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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도의 결정적 한 장면 <16> 굿 윌 헌팅(구스 반 산트 감독·1998년)

마음의 상처 다독여 치유하는 한 마디 “네 잘못이 아냐”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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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9-07 19:55:41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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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 좋은 청소부인 윌 헌팅
- 과거 입은 상처로 상실감 빠져
- 스승과 같은 숀 맥과이어 교수
- 삶의 족쇄 풀어주는 과정 그려
- 많은 이들도 인생 바꿔놓은
- 진정한 스승 있을 것이다

집 나와 방황하던 까까머리 학생이 갈림길 앞에 섭니다. 나쁜 길과 그 반대의 길 사이에서 갈등할 무렵 그는 책방에서 운명적이게도 중편 소설 한 권을 집어 듭니다. 제목은 ‘소설, 알렉산드리아’. 지은이는 이병주. 까까머리 학생은 저.

   
그림=헌즈 작가
그때부터 저는 ‘한국의 발자크’라 불린 이병주의 ‘넘버 원 팬(number one fan)’이 되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후로도 그의 박람강기 지식과 천의무봉 필력에 빠져든 저는 대하소설 ‘지리산’과 ‘산하’를 비롯해 빼어난 단편 ‘쥘부채’ 등을 실은 작품집들, 그리고 촌철살인 글들로 가득한 다수의 칼럼집까지 100권이 넘는 그의 책과 연애했습니다. 그런 인연이 영화 번역과 글쓰기의 길로 저를 이끌어주었고요.

하버드대에 다니던 두 청년이 함께 단편 소설을 창작합니다. 영어 시간에 받은 과제물입니다. 시나리오 작법 강의를 들을 땐 그걸 각색해 영화 대본을 창작해냅니다. 이 대본은 여러 해에 걸쳐 많은 제작사의 창고 안에서 먼지만 뒤집어씁니다.

훗날 ‘시카고’ ‘셰익스피어 인 러브’ 등을 제작해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하비 와인스타인이 그들을 만납니다. 다른 제작자들은 누구도 안 한 질문을 그가 던집니다. “딱 한 부분만 이상하더군요. 60쪽에서 난데없이 당신들 둘이 섹스를 하던데, 그 설정이 왜 있죠?” 청년들 대답이 의외입니다. “그걸 물어보는 분만이 대본을 제대로 읽은 거예요. 우리 둘이 짜고 일부러 집어넣은 설정입니다.”

때는 1997년. 일본 북해도에서 스키 훈련을 받던 저는 국제전화를 받았습니다. “곧바로 번역해야 할 영화가 들어왔어요.” 저는 앞당겨 귀국했고, 하비 와인스타인이 제작한 영화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사진)’의 대본을 받아들었습니다. 이 걸작 대본을 쓰고, 주인공 배역까지 따낸 두 청년이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입니다. 몇몇 국내 언론은 ‘착한 윌 헌팅’이라는 뜻의 제목을 ‘선의의 사냥꾼’이라고 소개하기도 했지요. 영화는 아카데미 각본상과 남우조연상(로빈 윌리엄스)을 수상했습니다.

   
맷 데이먼은 어릴 때 부모가 헤어졌습니다. 양부모에게 학대받은 아픔이 있는 그는 자기가 연기할 캐릭터로 주인공 윌 헌팅을 창조했습니다. 머리 좋고 다독가인 그는 문학, 법, 정치, 역사, 미학 등 어떤 주제로든 대화할 때 막힘이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윌은 대학원생도 절절매는 수준의 수학 문제를 척척 풀어버립니다. 그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의 청소부입니다. 그리고 고아입니다.
윌의 단짝 친구 처키(벤 애플렉)를 소개합니다. 둘은 막노동판 동료입니다. 처키는 윌이 큰물에 나가 헤엄치길 바랍니다. 친구가 더 나은 삶을 살길 진심으로 바라기에 그는 이렇게 쏘아붙입니다. “네가 계속 이따위로 살 거면, 똑똑히 들어, 난 널 썅 죽여 버릴 거야(I‘ll fucking kill you). 협박이 아냐, 난 널 꼭 죽인다고.”

하루는 처키가 이런 말도 합니다. “내가 하루 중 언제 제일 행복한지 알아? 너랑 막노동판에 일하러 가는 날 아침마다 내 차를 네 집 앞에 대놓고 널 부르러 현관까지 걸어가는 10초야. 네가 흔적도 없이 이 동네를 떠났길 바라면서 걷는 그 10초의 순간이야, 알겠어?”

이번엔 윌의 연인 스카일라(미니 드라이버)를 소개할 차례. 영국에서 온 그녀는 하버드대에 다닙니다. 윌이 그녀에게 하는 유일한 거짓말이 있습니다. 자기 가족 이야기입니다. 윌은 형제가 달걀 꾸러미만큼이나 많다고 자랑하곤 합니다. 그러면서도 가족에게 한 번도 초대하지 않자 스카일라는 내심 서운해합니다.

스카일라가 고통스러워하는데도 윌은 자꾸만 그녀를 밀쳐내려 합니다. 급기야 폭발하는 스카일라. “내가 널 사랑해주지 않을까봐 넌 두려워하는 거라고! 최소한 난 너한테 솔직하다고(At least I’m honest with you).” 결국 둘은 차츰 멀어져갑니다.

마지막으로 윌에게 등대와도 같은 스승을 소개합니다. 윌을 위해 상담심리치료를 돕는 심리학과 교수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입니다. 그는 윌이 꽁꽁 품고 있는, 과거에 입은 아픈 상처들에 대한 기억이 그를 반복적으로 상실감에 빠트린다는 걸 읽어냅니다. 그가 마음을 열게끔, 그의 삶을 옥죄는 족쇄를 풀게끔 돕고 싶은 숀은 아내를 잃은 자기의 아픔과 그에 따른 상실감을 고백합니다.

숀의 쓰다듬기는 절정에 달합니다. “네가 너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다른 무엇인가를 더 사랑할 때 생기는 것, 그게 진정한 상실이야(Real loss is only possible when you love something more than you love yourself).” 이어서 ‘결정적 한 장면’과 명대사가 이어집니다. “네 잘못이 아냐. 네 잘못이 아냐(It‘s not your fault. It’s not your fault).” 윌은 숀을 끌어안고 오열합니다.

   
누군가가 윌의 집 앞에 차를 댑니다. 현관문을 향해 걸어가는 그는 단짝 친구 처키입니다. 평소처럼 10초 후 윌이 그를 반길까요? 처키가 무척 기뻐하는군요. 현관문이 열립니다. 다른 집 문입니다. 숀이 나오더니 우편함에서 쪽지를 발견하는군요. 윌이 연인을 찾으러 떠나는 길에 남긴 것입니다. 숀도 무척 기뻐하는군요.

윌의 인생을 바꿔놓은 스승이 숀이라면 저에게 그런 스승은 이병주 작가입니다. 나림(那林) 이병주가 주필로도 몸담았던 ‘국제신문’ 덕분에 저는 스승이 더 자주 더 많이 그리워집니다.


   
도(道)를 중시하는 서예가 석담. 예(藝)를 중시하는 제자 고죽. 일평생에 걸친 스승과 제자의 대립과 화해를 다룬 ‘금시조’(이문열 지음)를 추천합니다.

외화번역가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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