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명으로 퇴역한 군인 프랭크
- 온통 어둠 뿐이던 그의 인생은
- 가난한 청년 찰리의 도움으로
- 아름다운 여인과 탱고를 추고
- 스포츠카 페라리를 직접 모는 등
- '최후의 여행'을 즐깁니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Life is C between B and D)." B와 D는 Birth(탄생)과 Death(사망)를, C는 Choice(선택)를 뜻합니다. 이 응축된 메시지를 풀면 이렇습니다. '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러므로 매번 신중하게 잘 선택해야 한다.'

그림=헌즈 작가

어느 마을 노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오늘의 나인 이유는 어제 내가 한 선택 때문이다(I am who I am today because of the choices I made yesterday). 그렇기에 내일은 오늘 내가 한 선택의 결과가 될 것이다(Tomorrow will become the result of today's choices).

마을 노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꿈을 잃고서 비극적 결말을 선택하려 했던 이들입니다. 그들을 바꿔놓은 건 그 마을에 들어온 어느 신비로운 노인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지금 할 선택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내다볼 줄 아는 능력, 그거야말로 운명도 가를 수 있는 지혜입니다."

이 '지혜로운' 가르침은 저술가 앤디 앤드루스가 자기 책 '오렌지 비치(The Noticer)'에 소개한 일화입니다. 스스로 '벼랑 끝' 운명 앞에 놓였다고 믿었던 마을 노인들은 그렇게 운명의 물꼬를 바꾼 이후로 이렇게 외쳤을 것만 같습니다. "우리 앞에 이제 벼랑은 끝!"

이 신비로운 노인이 마을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면 드라마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에선 그런 역할을 한 학생이 담당합니다. 그는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의 명문 고등학교에 다니는 가난한 청년 찰리(크리스 오도넬)입니다. 성탄절 때 고향에 갈 여비가 필요한 찰리는 추수감사절 휴가 때 어느 노인을 보살피기로 합니다. 그 노인은 퇴역한 육군 중령 프랭크(알 파치노)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고통이 있다고 하지요.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우리를 아프게 하는 고통(Pain that hurts you)'이 그 하나입니다. 나머지는 '우리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고통(Pain that changes you)'입니다. 지금 프랭크는 '앞의 고통'으로 인해 괴로워합니다. 군대에서 수류탄 훈련 중 발생한 폭발로 인해 실명한 것입니다. 성격이 괴팍하고 성질이 불같은 그가 이렇게 외칩니다. "나의 삶은 온통 어둠뿐이야(I'm in the dark. I got no life)."

영화 속 프랭크(알 파치노·왼쪽)와 찰리(크리스 오도넬).

어두운 독방에 홀로 파묻혀 술에만 의지하던 프랭크는 찰리의 도움을 받아 뉴욕에 가보기로 합니다. 추수감사절을 위해 그가 특별한 나들이 계획을 세웠거든요. 전용 기사가 딸린 리무진으로 여행하고, 최고급 호텔에 묵으며, 최고급 시가 담배와 와인을 곁들인 '만찬'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그는 45구경 권총도 소지하고 있습니다.

프랭크가 자기를 위한 '최후의 만찬', 즉 자살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기에 찰리는 프랭크의 새롭고도 낭만적인 면모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합니다. 앞을 못 보는 그가 미모의 아가씨와 탱고 명곡 '포르 우나 카베사(Por una Cabeza)'에 맞추어 현란하게 댄스 솜씨를 뽐내는 장면에선 홀딱 홀려 넋을 잃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프랭크는 스포츠카 페라리를 빌리더니 직접 몰아 질주합니다. 동승한 찰리는 혼이 반쯤 나가버립니다. 마치 '지금이 아니면 너무 늦다(It's Now or Never)'는 노랫말의 뜻처럼 프랭크는, 어쩌면 다시는 맛보지 못할 희열의 정점을 향해 질주하려는 건지도 모르겠군요.

별칭이 '뉴욕의 왕궁'인 호텔, 즉 월도프 아스토리아에 돌아온 프랭크는 찰리에게 심부름을 시킵니다. 뭔가 수상하다고 여긴 찰리가 다급히 되돌아갔을 땐 아뿔싸, 프랭크는 마지막 의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도록 찰리는 프랭크와 권총을 움켜잡습니다. 두 종류의 고통 가운데 두 번째, 즉 '우리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고통(Pain that changes you)'을 받아들일지 말지의 중대한 선택 앞에서 프랭크는 과연 자살 결심을 접을까요.

"내가 죽으면 안 되는 이유를 하나만 대봐(Give me one good reason not to die)." 그렇게 울부짖는 프랭크. "제가 두 개를 대볼게요(I'll give you two)." 그렇게 응수하며 부들부들 말을 잇는 찰리. "제가 지금껏 본 누구보다 탱고를 잘 춰요. 페라리도 제일 잘 몰아요." 마침내 관자놀이에서 총구를 거두는 프랭크. 그가 깨달은 것입니다. '선택은 각자 자유이지만 그 이후의 운명을 지배하는 것은 선택 그 자체'라는 것을….

이런 은유가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이름의 책에서 앞 챕터만 반복해 읽다보면 다음 챕터를 펼칠 수 없다(You can't start the next chapter of your life if you keep re-reading the last one).' 찰리는 프랭크의 '앞 챕터', 즉 과거의 아픔이나 상처가 빚어낸 그의 부정적 인생관을 '다음 챕터', 즉 희망적인 미래를 향한 긍정적 인생관으로 바꿔놓은 것입니다.

대단원에서 프랭크는 찰리의 고등학교에 찾아갑니다. 찰리는 현재 하버드대학교에 진학하려는 꿈을 접어야 할 만큼, 교장이 설계한 모함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그래서 프랭크는 자기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을 돕기 위해 보호자 자격으로 나선 것입니다. 찰리가 퇴학의 위기를 벗어나 자유롭게 날 수 있게끔 그가 어떤 통쾌한 질타와 감동적 명연설로 학교 측을 맹폭하는지, 몽땅 가려두기로 합니다.

외화번역가


※'운명을 바꿔놓는 선택'에 관한 스토리를 책으로 만나고 싶은 분께는 본문에 소개한 '오렌지 비치'를 추천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도 지었습니다.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