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운드 설치 미술가 정만영
- 건축학과 교수 우신구 주축
- 초량·수정동 리서치·재발견 작업
-‘골목의 기억, 도시의 상상’
- 책자·전시·공연 등 결과물 내
-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로 확장
- 올해 부산 장인·청년예술인 매칭
-‘비 메이커즈’ 프로젝트 진행 중
부산 동구 초량동은 재개발로 한창 시끄럽다.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 부산소녀상 설치 문제로 여러 사람이 찾아 시끌벅적했던 동네는 요즘 대형 아파트 단지 건설 공사 소음이 끊이질 않는다. 학생들의 발랄한 웃음소리만 가끔 들렸던 주택가는 땅을 파고 고르는 대형 굴착기 소리에 묻혀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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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도심 공간을 다양한 예술 장르로 기록하는 ‘초량1925’ 멤버들이 적산가옥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미라 우신구 백비오 정만영 김혜경 정인아 씨. 전민철 기자 |
대형 공사장 입구로 들어서는 좁은 골목길에 시간이 멈춘 듯한 주택 한 채가 홀로 서 있다. 부산시 등록문화재 제349호로 지정된 일본식 가옥(적산가옥) ‘초량1925’로, 1925년 건축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공간이다. 일맥문화재단이 소유한 이 적산가옥에서 문화예술단체 ‘초량1925’가 새로운 청년문화의 싹을 틔우고 있다.
초량1925는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사운드 설치 미술가 정만영 작가와 부산대 우신구(건축학과) 교수가 주축이 되어 만든 문화예술단체다. 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돕는 일맥문화재단의 후원으로 2014년 만들었고, 2015년과 2016년 초량동과 수정동에서 ‘골목의 기억 도시의 상상’ 프로젝트를 진행해 주목받았다. 부산문화재단 등의 지원을 받은 이 프로젝트는 여러 분야 예술가와 건축가, 향토사학자 등이 초량동과 수정동을 둘러보며 건축, 근현대 사료 연구, 미시사 연구, 소리 아카이브, 시각예술 등의 시각으로 공간을 연구하고 기록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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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량1925’의 적산가옥 전경.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
초량1925 대표를 맡은 정 작가는 “부산은 ‘다이내믹’한 도시로, 활동적인 이미지와 소리를 갖고 있다. 그래서 원래 부산이 가진 소리가 무엇인지 관심이 있었다. 소리로 도시를 재해석하는 ‘소리 생태학(사운드 스케이프)’ 관점에서 부산의 소리가 무엇이고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고 싶어 옛 모습을 간직한 곳을 찾다 원도심까지 흘러들었고, 때마침 ‘공간’의 관점에서 도시 변화를 연구하던 우 교수님과 뜻이 맞이 초량1925를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동네에 큰 건물이 들어서면 소리가 변하듯 지역의 소리가 어떻게 변했는지 과정을 보려면 도시 지형과 건축 과정부터 짚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소리’와 ‘공간’의 조화가 잘 맞았다”고 덧붙였다.
초량1925는 원도심에서도 비교적 한적한 초량동과 수정동을 둘러보며 지역 리서치 작업을 했다. 정 작가가 소리를, 우 교수가 공간을 살폈고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김한근 소장을 비롯해 시각예술, 건축, 구비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이 참여해 각자의 관점에서 지역을 보고 각각 기록했다. 그 결과물을 모아 ‘골목의 기억, 도시의 상상’ 책자 발간과 전시, 퍼포먼스, 토크, 공연 등으로 풀어냈다.
초량1925 김혜경 기획팀장은 “초량동의 경우, 옛 지도 3장을 겹쳐 아직 남아있는 골목길을 찾아 1950년대 벽돌과 소리가 그대로 남은 공간을 발견하고 그것을 아카이브로 남겼다. 수정동은 동네에 물길이 많았다는 지리적 특징을 토대로 여러 길을 걸으며 콘크리트 아래 묻힌 옛 물길과 소리를 발견했다. 소리에 집중해 원도심을 재발견하는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중구 영주동 지역 리서치를 진행하고 있는데, 영주동 터널을 중심으로 중구와 동구, 서구의 경계가 된 지역의 특징을 살피는 데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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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 장인과 청년 예술가 협업 프로젝트 ‘비메이커즈’ 준비 모습. 초량1925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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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1925는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다양한 시각으로 원도심을 바라보기 위해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이 과정에서 여러 분야의 청년 예술인이 참여해 각자 작업에서 성과를 얻었고 그것이 새로운 형태의 결과물로 쌓이고 있다. 정 작가는 “원도심 리서치는 여러 예술인의 작업을 모으는 아카이브 과정이다. 이것을 토대로 다른 작가가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고, 그것이 또 다른 결과를 낳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현대미술에서 예술적 관계를 만드는 ‘커뮤니티 아트’도 중요하다. 원도심의 공간을 건축, 소리, 역사, 설치미술, 음악 등의 시각에서 보고 그것을 연결하는 것도 예술의 한 부분이다”고 말했다.
특히 이 단체는 청년 예술인에 집중한다. 올해 생활 장인과 젊은 예술인 8명이 함께 전통과 새로움의 결합을 추구하는 프로젝트 ‘비 메이커즈’(본지 지난 6일 자 23면 보도)를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 팀장은 “지역이 활성화되면 소리가 시끄러워지는데, 공연 같은 인위적인 행사로 소리를 채우는 데 한계가 있다. 원도심을 시끄럽게 할 청년을 끌어들일 방법을 고민하다 전통과 재기발랄함이 만나면 무언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시작했는데 결과가 궁금하다”고 소개했다. 초량1925의 보금자리인 적산가옥도 청년 예술인으로 채울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 이곳에서 2015년부터 2년 연속 ‘아트 레지던시 초량’을 진행하며 김병권 서평주 양자주 등 젊은 작가의 작업을 지원했다. 김 팀장은 “올해 영주동 리서치까지 끝나면 3년간의 결과물을 돌아보는 전시 등을 기획 중이다. 옛것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원도심을 재발견하고, 이곳에서 청년이 날개를 펼 수 있게 돕고 싶다”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 kimhj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