적은 빠르고 싸게 골반 수술을 받는 것입니다.

그 밖에 딸의 인터넷 사업에 투자했다가 재산을 몽땅 날린 부부, 새 남편감을 찾는 게 여행의 유일한 목적인 여자, 그리고 ‘하룻밤 섹스(one-night stand)’를 기대하는 바람둥이 등입니다.

‘베스트 엑조틱 매리골드 호텔(The Best Exotic Marigold Hotel)’에 등장하는 7인의 영국인들은 서로 일면식도 없던 사이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 팀이 된 걸까요. “모든 감각을 활짝 눈뜨게 할 멋진 곳은 없을까?” 그게 궁금했던 그들은 흥미롭게도 똑같은 여행 상품을 산 것입니다. 그들을 낚은 낚싯바늘에는 어떤 광고가 걸려있었던 걸까요. 그들의 목적지는 인도 자이푸르에 있는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입니다.

이 대목에서 인도 태생의 영국 작가 겸 시인이며 1907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러디어드 키플링의 글을 소개합니다. ‘외국을 이해하고 싶다면 제일 먼저 그 나라의 냄새를 맡아보라(The first condition of understanding a foreign country is to smell it).’ 키플링은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수많은 문화와 명소에 관한 글을 남겼는데요, ‘어떤 나라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그곳에 가 직접 체험하라’는 메시지가 그의 명구에 담겨있지요.

이 영화는 ‘E’로 시작하는 세 단어들, 즉 3Es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국적이고(Exotic)’ ‘특별하며(Extraordinary)’ ‘재미있는(Entertaining)’ 작품입니다. “이국적 정취가 깊고 풍부한 인도에서 특별한 걸 즐기며 재미있는 나날을 보내다 오자.” 그런 기대감을 안고 떠난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속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들이 지배인 청년에게 따지는군요. “당신, 호텔 사진을 뽀샵질 했잖아요(You photoshopped it).”

호텔 정원에 ‘금잔화(marigold)’가 만발해 있다더니 잡초만 무성하고 건물은 주저앉기 직전입니다. 객실엔 전화기도 없고, 심지어 어떤 객실은 방문이 없습니다. 지배인 청년은 인도 속담을 들먹여가며 호기롭게 설득합니다. “결국 모든 게 다 잘 될 거예요. 그렇게 안 되면 아직 때가 안 온 거고요.”

	영화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의 한 장면.

그들은 환불받아 돌아갈까요? ‘그 나라 냄새를 맡아보라’고 한 키플링의 권유를 아는지 모르는지 악취 타령만 늘어놓습니다. 영국에 돌아가지 못하는 각자의 사연과 처지를 위선으로 감싼 채…. 그때 일행은 에블린(쥬디 덴치)의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진정한 실패는 ‘안 해보는 것’이지 않을까요. 늙었다고, 상황이 바뀌었다고 겁먹고는 새로운 걸 시도조차 안 해본다면 세상은 우릴 겁쟁이라 하지 않을까요?”

관광 삼아 온 이도, 여행하러 온 이도 이제 각자의 방식으로 인도를 배워갑니다. 누군가는 새 일자리를 찾아 도전합니다. 누군가는 새 사랑을 위해 갖은 구애의 노하우를 써먹습니다. 낡고 누추해도 정을 붙이니까 괜찮다며 호텔에 더 머물자는 이도 생깁니다. 아뿔싸, 문제가 터지는군요. 지배인의 어머니가 호텔을 팔겠다고 선언합니다.

인생역전을 꿈꾸는 황혼기 외국인 고객들을 위해 호텔을 잘 키워보려 한 지배인의 꿈은 곧 무너질 판입니다. 게다가 지배인은 연인이 있는데도 그의 어머니는 자기가 소개하는 여자하고만 결혼을 허락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습니다. 이제 영국인들은 지배인을 도와 호텔을 지켜줄 작전을 짭니다. 에블린은 지배인의 연애 코칭을 도와줍니다. 과연 그들의 노력은 빛을 발하게 될지….

하이라이트 부분에 이르면 에블린이 귀에 익은 격언을 들려줍니다. 처음 도착해 지배인에게 들은 인도 격언입니다. “결국 모든 게 다 잘 될 거예요. 그렇게 안 되면 아직 때가 안 온 거고요(Everything will be all right in the end. If it’s not all right it‘s not yet the end).”

이 격언은 변화의 기회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기꺼이 도전할 때 비로소 좋은 기회와 결과가 온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지요. 그렇기에 미국의 대문호 존 스타인백도 이런 글을 남겼고요. ‘노년이 되면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안타깝게도 더 좋은 기회나 결과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데도….’

감독은 ‘셰익스피어 인 러브(Shakespeare in Love)’를 만들어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존 매든입니다.

외화번역가


※플로베르, 보들레르, 고흐 등의 소설가, 시인, 화가는 이국적인 곳에서 어떤 ‘여행의 기술’을 발휘했는지 궁금하시다면 알랭 드 보통이 지은 ‘여행의 기술(The Art of Travel)’을 추천합니다.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