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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흥행코드 다 넣은 ‘브이아이피’, 그래서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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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9-14 18:58:57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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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정 감독의 영화 ‘브이아이피’(2017)는 오늘날의 한국 상업영화가 서 있는 지점이 어디인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 같은 영화다. 남북관계의 긴장을 정치적 배경으로 깔고 수사반장 채이도(김명민)과 리대범(박희순), 두 남과 북 공안 요원 간의 긴장과 협력을 다룬다는 점에선 ‘의형제’(2010)와 ‘공조’(2016)의 연장선에 있고, 숙청을 피해 북에서 내려온 VIP 김광일(이종석)이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여성을 표적으로 한 잔혹 범죄를 일삼는다는 데서 ‘추격자’(2008)와 ‘악마를 보았다’(2010) 이후 이어지는 한국형 범죄 영화의 상투적 수사를 반복한다. 국정원과 경찰 조직 간의 내부 거래와 알력 다툼,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공권력의 모습은 ‘부당거래’(2010)의 검찰과 경찰의 관계를 연상하게 한다.
   
영화 ‘브이아이피’의 한 장면. 워너브더러스코리아 제공
다시 말해 ‘브이아이피’는 그동안 한국 영화계에서 유행하며 반복재생산해온 일련의 범죄 스릴러와 정치 누아르의 소재와 장치를 뒤섞어 놓은 ‘흥행코드의 용광로’인 셈이다. 문제는 이처럼 검증된 소재와 장치를 한데 몰아 뒤섞은 결과물이 관객의 입장에서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익히 보아온 바를 답습하는 데서 오는 익숙한 기시감, 전형적인 인물 역할과 연이은 반전이 있음에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극의 전개에는 틀에 박힌 양식을 반복해온 기획 영화의 한계가 역력히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건, 버무려낸 여러 소재를 일관성 있는 주제로 묶는 명료한 관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대체 무엇인가? 남북관계와 새로운 냉전 구도를 향해가는 국제 정세에 대한 영화적 반영인가? 여성 피해자에 대한 가학적 묘사는 사회적 약자의 생존이 위태로워지는 잔혹한 시대상을 영화로 소묘하고자 동원된 것인가? 공직사회의 내부 실상을 묘사함으로써 다큐멘터리와 같은 사회고발성을 추구하려는 것인가? 분명 ‘브이아이피’에는 다양한 사실적 요소가 함축되어 있지만 어떠한 정치적 함의도 지니지 못한 채 극의 전개를 위한 장치로만 소진되고 있다. 박 감독의 이전 작품인 ‘신세계’(2013)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기업형 조폭을 그렸지만, 치열한 생존경쟁을 감내해야 하는 한국 사회에 대한 ‘정서적 풍경으로서 리얼리티’는 지니고 있었다는 점과 사뭇 상반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피사체 없는 사진이 있을 수 없듯, 영화는 어떤 식으로든 그 안에 영화가 만들어질 시기의 공기를, 현실의 그림자를 담는다. 관객은 영화를 통해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재인식하고, 극 속의 인물에 자신을 투사함으로써 정화의 감정을 얻고자 한다. 그동안 한국 영화계는 시류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사회에 만연한 디스토피아적 공포와 비극성에 조응하며 관객의 공감과 몰입을 끌어내고자 했다. 그러나 ‘브이아이피’와 같은 혼성모방에 이르면 영화가 관객의 현실과 만나는 접점은 사라지고 없다. 남은 건 의미를 잃은 작위적 상황의 나열과 폭력의 전시, 장르의 관습을 답습하는 매너리즘,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짜깁기하려 한 감독의 과욕일 따름이다.

   
대만의 영화감독 허우샤오시엔은 “영화는 결국 세상에 대한 예의”라고 말한 바 있다. ‘브이아이피’의 근본적인 패착은 바로 이러한 영화의 윤리를 저버린 데 있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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