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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20> 이상섭 소설집 ‘챔피언’

힘겨운 이들을 위한 헌사 “당신도 챔피언이 될 자격 있어요”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10-02 18:47:44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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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째 학생들 가르치며
- 소설은 인간학이란 믿음으로
- 삶을 담아내는 창작활동 몰두
- 서럽고 지친 밑바닥 인생에
- 애정어린 시선이 닿을 수밖에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한번 읽기 시작하자 작품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까지 봐야 했다. 잠깐 덮었다 다시 읽는 방식은 통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이상섭의 소설집 ‘챔피언’에 수록된 작품들은 대화가 지문에 묻혀있다. 대화는 따옴표(“”)나 부호(, -)로 구분되지 않았다. 그래서 구두점 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이게 했다. 마지막까지 시선을 붙잡는 작품에 푹 빠져보는 것, 그것은 소설 독자로서 느낄 수 있는 큰 행복이었다.
   
이상섭 소설가가 부산 해운대구 우동 해운대관광고등학교 교정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 소설가는 이곳에서 30년째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자신의 소설도 쓰고 있다.
■바다를 배경으로 자란 소설가

이상섭 작가는 1961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동아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98년 ‘슬픔의 두께’로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당선했다. 소설집 ‘슬픔의 두께’ ‘그곳에는 눈물이 모인다’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 ‘챔피언’, 르포집 ‘굳세어라 국제시장’을 발표했다.

이 소설가는 해운대관광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학교로 찾아가 그를 만났다. 벚나무가 건물 앞을 줄지어 지키고 있었다.

“봄에는 꽃이, 가을에는 단풍이 보기 좋지요.” 학교 건물 뒤편에는 예쁘게 꾸며진 화단도 있다. 수업이 없는 시간에 그곳에 앉아 쉬다 보면 교실에서 수업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등단 초기에는 집에서 글을 썼죠. 자리에 누웠다가도 떠오르는 문장이 있으면 바로 일어나서 쓰곤 했죠. 그런데 공간의 구분이랄까, 집은 역시 쉬는 곳이더군요. 글쓰기엔 학교가 편합니다. 주말이나 아이들이 하교하고 난 뒤 혼자 교정 산책도 하고, 글도 쓰고요.” 그는 이 학교에서 30년째 아이들을 가르치며 소설을 쓰고 있다.

그의 성장기에는 바다가 배경으로 있다. “거제에서 나고 자란 저에게 바다는 놀이터였어요. 썰물이 빠져 나가면 바닷가는 순식간에 운동장이 되었고, 친구들과 축구를 했죠. 더우면 물속에 뛰어들었고요. 요즘 그렇게 깨끗한 바다를 만나기 힘들죠.”

그의 작품에도 바다가 있고, 바닷가에 기대어 사는 사람이 있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일은 힘들죠. 그래서 바다에서 돈 벌어 땅 사서 농사를 짓고 싶어하지요. 저 역시 반농반어 농사꾼의 아들이었습니다.”

‘챔피언’에는 바다와 바닷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들의 이야기가 있다. 식당에서 일하는 여자, 청년 백수, 보험외판원, 구조조정에 내몰리는 회사원 등이 등장한다.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소외된 계층,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에게 시선이 갑니다.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초상화가 아닐까요. 소설은 그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는 장르이지요. 그런 면에서 소설은 인간학(人間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을 견뎌내는 챔피언들
   
소설집 ‘챔피언’- 이상섭/ 삶창/2014
‘챔피언’에 수록된 ‘재첩의 맛’에는 꼬여버린 운명 때문에 남자의 그늘로 살아가는 여자가 있다. 그 운명에서 벗어나려는 여자는 임신한 몸으로 식당일을 시작한다. 재첩을 해감하는 여자를 보며 식당 노파는 이런 말을 한다. “재첩의 맛이야 재첩 스스로 내는 기지. 재첩이 지 스스로 소금물에 찌끼들을 쪽 뱉어내지 않으면 아무리 양념 범벅을 쳐도 깊고 맑은 맛이 우러나질 않는 법이거든.” 구구절절 털어놓지 않아도 여자의 삶을 환히 지켜보기라도 한 것 같은 노파의 말이 삶에 지친 여자를 붙들어준다. 지금 이 순간 ‘힘든 일’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말이다.

표제작 ‘챔피언’은 젊은 시절 배구선수였던 아버지와 여러 종목의 운동을 해본 아들이 있다. 놀이기구에서 떨어졌으나 땅 위를 부드럽게 한 바퀴 구르고 일어난 아들에게 감탄한 아버지. “배구란 허공에서 펼쳐지는 공의 예술이지”라는 아버지의 말에 배구를 시작했으나 아들의 관심은 계속 야구로, 농구로, 축구로 옮겨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운동을 시키겠다는 듯 아버지의 말도 그때마다 옮겨간다. “야구야말로 치고 달리고 솟구치고 슬라이딩까지 하면서 역전이 가능한 스포츠니까” “농구처럼 점수가 쑥쑥 올라가는 경기도 없지” “축구란 그야말로 발레처럼 발의 아름다움을 관중에게 보여주는 스포츠니까”. 그러나 재능이 없음을 알게 되자 이렇게 위로한다. “아들아, 꼭 운동을 잘하는 것만이 최고는 아니야.” 촉망받는 배구선수였던 아버지는 광주에서 대학 시절을 보내던 중 5·18 당시 군대의 진압봉에 무릎을 맞아 꿈이 꺾였고, 그 상처 때문인지 아들이 어릴 때 총기류 장난감을 하나도 사주지 않았다. 그런데 아들은 군대에서 탁월한 사격 실력을 발휘했으며, 사격 국가대표를 눈앞에 두는 삶을 살게 된다. 그 반전은 어쩐지 마음을 짠하게 한다.

   
작가는 독자들이 자신의 소설을 무겁지 않게, ‘그냥 딱, 펼쳐놓고 낄낄거리기에 적당’하다고 받아들이길 바란다. 그 바람대로 낄낄거리기도 하고, 묵직한 감동을 느끼기도 하면서 그의 작품을 읽었다. 산다는 건 우리가 걸어가는 길목마다 기다리고 있는 복병의 정체를 밝히는 일은 아닐까. 운명이란 게 있다면 그것을 향해 잽을 날리고, 또 날리다가 언젠가 한 번은 럭키펀치를 맞힐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인생에서 누구나 챔피언이 될 자격이 있다. 서럽고 힘들어도 살아가야 할 이유이다.

책칼럼니스트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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