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BIFF 리뷰] 정재은 감독 ‘나비잠’- 뻔한 멜로…그러나 뻔하지 않은 감동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10-17 19:53:42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알츠하이머 앓는 시한부 여작가
- 한국인 작가 지망생과의 연애담
- 소설 집필 힘쓰며 애제자 삼아
- 죽음 앞두고 흔적 남기기 분주

연애 소설로 명성을 얻은 중년의 소설가 아야미네 료코는 대학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틈틈이 다음 작품을 집필한다. 원고에 만족하지 못하고 세절기에 분쇄해버리는 나날의 연속. 학교 근처 술집에서 그녀의 잃어버린 만년필을 찾아준 것을 계기로 료코는 한국인 유학생 소찬해를 알게 되고, 그에게 자신의 강아지 산책을 맡기면서 조금씩 가까워진다. 조기 알츠하이머 증세를 보이며 머잖아 작가로서 죽음을 예감한 그녀는 찬해의 도움을 받으며 소설을 완성하고, 작업이 지속될수록 둘의 사이는 깊어진다.
영화 ‘나비잠’의 한 장면. BIFF 제공
정재은 감독의 ‘나비잠’은 우선 작가의 죽음에 관한 영화다.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의 시나리오를 쓴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생애 말년에 연하의 문학도와 사귀었던 연애담을 그린 ‘이런 사랑’(2001)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역력하지만, 이 영화는 남녀 사이 감정의 밀고 당김보다 남아있는 시간 동안 삶의 흔적을 정리해나가는 료코의 모습에 비중을 두고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터치로 담아낸다. 생명줄과 같은 집필 도구를 잃어버리는 데서부터 암시되는 작가로서의 위기는 학생들이 과제로 써온 글을 모조리 세절기에 갈아버리는 장면에서 상실되는 기억의 은유로 이어지며, 강아지를 잃고 고장 난 수도꼭지 앞에서 혼자 어쩔 줄 모르는 모습에서 점차 망가지고 지워지는 료코의 처지가 암묵적으로 드러난다.

찬해의 재능을 눈여겨본 료코는 소설 집필에 도움을 받으면서도, 선생의 입장에서 언젠가 피어날 학생의 가능성을 일깨워주기 위한 가르침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중견 여성 작가와 작가 지망생 청년 간의 농밀한 연애담은 ‘파인딩 포레스터’(2000)나 ‘일 포스티노’(1994)와 같은 사제(師弟) 관계 이야기의 멜로 드라마적 변주이기도 하다. 료코는 연인의 감정으로 찬해를 대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자신이 머지않아 사라질 과거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자 다음 세대의 문학을 이어갈 작가 찬해를 위해, 지금을 사는 자신이 무엇을 남겨주고 떠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선배이자 기성세대로서 료코의 면모가 그려진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통속 멜로를 넘어서는 엄청난 위력의 감동이 휘몰아친다.

사람의 인생이란 죽는 날까지 지속하는 ‘소멸’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살아있는 동안은 자신이 존재한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 가는 ‘생성’의 과정이기도 하다. 먼저 살아간 이들의 역사가 축적된 바탕에서 현재 사람들이 삶을 누리고, 그것이 또다시 미래의 세상과 사람들에게 이어진다. 동네 도서관으로 바뀐 료코의 집은 동네 아이들이 책을 벗 삼는 마을의 휴식처가 되고, 옛 모습 그대로인 서재는 과거 둘만의 추억이 소중한 시간의 비밀로 남아 깃들었다. 그처럼 시간의 결이 켜켜이 쌓이며 삶은 이어지고, 다시 또 이어지길 거듭한다.

‘나비잠’은 관객에게 시간의 윤리를 묻는다. 오늘 우리의 하루는 미래에 어떤 흔적으로 남을 것인지, 다음 시대의 사람들에게 현재의 우리는 어떤 것을 남겨야 할지를 사유해야 한다고 영화는 말을 건다.

조재휘 영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전재수 “생곡 무산 땐 에코델타에 소각장 불가피”
  2. 2센텀2 분수령 풍산 부지보상 본격화…1조 관측
  3. 3‘부산검찰청’ 떼고 ‘공소청’ 간판
  4. 4한달간 부산은 축제도시…‘페스티벌 시월’ 시작
  5. 5김해공항과 ‘50년 동행’ 부산은행…영업점 단독 응찰
  6. 6“부캉이 왜 쫓아내나”vs“먹이활동 안 해 폐사 우려”
  7. 7HJ중공업 7900TEU급 ‘가닛’ 명명식…중대형 컨선 14척 인도
  8. 8軍·유엔사 “군사분계선 이남 지뢰매설, 北 정전협정 위반”(종합)
  9. 9“부캉이 테마공원 만들자”…동구는 조형물 설치 검토
  10. 10부산 1000억 문화펀드 조성…퐁피두·라스칼라는 이달 결론
  1. 1전재수 “생곡 무산 땐 에코델타에 소각장 불가피”
  2. 2軍·유엔사 “군사분계선 이남 지뢰매설, 北 정전협정 위반”(종합)
  3. 3국정원 “우크라가 北포로 송환 비공개 먼저 요청”(종합)
  4. 4‘김종서함’ 울산 진수식 찾은 이재명 대통령 “자주국방이 주권”
  5. 5여야 “軍, 북한에 강력 대응” 촉구
  6. 6北지뢰 1발 추가 발견…대북 방송 재개 등 상응조치 촉각(종합)
  7. 7“통합 논의 항만公 정부 지분, 지자체로 넘겨야”
  8. 8새 광역단체장 재산 1위 김상욱 50억…전재수 6억(종합)
  9. 9[속보] 김여정, ‘DMZ 북한 지뢰’ 발표 전면부인…“서울의 자작광대극”
  10. 10예상보다 무뎠던 검증 칼날…TP원장 후보 기술고도화 초점
  1. 1센텀2 분수령 풍산 부지보상 본격화…1조 관측
  2. 2한달간 부산은 축제도시…‘페스티벌 시월’ 시작
  3. 3김해공항과 ‘50년 동행’ 부산은행…영업점 단독 응찰
  4. 4“부캉이 왜 쫓아내나”vs“먹이활동 안 해 폐사 우려”
  5. 5HJ중공업 7900TEU급 ‘가닛’ 명명식…중대형 컨선 14척 인도
  6. 6“부캉이 테마공원 만들자”…동구는 조형물 설치 검토
  7. 7센텀2 배후지 ‘트리븐 센텀’ 뜬다
  8. 8해운 대기업 부산 이전 효과 내려면…“산업 생태계 구축돼야”
  9. 9반도체 호황에…올 국세수입 478조 역대 최대 예측(종합)
  10. 10삼영이엔씨, 회생계획 인가…3자배정 100억 유증
  1. 1‘부산검찰청’ 떼고 ‘공소청’ 간판
  2. 2전재수 전 보좌진 4명 ‘증거인멸’ 유죄(종합)
  3. 3[한 손 뉴스] 푸바오의 쌍둥이 동생들, 올 연말 중국으로 떠난다(종합)
  4. 4朴시정 선거악재 우려 ‘생곡 용역’ 중단…백지화 소문 키워
  5. 5“110억 투입 부산 의료버스, 플랫폼업체에 예산 1/3 지급”
  6. 64년 방치 창원 짚트랙, 새 체험시설 만든다
  7. 7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1일
  8. 8바리케이드 걷힌 소녀상…2년여 만에 시민 품으로(종합)
  9. 9“비영리법인 설립, 법 기준 세워야”
  10. 10창녕 2세 아들 숨지게 한 父 징역 17년
  1. 1돌아온 금빛 주역들, 프로야구 막판 순위·타이틀 경쟁
  2. 2중원 황인범·투톱 변화…승리 축포 쏠까
  3. 3해볼 만하다…女축구, 8년 만의 AG 메달 도전
  4. 4역시 안세영…AG 2번째 ‘금빛포효’(종합)
  5. 5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중국에 역전승 거두고 결승 진출
  6. 6공격에 쏟아붓다가 골문 열린 모레노호
  7. 79회 4실점 진땀…롯데, 키움에 가까스로 승리
  8. 8일본 대회운영 왜 이러나…한국 육상 남자 400m 계주, 판정 논란 딛고 동메달 지켰다
  9. 9고성군, 통영시 거제시와 손잡고 2029년 도민체전 공동개최
  10. 10한동희 시즌 23호 홈런 '쾅'…롯데, 키움에 4-2 역전승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日 70년史부터 ‘올나잇’ 상영회까지…애니 세계로 초대
미리보는 제31회 BIFF
연상호 ‘실낙원’ 홍상수 ‘눈 둘 데가 없네’ 등 한자리에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환상이 불러일으킨 파국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익숙한 물건에 깃든 삶의 온기 外
인간 빈자리 차지한 반려 로봇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세계유산 ‘한국의 갯벌’ 얼마나 알고 있나요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박자현-꾸지 않는 꿈
장승택-ayered Painting P60-11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기다림의 미학 /윤종순
빨래 /심여혜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추석 연휴 ‘암살자(들)’ 정상…2위 ‘타짜: 벨제붑의 노래’
‘인턴’, ‘오디세이’ 제치고 정상…허진호 감독 ‘암살자(들)’ 예매율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1일 (음 8월 21일)
오늘의 운세- 2026년 9월 30일 (음 8월 20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할아버지·아버지·본인·아들까지 정쟁으로 죽은 김제겸의 글
아침 산안개를 읊은 조선 전기의 문신 월헌 정수강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