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전제일주의 구세대 리더 그루그
- 그의 앞에 나타난 신세대 리더 가이
- 사사건건 트집 잡고 미워하는 새
- 그루그는 가이에게서 배우고 만다
- 창의력과 호기심이란 애물단지를

여기 한 가장(家長)이 있습니다. 원시인 그루그(Grug)입니다. 그의 집은 거대한 암벽의 맨 아랫동아리에 있습니다. 널찍한 동굴 주택입니다. 이 가장이 가장 싫어하는 게 있습니다. 호기심과 변화와 바깥세상입니다. 그가 입만 열면 쏟아내는 경고가 있습니다. “절대 동굴 밖에 나가지 마(Never leave the cave).”

	그림=헌즈 작가

아인슈타인의 명구를 하나 소개합니다. “사람들은 제가 머리도 재능도 매우 특출하다고 합니다만 저는 그저 호기심이 무척 많을 뿐입니다(I am neither especially clever nor especially gifted. I am only very, very curious).” 이런 명구도 있습니다. “‘왜(Why)’를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로 삼으세요(Make ‘why’ your favorite word).” 늘 호기심을 키우고 질문을 많이 하라는 뜻이지요. 그게 곧 창의력을 키우는 첩경이니까요.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크루즈 패밀리(The Croods)’의 주인공은 그루그의 딸 이프(Eep)입니다. 무척 흥미롭게도 ‘Eep’의 발음이 ‘If’와 닮아있습니다. 이름에서 ‘만약에’라는 의미가 우러나는 10대 소녀 이프는 제일 좋아하는 게 호기심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창의성이 존재해야 하는 가장 위대한 이유인 ‘변화(change)’입니다.

그루그가 특히 아끼는 가족은 외동아들입니다. 이프의 동생 텅크(Tunk)인데요, 저돌적인 느낌을 가진 ‘탱크(Tank)’를 떠올리게 하지요. 무척 착하지만 얼뜨기(meat head)인 텅크는 아빠 명령이라면 죽는시늉도 해가면서 꼬박꼬박 장단을 맞춥니다. “난 새롭거나 다른 건 죽어도 안 할 거야(I will never do anything new or different).”

그루그는 구세대 리더의 상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고리타분합니다. 개똥철학만 늘어놓고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새로운 건 항상 나빠(New is always bad). 변화는 나빠(Change is bad).” 참다못한 이프는 아빠 명령을 한 번쯤 거역해보기로 합니다. 구닥다리 권위에 도전하는 의지, 그것은 곧 창의력이니까요. 어두운 밤, 가족이 잠든 사이에 이프는 동굴 밖에 나갑니다. 그러곤 태어나 처음 목격합니다. 이름이 가이(Guy)인 고아 소년의 횃불입니다.

가이는 신세대 리더의 상입니다. 우직하게 ‘힘(brawn)’만 앞세우는 그루그와 달리 가이는 번득이는 ‘머리(brain)’를 가졌습니다. 심지어 그는 횃불을 만들 줄도 압니다. 가이가 만든 ‘인류 최초의 횃불’은 곧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상징합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창조자를 상징하는 ‘제우스’ 몰래 훔쳐 인간에게 준 그 불은 곧 ‘창의력(creativity)’을 은유합니다. ‘남보다 먼저 생각하는 자’인 프로메테우스처럼 가이는 ‘미래(Tomorrow)’를 내다볼 줄 아는 캐릭터입니다.

호기심 많은 이프가 창의력 뛰어난 가이에게 끌리겠지요? 가이는 그루그 가족에게 거대한 ‘쌍둥이 봉’이 있는 ‘heaven(천국)’에, 아니 ‘haven(피난처)’에 데려가 주겠다며 앞장섭니다. 그 제안을 그루그가 덥석 받아들일 턱이 없습니다. 그는 바깥세상을 두려워하니까요. 반면 가이는 변화가 두렵지 않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마중하려는 큰 꿈도 있고요. 이프는 그런 가이가 마음에 ‘쏙’ 듭니다. 그루그는 그런 가이가 ‘싹’ 없애버리고 싶을 만큼 밉습니다. 결국 둘 사이엔 사사건건 충돌이 일어납니다. 그럴 때마다 이프가 들어주는 건 가이의 손입니다.

과연 크루즈 가족은 ‘쌍둥이 봉’에 갈 수 있을까요. 가이가 내리는 결정이라면 족족 반대만 하는 그루그. 그의 지각없는 언행과 아집은 대지가 쩍쩍 갈라지는 거대한 지각변동 앞에 와르르 무너집니다. 그들이 살아남으려면 대지진이 갈라놓은 두 대륙 사이의 까마득한 계곡을 건너는 길뿐입니다.

그루그의 장모, 아내, 딸, 아들, 늦둥이 막내딸, 그리고 가이 앞에 그루그가 우뚝 나섭니다. 이렇게 선언하는군요. “내가 힘을 써보겠어.” 그가 포환던지기 선수처럼 가족을 계곡 건너편에 날려버리는군요. 그만 홀로 남았을 때 아뿔싸, 산사태가 그루그를 가둬버립니다. 그토록 그가 좋아하는 동굴 속에 말이지요.

가족을 그리워하는 그루그. 가족을 못 만날까 봐 두려운 가장. 그런 마음을 담아 그가 동굴 벽에 가족 그림을 그립니다. 그러더니 돌연 눈이 번쩍, 힘만 써왔던 그가 처음으로 돌덩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합니다. 가이에게 배운 방법으로 불도 만듭니다. 이어서 질문하기 시작합니다. “내 딸이라면 어떻게 할까(What would my daughter do)? 가이라면 어떻게 할까(What would Guy do)?” 그에게도 호기심 엔진이 작동한 것입니다.

탈출에 성공하는 그루그. 그가 이렇게 외칩니다. “좋은 수가 떠올랐어(I have an idea).”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건 그의 상상력 엔진이 작동을 시작했다는 뜻이지요. 아이디어를 만드는 도구 겸 무기가 상상력이니까요. ‘좋은 수’란 바로 ‘노아의 방주’입니다. 과연 그는 혼자서 그걸 완성해낼까요. 해냅니다.

그루그가 서둘러 재료를 구하는군요. 매머드 사체의 뼈와 타르, 식인 새떼, 그리고 횃불…. 놀랍게도 그가 창작하는 것은 바다에 띄우는 방주가 아닙니다. 비행물체입니다. 어떻게 그걸 만들 수 있는 걸까요. 빼어나고도 신통방통한 그의 아이디어 개발 과정과 혁신적 실행의 과정은 스포일러여서 가려둡니다.

외화번역가


※ 폴 스미스의 책 ‘스토리로 리드하라(Lead With a Story)’를 추천합니다. 이런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만약에(What if)…?’ 이것은 창의성과 혁신 능력을 증진시키는 가장 강력한 질문입니다. ‘왜?’는 두 번째로 강력한 질문입니다.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