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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명절 친척 잔소리 폭격에 고르고 고른 한 마디 "뿡" /박진명

내 방구같은 만화- 기묘나 지음 /호랑이 출판사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6-16 19:30:51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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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일자리 구하며 독립생활자 꿈꾸는
- 20대 여성 생활 녹여낸 자전적 만화
- 괜히 무섭던 자취방 가는 길의 경험 등
-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 공감불러 주목

   
삶이 팍팍해지고 숨 쉴 구멍이 적을수록 자기만의 표현 수단은 더 절실하다. SNS도 각자의 그런 출구일 것이고, 일기를 포함한 글쓰기나 그림, 사진 등도 스스로의 삶과 세계를 표출하는 출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무제한 데이터요금과 와이파이로 세상과 연결되는 시대에는 표현 수단들이 대중의 욕망만을 편집해 보여주는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반대로 연결 채널도 많아지고 24시간 접속 가능해졌음에도 오히려 더 고독해진 개인의 공개된 독백이나 일기로 남기도 한다. 스스로 선택한 표현 창구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에 충분히 귀 기울이고 누군가와 공유하며 이 세계를 함께 돌아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공적인 발화로 내놓으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하한 데다, 기성이 만들어놓은 경쟁 시스템의 인증을 받거나 유명세를 타지 않는다면 공적인 언어로 발화할 기회 자체가 적거나 멋쩍기도 하다.

내 방구 같은 만화는 부산의 독립출판사 '호랑이출판사'의 만화책이다. 심리상담을 받으며 아르바이트 구하는 것이 취미인, 막 자취를 시작한 20대 여성 작가의 생활을 다룬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만화다. 작가는 청년의 자존감을 잃지 않으면서 사회에 발을 붙이려다 보니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그만두길 반복하고, 아르바이트 구직 정보 찾는 것이 취미이자 습관이 되어버렸다. 또 버스에서 옆에 앉은 남자가 괜히 무섭고,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도 무섭고, 어렵게 구한 방의 문도 불안한 여성이다. 작가는 방 구하기, 일 구하기, 심리적 안정 찾기 등 20대 여성 청년으로 독립생활자를 꿈꾸면서 겪은 좌충우돌과 낙담, 위로를 만화로 그렸다.

어찌 보면 수많은 누군가의 경험이기도 할 내용이 새삼스럽게 한 권의 책이 된 셈인데, 그 공감의 파급력은 크다. 무기력증과 불안에 싸여 있으면 자신도, 타인도 잘 보지 못하고 괜한 생채기만 남기 쉽다. 하지만 좋은 표현 창구를 만나면 자신도, 관계도 더 잘 보인다. 예술의 본래 취지도 고상함이 아니라 하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내·외부를 들여다보는 시각의 확장에 있다. 저자가 낙서 같은 스케치북의 이야기를 쌓아가는 사이, 스스로와 주변을 돌아보는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숨 쉴 구멍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개인의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읽는 이에게도 쉼 쉴 구멍이 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여럿이 함께 나누고자 용기를 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작가뿐 아니라 독자도 내면과 주변의 관계를 더 잘 보게 된다.
   
제목의 '방구'는 이런 표현의 건강함을 잘 보여준다. 명절과 제사에서 만난 친척이 던진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이야기에 맞춰 크게 방구를 끼는 작가 기묘나는 이제 조금 더 독립생활자에 가까워졌을 것 같다. 불안과 무기력이 바탕에 깔린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무겁지 않고 처지를 함께 상상하고 웃으면서 응원하게 되는 것은 이미 작가 스스로 위대한 투쟁에서 방구 같은 승리를 향해 한 걸음 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팍팍한 현실, 불안한 현실 속에 던져진 누구라도 침해받지 않는 작은 표현의 수단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 책은 경쟁을 뚫은 작가가 아니어도, 유명하지 않아도, 개인의 내면을 지켜보는 과정을 주목한다. 그것은 기존 출판사가 다루지 않는 주제와 방식을 담는 독립출판과 잘 어울린다. 이 책은 2쇄를 찍고 이달 독자와 만난다. 1쇄의 마지막 영광은 내가 누렸으니, 2쇄를 구해보시길 바란다. 일반 서점에서 유통되지 않으니 직접 출판사에 연락하거나, 독립출판물 전문 서점에 문의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우리 주변의 이야기, 지역 독립출판사를 만나는 길은 이렇게 가깝고도 멀다.

문화기획자·청년정책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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