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에 자격지심 없이 쿨하게 가짜 소비하는 2030
- 시티즌 오블리주·당당한 사표 등 내년 트렌드 소개
‘짝퉁’은 진품 앞에서 초라하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그게 상식이었다. 오만하게 고개를 들고 ‘그래, 내가 베꼈다’고 선언하는 가짜들이 등장하면서 세상에 군림하던 진짜는 혼란에 빠졌다. 그 진짜를 얻기 위해 사력을 다한 기성세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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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유명 브랜드 베트멍은 택배회사의 유니폼 디자인을 그대로 차용한 상품을 만들어 버젓이 고가에 판매했다. ‘멋진 가짜 트렌드’가 변형된 형태다. 부·키 제공(왼쪽), 디자이너 스텔라 메카트니가 디자인 한 인조 모피 옷. 부·키 제공 |
2013년부터 매년 당대의 라이프 트렌드에 관한 책을 써온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이 2018년 키워드로 ‘아주 멋진 가짜(Classy Fake)’를 제안했다. 모피의 비윤리성을 힐난하며 등장한 페이크 퍼(가짜 모피)에 진짜 모피 옷보다 더 큰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 불행한 닭이 낳은 공장식 닭장의 계란을 먹느니 식물 단백질로 만든 인공 달걀을 먹겠다는 사람들. 프랑스 패션 브랜드 베트멍이 한국의 짝퉁 소비를 비꼬려는 의도로 내놓은 ‘공식 짝퉁 옷’에 열광하는 사람들.
이처럼 전복적으로 가짜를 소비하는 이들은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 사이에 출생한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다. 그들은 가짜를 입고 신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쿨하다, 멋지다고 느낀다. 이들이 향유하는 가짜는 진짜에 대한 자격지심이 없기 때문이다. 명품을 베끼기만 한 짝퉁이라면 태생적 한계로 주눅 들겠지만 진짜를 패러디하거나 키치적으로 해석한 가짜는 당당히 가짜임을 밝힌다.
수직에서 수평으로 바뀐 진짜와 가짜의 관계는 심지어 역전되기도 한다. 명품의 값싼 대체제로 치부되던 패스트패션에 명품 브랜드들이 협업을 제안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소비자가 처음으로 자본의 가치 결정에 개입해 주도한 결과라고 해석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가짜’에 대한 탐닉은 소비재를 사고파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VR(가상현실)을 떠올려보라. 부산에서 비행기로 열 다섯 시간 날아가야 볼 수 있는 유럽 미술관의 그림을 VR을 통해 자세히 볼 수 있다면, 게다가 붓질까지 느낄 수 있게 고해상도로 촬영됐다면 그 그림은 진품인가 가품인가. 그 문화 행위는 가짜인가 진짜인가. 실제로는 우울한 삶을 사는 사람이 SNS에 자신의 풍요롭고 행복한 모습만 찍어 올리며 과시욕을 채운다면 SNS 속 그의 삶은 가짜인가, 진짜인가. 젊은 세대의 일상에 안착한 IT 기술은 전반적인 삶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동시에 진짜와 가짜의 구분을 허물어버린다.
이 책이 내년 라이프 트렌드로 주목한 항목에는 ‘멋진 가짜’ 말고도 ▷제모하는 남자 ▷시티즌 오블리주 ▷나만의 월든 ▷당당한 사표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 등 12가지가 있다. 이 모든 키워드를 관통하는 단어는 역시 Y(Y2K)세대, 밀레니얼 세대라 불리는 2030이다. 기성세대에게는 조금 서글픈 말일지 몰라도 소비와 생산, 그리고 세계의 공통 흐름과 가치관을 창출하는 주도권은 젊은 세대에게로 넘어갔다. 당연한 일이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