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오카를 여행하던 중 극장을 둘러보며 놀란 기억이 있다. 짐을 맡기고 식당가를 지나 도착한 하카타역 건물 9층.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이 보편화되어 있다. 그러나 시설의 편의성과 관객에 대한 배려, 무엇보다 상영 중인 영화를 알리는 안내판이 달랐다. 한 편의 영화가 여러 개의 상영관을 독식하는 일 없이 서로 양보라도 하듯 한 편당 한 개 관씩을 차지하고 있는 만화경 같은 풍경은 오늘날 한국의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생소한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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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후쿠오카 극장에서 다양한 상영작을 소개하는 안내판. |
일본의 여러 극장을 돌아다녔지만, 인기 흥행작이 상영관을 독점하다시피 영화관을 쓸어 담은 경우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심지어 상영관 10~12개 중 인기작이 2개 관을 차지한 경우도 보기 드물었고, 루이 말 감독의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7)같은 클래식이나 소규모 예술영화가 시네마테크도 아닌 상업영화관에서 당당히 한 개 관씩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윤은 중요하나 절제와 균형을 아는 선진 극장 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었다. 미국이나 유럽의 멀티플렉스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평균 2~3개 관을 넘지 않는 선에서 블록버스터를 상영하고 나머지는 다른 영화를 위한 여백으로 남겨두고도 무리 없이 수익을 올리고, 시장의 균형을 유지한다.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2017)가 한 때 상영관 2168개를 점유하며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스크린 독과점은 200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온 한국영화의 고질적인 문제이지만 ‘명량’(2014) 1587개, ‘부산행’(2016) 1788개 등 한국영화 대작의 스크린 점유율은 갈수록 높아졌다. 유독 ‘군함도’에 비판의 칼날이 거셌던 것은 암묵적인 한계선이라 할 수 있는 2000개 관을 넘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택시운전사’(2017) 또한 순식간에 1827개 관으로 몸집을 불리면서 독과점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산업의 측면에서 다수의 극장을 몰아 개봉하는 ‘와이드 릴리즈’는 단기간의 이윤을 확보할 수 있어 근시안적으로는 현명해 보일지 모른다. 관객이 많이 찾는 영화에 관을 배정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왜 문제인지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밀턴 프리드먼)는 식의 발상에 기반한 일방적인 독주는 장기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초래한다. 먼저 관객으로부터 선택의 여지를 원천적으로 박탈함으로써 소비자이면서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문화생활의 자유를 심각하게 손상한다는 것. 이것은 문화적 차원에서 인권(人權) 침해임을 놓쳐선 안된다.
또한 안전한 기획과 규모의 영화만 양산하고 그에 편중되어 배급이 이뤄지는 시스템은 영화 생태계 전체를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충분한 잠재력을 가진 신인 감독의 작품이 관객과 만나는 등용문을 막고, 중저예산이지만 다양한 색채의 영화가 창작될 기회를 축소하는 폐단이 심해지면서 당장 이윤을 위해 미래를 갉아 먹는 꼴이 벌어지고 있다. 묻고 싶다. ‘멀티플렉스’(Multi-plex)는 아직 ‘다양성’(multi-)의 꿈을 꾸는가? 어쩌면 한국의 극장은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을 잃은, 황량한 회색빛의 모노플렉스(mono-plex)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지 자문해야 할 시점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