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주 모여 음악·미술·봉사활동
- 배우고 체험하면서 점점 성장
- 지역소식지 펴내고 마을잔치도
- 올해는 ‘날라갈라쇼’ 진행
- 인문학·예술로 또래 고민 나눠
“나는 무엇을 잘할까?”
청년문화단체 ‘고치’의 시작은 이 질문에서 비롯됐다. 부산 북구 덕천3동에서 공부방을 연 김행운(44) 씨와 이언옥(41) 씨는 부모의 손에 끌려 온 아이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며 점점 아이들의 다양한 재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을 잘 그리고, 손재주가 좋고, 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을 가졌고, 만화에 관해서 모르는 것이 없는 아이들에게 공부만 강요하기 어려웠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제안했다. “우리 매주 놀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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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북구 덕천3동 청년문화단체 ‘고치’의 공간에서 구성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뒷줄 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여주, 박다빈, 김행운(한가운데 앉은 이), 박성원, 최승모, 허동현(앞줄 맨 오른쪽), 박현우, 이예진, 정서원, 이언옥(고양이 안은 이). |
두 사람의 제안으로 모인 중·고등학생 30명은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놀기로 했다. 덕천동 골목길의 작은 공간에 매주 모여 기타를 배우고, 공예품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작은 공간에서 놀다 보니 슬금슬금 밖으로 나가고 싶어져 인근 요양병원에 찾아가 그동안 연습한 노래와 연주를 들려주고, 추운 겨울이면 연탄 배달 봉사도 꼬박꼬박 했다. 봉사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일 카페도 직접 운영했고,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하고 싶은 것을 선보인 ‘청소년 자유 프로젝트 축제’도 열었다. 2012년 12월에는 ‘누에고치 공부방’이란 이름을 붙였고, 그것이 ‘고치’의 출발이었다.
고치와 함께 자란 아이들의 관심 분야는 점점 늘어났다. 처음에는 자신이 잘하는 것을 알고 싶어, 또는 부모나 친구에게 등을 떠밀려 찾아온 청소년들은 고치에서 예술을 배우고 문화를 체험하며 점점 눈도, 마음도 자랐다. 이에 직접 기자단을 꾸려 지역 문화예술 현장을 찾아 소개한 지역문화 소식지 ‘팡팡뉴스’를 펴냈고, 직접 프리마켓을 열어 친구들과 나눔의 기회를 공유했다. 철거를 앞둔 북구 만덕5지구에서 주민들과 어울려 동네잔치 ‘대추나무골 사랑방 만덕 잔치’를 마련하고, 이 과정을 사진과 글로 기록해 사진전 ‘관계의 잔치, 가치의 재생’도 열었다.
올해는 또래 청년(청소년)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날라갈라쇼’를 기획해 꾸려나가고 있다. 지난해 1월 결성한 하자밴드의 공연을 계기로 또래 청년과 소통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했으며, 올해 부산문화재단의 ‘청년문화 활성화 프로젝트’에 선정됐다. 날라갈라쇼는 인문학과 예술(시, 공예, 음악, 놀이)을 통해 청년의 문제를 짚어보고 함께 고민하는 자리다. 윤동주 시인의 시를 매개로 무엇이 시시하고 부끄러운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각자의 사유를 끌어낸 ‘시시(詩詩)한 갈라쇼’, 박스종이나 나뭇가지 등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미미한 물건으로 리사이클링 작품을 만들고 쓸모없다고 생각한 것이 가진 힘과 가치에 관해 이야기한 ‘미미(美美)한 갈라쇼’, 공동체의 의미와 가치에 관해 터놓고 이야기한 ‘반반(半半)한 갈라쇼’ 등이 그동안 진행한 쇼의 주제다.
질풍노도 사춘기를 보내던 고치의 아이들은 이제 어느덧 대학생이 되어 취업과 창업 등을 고민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면서 문화예술을 경험하고 즐기던 것에서 한 발짝 나아가 더 많은 청년과 소통하며 문화, 창업, 주거, 공동체 등에 관한 고민을 나누는 자리를 꾸준히 만들어가고 있다. ‘비밀기지’와 ‘단디벤처포럼’ 등 다양한 청년단체와 교류하게 된 것도 꾸준한 고민의 결과다.
또한 한때 무기력하고 의기소침했던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찾고 만드는 단단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고치 정서원(20·여) 기획자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치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면서 나의 세계가 확장된 것을 느꼈다. 고치에서 받은 위로와 위안을 날라갈라쇼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고치 김행운 공동 대표는 “아이들의 재능을 살려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청년이 되었고, 또 여러 활동에서 도움받은 단체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연스럽게 청년문화의 영역까지 들어온 것 같다. 1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청년이 모여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브리지’ 역할을 하는 곳으로 성장했다”고 그동안 활동의 성과를 소개했다. 이언옥 공동 대표 역시 “고치의 청년들이 인간이 지켜야 할 가치와 본질을 잃지 않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집’이 되어주고 싶다. 다양한 청년이 모여 고민하고 스스로 만드는 것이 결국 청년의 힘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김현주 기자 kimhj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