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책 읽어주는 여자] 승효상의 건축, 비움과 나눔의 미학을 담아내다 /강이라

빈자의 미학 - 승효상 지음/느린걸음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10-13 19:39:20
  •  |  본지 14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책보다 건축가를, 건축가보다 건축을 먼저 만났습니다. 몇 해 전 한겨울, 명상 수련을 위해 찾은 공주 마곡사에서였습니다. 사찰 옆으로 흐르는 개울의 징검다리를 건너 십여 분 걸어 들어가자 무채색의 단순하고 소박한 외관의, 전통 불교 문화원이 산 아래 낮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짙은 갈색의 큰 지붕은 마치 겨울의 보호색처럼 눈 내리는 산, 눈 덮인 대지 위에 이물감 없이 섞여 동안거에 든 가난한 스님의 승복 빛깔과도 같았습니다. 이후 그 건물을 설계한 이가 승효상 건축가라는 걸 알게 되었고, 결국 관심은 팬심으로 이어져 그의 여러 저서까지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승효상 건축가가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의 개인 저택으로 설계한 ‘수졸당’ 스케치. 느린걸음 제공
빈자의 미학은 승효상의 여러 저서 중 그의 건축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작입니다. ‘빈자의 미학, 여기에선 가짐보다는 쓰임이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중요하다.’ 책 서두의 그의 글대로, 그의 건축은 침묵과 무용(無用)에 철저합니다. 우리네 옛 ‘마당’의 쓸모없음이 단일 목적이 아닌 다목적의 열린 공간으로의 무용(無用)임을 그의 현대 건축에서 쉽게 발견하게 되는 까닭입니다.

승효상은 1952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 빈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 후 15년간 김수근의 공간연구소에서 일합니다. 스승의 타계 후 건축사무소 ‘이로재’를 연 그는 대표작인 수졸당, 당진 돌마루 공소, 노무현 대통령 묘역 등 많은 건축물을 설계하며 한국 현대 건축을 이끕니다. 도시 주택 한가운데 마당과 담장을 담은 대담한 설계로 알려진 ‘수졸당’은 친구인 유홍준(‘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저자)의 개인 주택으로, 승효상이 설계비 대신 건축사무소의 이름이 된 ‘이로재’ 현판을 받았다는 에피소드로 유명합니다.

이 책을 건축 책이 아닌 ‘삶의 혁명’을 위한 선언이라고 극찬한 시인 박노해는 독방에서 책을 거듭 읽으며 묵상에 잠겼노라고 고백합니다. 건축이 지니는 가치 이념이 인간 삶에도 거의 그대로 대응되기 때문이겠지요. 승효상은 건축적 요건의 세 가지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 건축이 수행해야 하는 합목적성, 그 건축이 놓이는 땅에 대한 장소성, 그 건축이 배경으로 하는 시대성이다. 이것은 인간의 구체적 삶에 근거를 둔다.’ 그렇기에 그는 고도성장의 베일 아래 획일화되고 박제된 이 도시와 건축의 상실된 정체성을 시대의 위기이며 미래에 대한 위협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원래 이 책은 1996년 초간된 책으로, 승효상이 외국 대학의 강연을 앞두고 그동안 쓴 에세이와 강의 노트를 정리하여 최소 부수로 발행하였습니다. 하지만 건축을 공부하고 건축물에 관심있는 이들 사이에서 오랜 세월 필독서가 되면서 복간 요청이 이어졌고, 결국 지난해 20주년 개정판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책의 말미에서 동료 건축가 민현식은 승효상이 지닌 빈자의 미학에 대해 이렇게 밝힙니다. “그의 빈자의 미학은 물리적으로 빈한한 자의 어쩌지 못하는 퇴행적 미학이라기보다 스스로 빈자이고자 하는 자의 실천적 미학입니다.” 이에 승효상은 후기에서 이 책이 채찍과 필터가 되어 오래도록 자신의 건축적 실천의 지침이 되었음을 고백하며, 독자들이 그 안에 담긴 본질만을 부디 이해해 주기 바란다고 말합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아파트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아파트는 기능적 건축의 결정판입니다. 그런 고층 아파트를 보고 있으면 기능이 주는 막대한 편함이 두려워질 때가 있습니다. 극도의 기능적 건축은 삶을 피폐화시키고 인간을 왜소하게, 자폐적으로 만든다는 건축가 승효상의 경고에 문득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좋은 건축에서 좋은 삶이 자라니까요.

소설가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건강한 부산을 위한 시민행동 프로젝트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해양문화의 명장면
설탕 제국주의 : 해양공간의 교류가 만든 일상의 변화
이상헌의 부산 춤 이야기
박병민의 춤 사진
국제시단 [전체보기]
어둠이 내릴 때 /박홍재
단풍 들어 /정온
글 한 줄 그림 한 장 [전체보기]
코 없는 사람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미래를 위하여
리뷰 [전체보기]
경계인 된 탈북여성의 삶, 식탁·담배·피 묻은 손 통해 들춰
방송가 [전체보기]
MC 이휘재 vs 성시경 ‘미식여행’ 승자는
위기 이겨낸 기업…비법은 직원 기살리기
새 책 [전체보기]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 外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힐러리 맨틀 지음·박산호 옮김) 外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자살에 이르게 한 심리흔적
현실에서 음악가로 산다는 것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무자연(舞自然)-점화시경, 장정 作
木印千江 꽃피다-장태묵 作
어린이책동산 [전체보기]
31가지 들나물 그림과 이야기 外
아이가 ‘다름’을 이해하는 방법 外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마루나무비 /박옥위
샛별 /정애경
이기섭 8단의 토요바둑이야기 [전체보기]
제35기 KBS바둑왕전 준결승전
2016 이민배 본선 4강전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허세 대신 실속 ‘완벽한 타인’ 배워라
봄여름가을겨울, 음악과 우정의 30년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암수살인과 미쓰백…국민 국가의 정상화를 꿈꾸며
상업영화 후퇴·독립영화 약진…‘뉴시네마의 여명’
책 읽어주는 남자 [전체보기]
가슴에 담아둔 당신의 이야기, 나눌 준비 됐나요 /정광모
가족갈등·가난, 우리 시대 청춘들 삶의 생채기 /박진명
책 읽어주는 여자 [전체보기]
눈물과 우정으로 완성한 아이들 크리스마스 연극 /안덕자
떠나볼까요, 인생이라는 깨달음의 여정 /강이라
현장 톡·톡 [전체보기]
지역출판 살리려는 생산·기획·향유자의 진지한 고민 돋보여
‘영화철학자’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패션·예술 유산 한곳에
BIFF 리뷰 [전체보기]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
퍼스트맨
BIFF 인터뷰 [전체보기]
‘렛미폴’ 조포니아손 감독, 마약중독에 대한 인간적 접근…“그들도 결국 평범한 사람이에요”
감독 박배일 '국도예술관·사드 들어선 성주…부산을, 지역을 담담히 담아내다'
BIFF 피플 [전체보기]
‘국화와 단두대’ 주연 배우 키류 마이·칸 하나에
제이슨 블룸
BIFF 현장 [전체보기]
10분짜리 가상현실…360도 시야가 트이면 영화가 현실이 된다
BIFF 화제작 [전체보기]
‘안녕, 티라노’ 고기 안 먹는 육식공룡과 날지 못하는 익룡의 여행
묘수풀이 - [전체보기]
묘수풀이 - 2018년 11월 15일
묘수풀이 - 2018년 11월 14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 10월 9일
오늘의 BIFF - 10월 8일
이기섭 8단의 바둑칼럼 [전체보기]
제5회 대주배 남녀 프로시니어 최강자전
제 5회 대주배 남녀 프로시니어 최강자전
정천구의 도덕경…민주주의의 길 [전체보기]
虛壹而靜
致虛守靜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

무료만화 &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