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몹시 추운날도 연습중인 아들
- 아름다운 몸짓 지켜보던 아빠
- 오디션 여비 모아준 마을사람들
- 새처럼 재능 훨훨 펼친 빌리

초보 시나리오 작가 시절의 리 할. 그는 침대에서 풀쩍거리며 뛰놀던 어릴 적 추억을 영상으로 표현하고픈 꿈을 키웁니다. 그가 취재를 위해 운명적으로 만난 이는 필립 마스덴. 영국 북부 탄광촌에서 나고 자란 필립은 가족의 거센 반대를 이겨내고 훗날 로열발레단(Royal Ballet)의 발레리노로 성공합니다.

그림=헌즈 작가

리 할은 필립 마스덴의 극적인 성공담을 각색해 기념비적 각본을 완성합니다. 제목은 ‘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 명장 스티븐 달드리가 감독한 동명의 영화는 단돈 5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저예산 영화입니다. 무려 1억1000만 달러의 흥행 총수입을 벌어들였고요.

뮤지컬 드라마 ‘빌리 엘리어트’는 11세 소년 빌리 엘리어트의 성장 이야기입니다. 무대는 영국 북동부 더럼의 탄광촌. 빌리는 최근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부쩍 더 그립습니다. 살아계신다면 어머니는 꼭 자기의 꿈을 밀어줄 것만 같거든요. 빌리의 꿈은 발레리노가 되는 것. 한편 광부 아버지 재키는 아들이 복싱이나 레슬링을 배우길 바랍니다.



한밤중에 노래하는 검은 새야,

부러진 날개로 나는 법을 배우렴.

너는 평생

떠오를 그 순간을 기다려왔잖니.



Blackbird singing in the dead of night,

Take these broken wings and learn to fly.

All your life,

You were only waiting for the moment to arise.



비틀스 명곡 ‘블랙버드(Blackbird)’의 일부입니다. 노래의 메시지는 이 영화의 광고 문구와 닮아있습니다. ‘우리는 다 내면에 언제든 뛰쳐나올 준비가 돼 있는 ‘특별한 재능’을 품고 있다. 관건은 그 재능을 찾아내는 것(Inside every one of us is a special talent waiting to come out. The trick is finding it).’ 탄광촌 출신인 ‘블랙버드’ 빌리가 ‘나는 법을 배워 떠오를 수 있게끔 그리고 자유로울 수 있게끔’ 소년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은인이 있습니다. 발레 선생님인 윌킨슨 부인입니다.

재키는 가장인 자기의 경제적 능력을 몹시 위협하는 장벽과 맞서있습니다. 그 장벽이란 탄광의 파업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들이 투사처럼 강하게 커 주길 바랍니다. 그런데 그가 동성애자들이나 추는 춤이라고 믿어온 발레를 아들이 배우겠다고 하니…. 빌리도 쉽사리 굽히지 않습니다. “발레는 그런 사람들만 추는 게 아냐.” 소년은 꿈을 가로막는 아버지의 몰이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장벽이라고 생각합니다.

빌리의 발레 실력이 빠르게 발전해가던 어느 날, 윌킨슨이 빌리를 따로 불러 고백합니다. “빌리,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구나. 난 로열발레학교에 대해 쭉 생각해보고 있단다(This will sound strange, Billy, I‘ve been thinking of the Royal Ballet School).” 그러자 빌리가 의아해하며 묻습니다. “지금 선생님이 그곳에 입학하기엔 나이가 너무 드신 거 아닐까요?” 선생님의 반응은? “나 말고 널 보내려고(No, not me…. you)!” 과연 윌킨슨에게 전폭적 지지를 받는 ‘블랙버드’ 빌리는 언제쯤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을까요.

‘결정적 한 장면’을 소개합니다. 빌리가 토슈즈를 목에 걸고서 내리막길을 질주할 때 주택 담벼락을 발바닥으로 차며 공중에 솟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외부와 탄광촌 세계의 사이에 놓인, 사회적 차별이라는 이름의 장벽을 향한 저항의 몸짓일 것입니다. 또한 자기 꿈을 무시하는, 편견이라는 이름의 장벽에 저항하는 의지이자 비상(飛翔)의 몸짓이기도 할 것입니다.

몹시 추운 날, 재키는 남몰래 연습에 열중인 아들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됩니다.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그 몸짓. 형형하게 빛나던 그 눈빛. 매타작까지 해가며 꺾어버리려 한 아들의 날개가 얼마나 강인한지 목격했기에 재키는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난생처음 런던으로 향합니다. 탄광촌 이웃들은 궁핍한 그들을 위해 십시일반 여비를 마련해줬고, 재키 자신은 아내의 패물을 전당포에 잡혀서까지 경비를 보탰습니다. 그들이 런던에 간 까닭은 바로 로열발레학교 오디션 때문입니다. 심사위원이 묻는군요. “춤출 때 어떤 느낌이 들지?” 빌리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엽니다. “춤추는 순간 저는 모든 걸 잊어요. 제 몸 안에서부터 변화가 느껴지면서 불길이 타올라요. 새처럼 날아가는 느낌이에요.”

오디션 결과는? 탈락입니다. 하지만 반전이 뒤따릅니다. 그 감동적인 내용은 다 스포일러여서 가려두기로 합니다. 영화는 1984년에 시작해 1999년에 막을 내립니다. 훗날 빌리 엘리어트가 어떻게 변모해 가는지 궁금하시면 이 작품을 꼭 챙겨보시길 권합니다.

비틀스의 ‘블랙버드’와 함께 감상하면 좋을 시 한 수를 소개합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흑인 시인 랭스턴 휴스의 작품 ‘꿈’입니다. 그가 꿈을 잃어가는 이들에게 희망의 힘을 전도하기 위해 쓴 시입니다.



꿈을 단단히 붙잡아요.

꿈을 잃으면 삶은

날개가 부러져 날지 못하는 새와 같으니까.

꿈을 단단히 붙잡아요.

꿈을 잃으면 삶은

눈 덮여 꽁꽁 얼어붙은 황무지이니까.



※ 함께 읽으면 좋을 책으로, 스승과 제자의 대화를 통해 ‘신념의 힘’을 들려주는 에세이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Tuesdays with Morrie’(미치 앨봄 지음)을 추천합니다.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