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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도의 결정적 한 장면 <17>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1995년·11월에 재개봉)

일생에 단 한번… 운명처럼 찾아든 나흘간의 사랑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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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9-21 19:23:31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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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떠나자는 사진가 남자, 잃을 게 많아 두려운 주부
- 혼란스런 감정의 기로에서 그녀가 내린 최종 선택은 …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함민복의 시 ‘가을’의 전문(全文)입니다. 시인은 사랑하는 이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그렇게 은유의 무기로 극대화한 것이지요.

   
그림=헌즈 작가
 ‘가을’ 느낌에 어울릴 영어 문장도 하나 소개합니다. “I miss you more than my next breath.” 미국의 한 소설가는 그렇게 노래했습니다. 문장의 뼈대만 보면, ‘나는 내 다음 숨보다 당신이 더 그립다’가 되겠군요. 그것의 혈관까지 들여다보면, ‘숨과 숨 사이 그 짧은 간격에서조차 당신이 사무치게 보고 싶다’는 감정인 것이고요. 소설가의 이름은 로버트 제임스 왈러입니다.

‘6000만 권 이상’. 글로벌 판매량이 그 정도일 것으로 추정되는 왈러의 소설이 이번 영화와 동명인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The Bridges of Madison County·사진)’입니다. 왈러는 소설 초고를 11일 만에 완성했다고 하는데요, 가까운 벗이 “출판 에이전트에게 한번 보내 봐”하고 부추겼다는군요. 얼마 후 왈러는 전화로 이런 찬사를 들었습니다. “로버트 씨, 도대체 어디 있다가 이제야 나타난 겁니까?”

소설은 무려 164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습니다. 1992년, 영문판이 발 빠른 교보문고 덕분에 갓 들어왔기에 저는 ‘득템’하듯 구입해선 밤새워 읽은 기억이 있답니다. 책 끝부분에 나오는 ‘결정적 한 장면’에 다다라선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고요. 책의 설정대로 그 장면은 이번 칼럼 맨 끝에 소개하기로 합니다.

스토리를 들려드리기 전에 영화를 대표하는 명대사부터 소개합니다. “이건 일생에 한 번 오는 그런 확실한 감정이에요(This kind of certainty comes but once in a lifetime).”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포토에세이 작가 킹케이드(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시골 주부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에게 고백하는 상황입니다. 그들의 운명적 사랑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알아보기 위해선 4일 전 그들이 처음 만나던 때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때는 1960년대 중반. 킹케이드는 미국 아이오와주 매디슨 카운티에 있는 이색적인 목제 다리를 취재하러 갑니다. 붉은색 덮개까지 갖춘 그 다리에 가기 위해 이방인인 그는 길 안내가 필요합니다. 그 무렵 남편과 두 아이는 박람회를 구경하러 다른 도시에 가고 없기에 프란체스카는 순순히 돕겠다며 앞장서는군요.

킹케이드가 프란체스카의 관심을 끈 첫 말은 이것입니다. “저는 여행이나 취재를 다니다가도 경치가 아름다우면 언제 어디서든 기차에서 훌쩍 내려버립니다.”

   
이탈리아에서 건너와 미국의 외딴 시골 마을에서 결혼해 정착한 이후로 처녀 시절의 꿈일랑 다 접었고, 다람쥐 쳇바퀴처럼 따분하게 살아가던 프란체스카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이자 싱글인 킹케이드에게 단번에 끌려버립니다.

다음 날 촬영하러 찾은 다리에서 쪽지 글을 발견하는 킹케이드. ‘흰 나방이 날갯짓을 할 때 저녁 식사가 생각나면 오세요.’ 프란체스카가 전날 밤 붙여놓은 쪽지입니다. 킹케이드는 그녀의 마음을 온통 흔들어놓을 말로 화답합니다. “제가 밟아온 모든 길은 이렇게 당신을 만나기 위한 여정이었나 봅니다.”

둘만의 침실 깊은 곳에서도 아침이 밝습니다. 킹케이드는 오직 둘만의 세상을 만들고 싶은 기대감에 차 있습니다. 반면, 프란체스카의 마음은 소용돌이칩니다. 혼란스럽던 감정이 추슬러지자 그녀가 어렵사리 입을 엽니다. “지금처럼 내 남은 생을 다 바쳐 당신을 사랑하고 싶어요. 하지만 새 삶을 시작하겠다고 생을 송두리째 잃을 순 없어요(I can‘t make an entire life disappear to start a new one).” ‘일생에 한 번 오는 확실한 감정’임을 거듭 호소해보는 킹케이드. 안타깝게도 확고해진 프란체스카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합니다. 물러서지 않으려는 남자를 그녀는 끝내 밀쳐냅니다.

프란체스카는 분명 갈등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홀로 떠나보냄으로써 운명처럼 찾아온 사랑을 영영 잃어버리게 될까봐 두려운 마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도 그 사랑을 오래 추억하고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노라고 믿고 싶은 마음. 두 감정 사이에서 외줄을 타던 프란체스카가 끝내 자기를 맡긴 것은 후자 쪽 마음인 것이지요. 슬픈 고백이 이어집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제 가슴 속 어딘가에 우리를 영원히 간직하는 거예요(All I can do is try to hold on to us somewhere inside of me).”

가슴이 찢어지는 이별 그리고 20여 년 뒤. 장성한 자식들에게 유품으로 남기기 위해 추억의 사물과 편지, 그리고 일기장을 정리하던 프란체스카는 처음으로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됩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뒷장 안쪽에 실린, 잡지 제작에 기여한 편집진·사진작가들의 단체사진 안에 존재하는 옛 연인의 목걸이가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아, 킹케이드는 얼마나 많은 밤 그녀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어야 했을지…. 목걸이를 확대해보던 프란체스카의 반응과, 그 후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는 스포일러여서 가려둡니다. 소설 속 이 결정적 한 장면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영화적으로 어떻게 표현했을지 확인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되겠습니다. 25년 전 읽은 소설을 다시 읽고 싶어지는 ‘가을’ 같은 가을입니다. 

1939년생인 로버트 제임스 왈러는 2017년 3월 10일 77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선 안 된다’, 하고 울부짖어본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맨부커상 수상 작가 줄리언 반스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Levels of Love)’입니다.

외화번역가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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