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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도의 결정적 한 장면 <15> 미져리(롭 라이너 감독·1990년)

“작가님의 열렬한 팬입니다” 섬뜩한 애정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8-24 18:45:22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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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가지만
- 순수문학에 갈망이 있는 주인공
- 원작자인 공포소설의 대가
- 스티븐 킹이 투영된 인물일까

“제가 제임스 칸의 발목에 한 행동을 그에게 사과하고 싶어요(I‘d like to apologize to James Cann for the ankles).”

   
그림=헌즈 작가
1990년에 개봉한 공포 영화 ‘미져리(Misery)’의 주인공 캐시 베이츠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무대에서 한 말입니다. 시상식장엔 폭소가 터졌습니다. 왜였을까요? 제임스 칸은 누구며, 그녀는 그의 발목에 무슨 ‘몹쓸’ 짓을 한 걸까요.

‘미져리’에서 캐시 베이츠는 간호사 애니 윌킨스 배역을, 제임스 칸은 소설가 폴 쉘던 배역을 맡았습니다. 극중에서 애니는 폴을 지극정성 간호합니다. 폭설이 뒤덮은 산속에서 폴이 자동차와 함께 추락해 하반신을 크게 다친 상태이거든요. 그렇다면 애니는 어떤 사연과 목적이 있기에 폴을 그토록 헌신적으로 돕는 걸까요.

폴은 ‘미져리(Misery)’ 시리즈물로 부와 명성을 쌓은 베스트셀러 소설가입니다. 폴은 내는 족족 책이 너무 잘 팔려서 기뻐해야 하건만 평단은 늘 그에게 싸늘한 평가만 투척하여 우울합니다. 그래서 폴은 ‘미져리’ 시리즈를 끝낸 후 권위 있는 문학상에 도전해보려 합니다. 자기의 창의적 열정을 갉아먹는 통속 소설은 그만 쓰고 싶어진 것입니다. 최근 그는 콜로라도의 산속 휴양지에 파묻혀 시리즈의 마지막 편을 탈고했기 때문에 날아갈 듯 휴양지를 떠나다가 가파른 눈길에서 추락한 것입니다.
“저는 작가님의 열렬한 팬입니다(I’m your number one fan).” 사경을 헤매다가 깨어난 폴에게 백의의 천사 같은 애니가 들뜬 표정으로 그렇게 고백합니다. 그녀는 폴의 ‘미져리’ 시리즈를 모조리 읽은 광팬인 것입니다. 그런데 폴을 극진히 간호하던 그녀가 돌연 팜므 파탈(femme fatale), 즉 남성에게 ‘치명적으로 위험한 악녀’로 돌변합니다. 왜일까요? 그녀가 분신처럼 아끼는 소설의 동명 여주인공 ‘미져리’를 폴이 마지막 편에서 죽였다는 걸 알아버린 것입니다.

“제가 작가님을 도와드릴 수 있게 저를 도와주세요.” 폴이 보는 앞에서 애니가 마지막 원고를 통째 불태우며 차분하게 그러나 차갑게 당부합니다. 그녀는 폴의 행위가 자기 같은 열혈 애독자에 대한 변절이라고 낙인찍은 것입니다.

   
‘폴 셸던은 생계를 위해 글을 써왔지만 이젠 생명을 지키기 위해 쓴다(Paul Sheldon used to write for a living. Now, he‘s writing to stay alive).’ 이 영화의 광고 문구입니다. 애니에게서 사이코패스의 광기를 본 폴은 최종 편을 고쳐 쓰겠노라고 약속합니다. 그뿐 아니라 애니의 요구대로 마지막 책은 그녀에게 바친다는 뜻을 세상에 알리겠노라고 약속합니다. 뛸 듯이 기뻐하는 애니가 이렇게 반응하는군요. “작가님 덕분에 제가 세상 모든 독자들의 시샘을 한 몸에 받게 되겠군요(You’re going to make me the envy of the whole world).”

과연 애니는 책읽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간호사 출신일까요. 애니가 쇼핑하러 나간 틈을 타 폴은 휠체어에 의지해 집안을 뒤집니다. 그녀가 감시용 장치를 곳곳에 숨겨놓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폴이 경악하는군요. 애니의 정체가 담긴 결정적 단서를 찾아낸 건데요, 스포일러여서 가려둡니다. 돌아온 애니는 양손에 각각 권총과 주사기를 쥐고는 ‘죽기 또는 살기’를 선택하라며 협박합니다. 그녀는 이미 1차 형벌을 내린 직후입니다. 해머로 폴의 발목을 다 내려친 것입니다.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소설을 고쳐 쓰는 동안 폴은 타자기를 들어 틈틈이 운동합니다. 운동 도구가 타자기인 특별한 이유가 있겠고요. 원제 ‘Misery’의 뜻처럼 악몽 같은 폴의 ‘고통과 불행’은 과연 끝날 수 있을까요? 탈고하던 날 폴이 제안합니다. 샴페인을 따 둘이서만 축하하자고…. 원고를 받아 읽고 행복해하는 애니. 그런데 폴의 집필실에 들어서던 애니가 소스라칩니다. 폴의 복수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배운 거요.” 무엇을 배웠다는 건지. 폴의 복수 방법 또한 스포일러여서 가려둡니다.

‘미져리’는 영화의 끝부분에 서늘한 여운을 배치합니다. 1년 반쯤 지나 폴은 뉴욕에 와있습니다. 출판저작권 대행사 임원들과 어울리는 동안 그는 무척 행복해보입니다. 그의 신작이 평단에서 극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미모의 웨이트리스가 다가갑니다. 이렇게 입을 떼는군요. “저는 작가님의 열렬한 팬입니다.”

   
영화의 원작은 공포 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이 1987년에 발표한 장편소설입니다.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한 영화 ‘샤이닝(Shining)’도 킹의 소설이 원작인데요, 글이 잘 써지지 않아 고뇌하는 작가의 삶을 그렸습니다. 어쩌면 ‘샤이닝’ 속 작가(잭 니콜슨)는 순수문학 걸작이 써지지 않아 고뇌했던 스티븐 킹의 분신이기도 할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글이 너무 잘 써지고 책이 너무 잘 팔리는 ‘미져리’ 시리즈의 작가 폴이 공포 소설만 잘 쓰는 스티븐 킹의 분신일 수 있듯이….

‘미져리’는 롭 라이너가 감독했습니다. 언젠가 이 코너에 꼭 소개하고 싶은, 제 인생을 바꾼 영화들 가운데 하나인 ‘스탠바이 미(Stand By Me)’도 그가 감독했습니다.


   
외딴 마을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형기 11년을 마치고 출소한 청년. 그에게 이끌려 사건을 재조사하는 소녀. 이들 연결고리가 밝혀내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과 꼬리를 무는 충격적 반전. 독일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출세작 소설을 강추합니다. 제목은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외화번역가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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