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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낡고 잊혀지고 떠나가도…영도다리 밑에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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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8-31 19:47:42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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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1923~1985)는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도시 레오니아의 주민들이 ‘새롭고 다양한 물건들을 즐기는’ 한편 ‘어제의 쓰레기들이 깨끗한 비닐봉지에 싸여 쓰레기차를 기다리는’ 모순된 풍경을 그린다. ‘바로 그저께의, 그리고 매달, 매년, 십 년 전의 쓰레기들 위에 쌓이는 어제의 쓰레기 더미 형태’ 위에서 ‘도시는 매일 새로워지면서 단 하나의 결정적인 형태로 스스로를 완전히 보전해’ 나가며 번성한다. 근대사회는 낡고 허름한 옛것을 몰아낸 자리에 깔끔하고 단정한 새것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으로 움직였지만, 그로 말미암아 스스로 만든 공간의 역사와 기억, 켜켜이 쌓인 시간의 결마저 지워버리곤 한다.
   
다큐멘터리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한 장면. 씨네소파 제공
김영조 감독의 다큐멘터리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어두운 밤 영도다리 근처의 풍광으로 시작한다. 낮은 조도의 침침한 화면 가운데 제사 지방을 태우는 불길은 금세 사그라져 주변의 어둠에 침식될 것만 같다.

영화는 한국전쟁이 터진 뒤 부산으로 몰려온 피난민을 상대로 한 노점상과 점집으로 형성된 점바치 골목에서 삶을 영위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담는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 남아 여전히 점집을 운영하는 두 점쟁이 할머니, 늙은 강아지를 벗 삼아 단칸방에서 살며 이따금 찾아오는 딸을 반기는 강아지 할머니, 귀가 먹어 의사소통이 여의치 않지만 여전히 물질하는 해녀 할머니, 그리고 문을 닫을 예정인 조선소에서 마지막 건조 작업에 매진하는 중년의 용접공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사람은 도시의 참 얼굴이자 거쳐온 시간의 증거이다. 오민욱 감독의 ‘상’(2012)이 근대역사관이라는 멈춰진 오브제만 던진 채 과거를 상기할 것을 강변하는 반면, 이 다큐멘터리는 점바치 골목과 영도다리라는 장소에 매인 사람들의 일상사와 희로애락을 통해 기억과 역사를 더듬고자 한다. 이제는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은 채 망각의 뒤안길로 사라질, 단지 그곳을 살았던 이들의 희미한 얼굴과 독백으로만 존재할 과거의 장소와 풍경들. 영상으로나마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카메라의 반대편에는 골목 재생과 해안 정비, 또는 정리 해고라는 명목으로 묵은 것을 지워내고 압살하려는 도시의 중력, 이윤의 창출에 골몰하는 자본의 욕망이 자리한다.

철거된 영도다리를 복구하고 유라리 광장을 만든다고 해서 무너진 장소와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다. 할머니들은 재개발의 물결에 그곳을 떠났고, 그들이 떠난 빈자리에는 운세 자판기가 들어섰으며, 실직한 용접공은 환경미화원이 되어 다리 주변을 청소한다. 장소에 의지해 위태로이 하루를 버티던 사람들의 삶은 생존수단과 방법을 잃고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지금 막 들어선 새것들도 머잖아 낡은 것이 되어 쓸려갈 것이고 또 다른 무언가로 대체되길 거듭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시선은 저무는 장소의 한 시절을 애도하는 만가(輓歌)에 그치지 않고 한국적 근대화의 섬뜩한 진풍경을 소묘하기에 이른다.
안타까운 건 강아지 할머니와 딸의 대화에 긴 분량을 할애하면서 작품의 초점이 다소 흐트러져 버렸다는 것이다. 모녀의 대화는 시트콤을 방불케 하는 재미를 안기지만,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장소의 역사성을 조형하겠다는 본연의 의도를 해친 감이 없지 않다.

   
2년 전 부산국제영화제 공개 후 다시 손을 본 재편집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절제와 선택의 묘가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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