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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기타 치는 스님이 건네는 유쾌한 ‘위로’

운수사 주지 범일 스님

  •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
  •  |   입력 : 2017-08-25 19:44:45
  •  |   본지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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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부터 온라인 사이트 운영
- 1500여 편 글 쓰며 대중과 소통
- 여유와 유머 있는 문체로 인기
- 최근 에세이집 ‘통과통과’ 출간
- 일상서 깨달은 부처 가르침 전해

“세상은 당신이 얼마나 신비로운지 잘 알고, 감당할 만한 시련을 줍니다. 모두 ‘조아질라고’ 있는 일입니다. 새로운 물결이 오는데 왜 머물러 있습니까. ‘통과통과’!”
범일 스님이 인터뷰 도중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부산 사상구 운수사에서 만난 범일 스님은 시종일관 유쾌했다. ‘스님’ 하면 떠오르는 엄숙하고 정적인 모습 대신 친근하고 밝은 얼굴로 손님을 맞았다. 35년 전 출가하고 맺은 많은 이들과의 인연이 지금도 이어진다는 스님의 말이 이해가 됐다.

범일 스님은 지난 6월 5일 천년 고찰 운수사의 주지 소임을 맡아 오랜만에 부산에 왔다. 스님은 1982년 범어사에서 성오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태안사, 부산 해운정사 등에서 수행했다. 스님은 중앙승가대학 재학 시절에는 학생회장을 맡았고, 서울 봉은사에서 총무국장으로 일하며 포교에 힘썼다. 번잡한 도심 포교에 조금 지쳐갈 즈음인 2001년 경기도 양평 화야산 기슭에 서종사를 짓고 17년간 정진했다.

범일 스님이 1655년 완공된 운수사 대웅전(보물 제1896호)의 묵서명을 설명하고 있다. 김성효 기자
스님은 최근 ‘통과통과-예측불허 삶을 건너가는 여유’라는 책을 펴냈다. 2009년 낸 ‘조아질라고’이후 8년 동안 쓴 1500여 편 글에서 엄선한 105편과 사진 46컷을 한데 엮어 만든 에세이 모음이다. 웬만큼 힘든 일도 다 ‘조아질라고’ 일어난 것이니 마음에 두지 말로 ‘통과’시켜버리는 범일 스님의 여유와 유머가 짙게 배어 읽는 이를 다독여주는 책이다.

‘조아질라고’는 스님이 1999년부터 운영하는 홈페이지(http://joajilrago.org/) 이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펴낸 책 두 권이 홈페이지에 올린 글과 사진에서 나왔다. 1999년이면 일반인이 이제 갓 이메일 주소를 만들어 쓸 때이며 인터넷이 덜 익숙했을 때다. ‘네이버’가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 1999년 6월이니, 범일 스님의 적극적인 ‘디지털 마인드’를 짐작할 수 있다. 어떤 계기로 홈페이지를 시작했을까.

“서울 봉은사에서 1997년까지 10여 년 열심히 포교활동을 했습니다. 봉은사에 신도가 워낙 많아 마치 중견기업 중역 같은 생활을 했죠. 어느 날 ‘내가 이렇게 바쁘게 살려고 출가했나’ 생각이 들어 다 접고 부산 해운정사에 수행하러 갔죠.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며 지금껏 인연을 맺은 분들과 소통하고자 홈페이지를 만들었어요. 노트북을 지고 다니면서 ‘하이텔’이나 ‘천리안’에 모뎀으로 연결해 홈페이지를 꾸렸죠.”

스님의 ‘통과통과’ 책 표지.
2006년 홈페이지에 연재한 남미·북미 두 달 여행기는 ‘히트’를 쳤다. 그 직전에 은사 스님과 가장 친한 도반이 열반했다. 허한 마음을 달래려 멀리 여행을 떠나 그 일상을 올렸는데 신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저는 아는 사람과 오래오래 인연이 이어질 때, 추억을 공유할 때 행복합니다. 지금도 홈페이지를 통해 행복을 이루어나가고 있죠.” 스님은 지금도 주 1회 이상 꾸준히 글과 사진을 올려 사람들과 소통한다.

‘통과통과’를 읽어 보면 범일 스님은 일상의 작은 일을 흘려보내지 않는다. 비 오는 날 풀을 뽑다가 사정없이 뽑히는 풀의 신세를 떠올리고, 바람이 이끄는 대로 떨어지는 코스모스 꽃잎을 보고 인연 따라 순하게 흘러가는 자세를 숙고한다. 가만히 있는 거미를 보고 고요히 지내는 삶을 생각한다.

“삼라만상에 부처 아닌 것이 없습니다. 물소리, 바람 소리가 부처님의 긴 설법입니다. 달 보세요. 밝음과 어둠을 다 갖고 있죠. 초승달, 반달만 보아도 우리는 환한 보름달을 떠올립니다. 밝음을 발견해야 사랑이 시작됩니다. 밝음을 보여주세요, 밝음을 발견하세요. 달은 날마다 뜨는 장소가 다르고, 뜨는 시간이 다르고, 모양이 다릅니다. 달이 ‘하늘에 있는 나도 변화하는데, 당신도 변화를 시도하라’고 말합니다.”

범일 스님 눈에는 벌레도, 벌도, 고무신도 모두 부처님이다. ‘나무풀벌레불’ ‘나무벌불’ ‘나무고무신불’ 등 생물과 사물에 이렇게 이름을 붙여 부처님 가르침을 찾는다.

범일 스님의 주지 임기는 앞으로 4년. 스님을 만나니, 도심 속 천년고찰 운수사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졌다. 누구나 찾아오면 만나고, 만나는 사람에게는 꼭 클래식 기타 반주로 노래를 불러준다는 스님. 운수사가 더욱 가까워질 것 같다. “신자들이 기도뿐 아니라 차도 마시고 명상도 하시며 쉬어갈 수 있도록 하드웨어를 손볼 계획입니다. 부처님을 알면, 운수사를 알면, 범일을 알면 ‘행복 시작’이 되도록 해드리고 싶습니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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