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시작… 올여름 4회째 안거
- 매일 사불·108배·독경 등 다양
- SNS에 사진 올려 댓글로 격려

- 지도 맡은 김경숙 동림연구소장
- “삶의 고난 극복하는 힘 키우길”

“우리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부처님께 마음을 고백하고, 스스로 사유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2016년 11월 부산 금정구 홍법사 대광명전에서 어린이·청소년 대상 동안거 입재식이 열렸다.

부산 금정구 두구동 홍법사(주지 심산 스님)는 신자와 함께 하는 다양한 신행 프로그램으로 불교계와 사회 양 쪽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 중 해가 갈수록 입소문이 퍼져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 사찰에서 주목하는 어린이 포교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어린이·청소년 신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재가안거’다. 안거는 승려들이 여름과 겨울에 3개월씩 외출을 금하고 수행하는 일이다. 여름에는 ‘하안거’, 겨울에는 ‘동안거’를 보낸다.

하안거 기간 어린이들이 집에서 108배를 하는 모습. 홍법사 제공

재가안거는 불교 신자들이 여름이나 겨울에 집에서 안거를 행하는 것을 뜻한다. 승려들처럼 외출을 안 할 수는 없지만 일상 중 짧은 시간이라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행한다. 홍법사의 어린이, 청소년 신자들은 어른도 성공하기 힘든 안거를 벌써 4회째 지내고 있다. 2015년 겨울 동안거를 시작으로 2016년 여름과 겨울을 지나 올 여름 네 번째로 재가안거에 들어갔다. 어린이·청소년 재가안거를 지도하는 홍법사 김경숙(47)동림청소년연구소장을 만났다. 손 안의 스마트폰만 켜면 재미난 일이 넘쳐나는 시대에 어린이, 청소년이 어떻게 정적인 안거에 들어갈 수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김 소장은 작곡을 전공하고 현재 음악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그는 홍법사의 건물이 다 세워지기도 전인 2002년께부터 어린이, 청소년 신자들의 모임인 ‘동림’을 지도하고 있다. 아이들이 절에 와서 법회만 참석하고 돌아가기보다 좀 더 뜻 깊은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전공을 살려 플루트와 합창을 가르쳤다. 동림 친구들은 방학 때면 콩쿠르도 나가고, 중주도 할 정도로 플루트 실력이 쑥쑥 늘었다. 음악을 전공한 다른 신자들도 마음을 모아 사물놀이와 가야금 등 더 많은 악기를 가르쳤다.

어린이·청소년 재가안거를 지도하는 김경숙 홍법사 동림청소년연구소장.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음악을 활용한 어린이 포교가 자리를 잡았지만,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었다. “우리 아이들을 눈치 안 보고 야단 칠 정도로 애정을 갖고 욕심껏 가르쳤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 공부하느라 바빠서 절을 잊거나 예전만큼 나오지 못해요. 일찍부터 부처님의 마당에서 놀았던 아이들이 나이가 들면서도 생활 속에서 꾸준히 부처님께 마음을 고백하고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면 했어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재가안거를 떠올렸습니다. 다섯 명만이라도 참여한다면 끝까지 가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동림 아이들 30여 명이 참여하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어요.”

1회는 2015년 겨울, 90일 동안 진행했다. 날마다 불상 그림에 색칠을 하는 ‘사불’을 하고 반야심경 200여 자를 읽고, 감사·참회·선행기록을 한 줄씩 썼다. 아이들은 함께 재가안거에 들어간 도반 모두의 이름을 한 번씩 부르며 행복을 기원했다. 이를 모두 행하는 데에 짧은 시간이면 충분했다. 90일 동안 중도에 하차한 어린이가 거의 없었던 건 SNS의 힘이 컸다. 부모가 매일 아이들의 참선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렸다. 김 소장은 아이들의 수행 기록에 일일이 댓글을 달아 격려했다. 아이들 부모들도 다른 집 아이들에게 “대단하다” “장하다”는 격려의 댓글을 달았다. 서로 격려하며 힘을 얻고, 재미를 느꼈다.

2회 하안거 때는 ‘사불’을 하지 않고 108배에 도전했다. 108배는 속세 말로 하면 ‘전신운동’이다. 끈기를 키울 수 있는 수행방법이다. 아이들은 몸이 가벼워 일주일만 적응하면 잘 할 수 있지만, 처음엔 성공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아이들이 야영 가서도 하고, 가족과 휴가 가서도 하고,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친구들과 함께 하고, 친척 집에 놀러가서는 친척과 함께 했다고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렸어요. ‘못 하겠다’는 부정적인 분위기가 확산되면 시들했을텐데, 서로 격려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모으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죠.”

올 여름은 4회 하안거다. 동림 아이들이 약 다섯 달 반 전에 1000일 감사수행에 들어가 이번 하안거는 약식으로 21일간만 진행한다. 11일이 1000일 감사수행에 들어간 지 165일째 되는 날이다. 이번 하안거는 대한불교조계종 부산연합회 소속 사찰 등 10여 개 절이 동참한다. 홍법사에서 제작한 수행집을 바탕으로 절의 사정에 맞게 진행하고 있다. 동림 아이들 30여 명을 비롯해 전국에서 300여 명의 어린이가 참여하고 있다. 오는 25일 오후 5시 홍법사에서 하안거를 마치는 회향식을 열 예정이다.

김 소장은 “아이들 마음에 겨자 씨 하나를 심는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며 일희일비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죠. 안거에 참여했던 아이가 시험치기 전날 긴장했을 때 반야심경을 외우고 108배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처음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 목표한 성과가 나타나는 것 같아 행복할 뿐입니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