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적이면서 실험성 돋보이는
- 칠화 창작품 등 70여점 선보여

- 여든 가까운 나이에도
- 멈추지 않는 예술혼 불태워
- 다음 달까지 경남도립미술관

'멈추지 않는 예술혼'으로 한국적 미술의 길을 찾는 노(老) 스님은 여전히 예술에 관해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었다. 조계종 원로위원이자 통도사 주지를 지낸 성파(78) 스님이 지난 1일 경남 창원시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성파옻칠전-월인천강지화' 전시회 를 시작했다.

	경남 창원시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지난 1일 열린 '성파 옻칠전-월인천강지화' 개막식에서 옻 물감으로 그린 자신의 대형 작품 '금강산' 앞에선 성파 스님.

개막식에서 성파 스님을 만나 예술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미술 재료부터 한국에서 만들어야 한국적인 그림이 나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이건 한국화네' 하고 알 정도로 '미술의 한류'가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성파스님의 작품 '무제'.

성파 스님은 한국적인 미술 재료인 '옻액'을 활용해 '칠화'(漆畵) 작업을 하고 있다. 한중일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옻칠의 역사는 오래 됐다. 경남 창원 다호리 고분군에서는 기원전 3, 4세기에 제작된 제기에서 옻칠 흔적이 발견됐다. 옻칠은 수명이 길어 생활 용구부터 악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활용됐다.

특히 사찰에서 쓰임이 많아 '꿈에서 스님만 봐도 옻이 오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이 칠 문화를 꽃 피울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숭유억불 정책을 편 조선 시대부터 칠 문화가 쇠퇴했다.

성파 스님이 주석한 통도사 서운암은 우리 칠 문화 부흥의 전당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사찰 안에 칠공방이 있다. 성파 스님은 옻칠 작업으로 공예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칠화'로 영역을 확대했다.

"어느 시대나 창작이 있어야 합니다. 고려청자, 조선백자도 그 시대엔 창작이었습니다." 성파 스님은 옻에 상처를 내면 나오는 '옻액'에 석채, 흑연 등 다양한 재료를 섞어 직접 옻 물감을 만든다. 그는 "옻 물감은 화려하면서도 중후한 맛이 있다"며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색이 살아난다"고 들려줬다.

칠화는 내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기법이다. 유화는 여러 겹 덧칠해 마지막에 칠하는 색을 보여준다. 반면 칠화는 덧칠한 부분을 깎아내 속을 보여준다. 어떤 부분을 얼마나 깎아내느냐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스님은 "표면을 버리고 이면을 드러내는 기법은 옻 물감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스스로를 '학인'(學人)이라 칭한 스님은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서예로 시작해 전통 제지술과 천연 염색, 도자로 구현한 십육만 대장경 제작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틀을 깨며 정진하듯 예술 활동을 한다. 칠화를 시작한 것도 10여 년 전이다.

"'안 배우고 했다'는 만용, 자만은 좋은 것이 아니다"고 말한 스님은 칠 문화 부흥을 위해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공방에서 5기 50명이 수료했고 그 중 7명이 옻칠문화재 수리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옻칠로 그리는 민화 과정도 벌써 3기가 수료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길이 6m 이상의 대작 3점을 포함해 칠화 작품 70여 점을 선보인다. 우리 전통 회화작품이나 민화를 칠화로 나타내 익숙한 느낌을 주는 작품도 있지만, 창작품 비중이 높다. 마치 미국의 현대미술가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보는 듯한 단색의 대형 작품이나 붉은색·검은색 등 점으로만 이루어진 현대적인 작품이 작가의 나이와 신분을 떠올릴 수 없게 만든다.

경남도립미술관 이규석 학예사는 "스님 작품의 외관은 전통적이지만, 내면은 실험적이고 현대적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보조를 잘 맞추고 있는 분이 여든이 다 되어 가는 스님"이라고 말했다. 다음 달 30일까지 (055)254-4634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