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활동 부산 대중예술인 모임 '갈꿈회' 부회장 맡아 동분서주
- 친목모임 아닌 방향·목적성 뚜렷,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적극 참여
- 만약 부산에 안 살았더라면
- 연극을 다른 데서 시작했다면
- 나란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
- 내 안의 바다·확장성·생각들…
- 그래서 내 경험 다 주고 싶죠
- 날 만들어준 이 도시에
- 왜냐고? 이기 바로 의린기라
그는 영화 '극비수사'(감독 곽경택)에도 나왔고(백 도사 역으로 특별출연했다), 드라마 '야인시대'에도 나왔고(집요하고 독한 일제 경찰 미와 경부였다), 전수일 감독의 예술영화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에 출연했으며, 드라마 '주몽'에서는 주인공 송일국(주몽 역할)과 맞서는 부득불을 연기했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만 들춰봐도 배우 이재용이 얼마나 부지런히 영화와 드라마와 연극에 출연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배우 이재용 하면 이 대사를 떠올리는 팬이 여전히 훨씬 많을 것이다. 16년 전 영화 '친구'(감독 곽경택)에서 그가 뱉은 말이다.
"니, 의리가 뭔지 아나? 이기 바로 의린기라."
(놀랍게도 유튜브에서 '이기 바로 의린기라'만 치면, '친구'의 그 장면만 편집해놓은 동영상을 볼 수 있다.)
"갈꿈회는 부산 위한 서포터즈"
배우 이재용은 '집'이 여전히 부산이다. "한 달에 두 번은 기본으로 부산에 옵니다. 집에 오는 겁니다." 그의 주소지는 부산 서구 서대신동이란다. "동아대 무용학과를 졸업한 아내가 3대째 서대신동에 살고 있거든요. 아내에게 '서울 올래?'하고 떠본 적도 있는데 단칼에….(웃음)" 그가 표정을 진지하게 고치더니 말을 이었다.
"언제나 이런 생각을 해요. '내가 부산에 안 살았다면, 내가 부산에서 연극을 시작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시작했다면, 나란 사람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내 안의 바다, 내 안의 자연, 내 안의 확장성, 내 머릿속의 생각.' 부산은 저를 만든 도시고, 저를 계속 열게 해줍니다."
잠깐 그의 말과 목소리에 취했다. 미와 경부나 상곤이(영화 '친구'에서 그가 맡았던 역할) 이미지는 사라지고 어느새 앞자리에는 '부산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 부산으로 이사 와 부산대 철학과를 다니다 연극에 뛰어들었다.)
최근 부산을 찾은, 아니 부산의 집에 온 배우 이재용을 남포동 BIFF 광장에서 만난 건 '갈매기의 꿈' 때문이었다.
'갈매기의 꿈'은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부산 출신 대중예술인들의 모임이다. 회장 이경규, 부회장 이재용, 사무총장 변우민을 비롯해 회원 19명이 활동하고 있다. 줄여서 '갈꿈회'라고들 한다. 갈꿈회는 지난해 6월 부산시와 '지역 대중문화사업 저변 확대와 발전을 위한 MOU(업무협약)'를 맺었다. MOU가 '구속력'을 갖는 게 아니다 보니, 막상 맺고 나서도 별다른 업무를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는 사례도 꽤 있다. 그런데 갈꿈회는 기세가 좀 다르다. 고향과 맺은 MOU를 허무하게 날려버리지는 않겠노라는 의지 같은 게 느껴진다.
그런 갈꿈회의 마음을 느끼게 해준 것이 '이재용 부회장'의 목소리였다.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닙니다. 분명한 지향이 있습니다. 방향성과 목적성이 있죠. 능동적으로 부산 문화 발전을 돕는 서포터즈가 될 것입니다." 그는 두 시간 남짓 이어진 인터뷰에서 이런 취지의 말을 자주 했다.
"부산에서 연극을 시작한 건 큰 행운"
 |
| '갈매기의 꿈(갈꿈회)' 부회장인 배우 이재용이 부산 중구 남포동 BIFF 광장에서 환하게 웃음 짓고 있다. 김성효 기자 |
부산 중구는 현재 '엔터테이너거리 조성 사업'을 하고 있다. 남포동 BIFF광장 입구부터 롯데백화점 광복점 맞은편 광복쉼터까지 630m 구간에 엔터테이너 관련 조형물과 영상장치, 스타 포토존, 쉼터, 풋프린트 등을 오는 6월말까지 배치해 명소로 가꾸자는 사업이다. 이런 사업에서 지자체는 예산과 시책이 있지만 대중예술계에 네트워크가 없고 그쪽 생리를 잘 모른다. 위탁업체가 실행을 맡는데 이때 시너지 효과나 상승 효과를 낼 주체가 함께하면 활력을 높일 수 있다.
"갈꿈회가 엔터테이너거리 조성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조율하고 섭외하고 세부사항에 정보와 경험을 제공할 수 있죠."
그는 오는 10월 부산 개최가 최근 결정된 'WBFF(World Beauty Fitness & Fashion) 아시아 챔피언십 in 부산' 같은 행사에도 갈꿈회가 함께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이 행사는 보디빌딩 오디션을 바탕으로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강하고 파티와 오프닝 행사 등 다채로운 통로를 통한 시민 참여의 폭도 넓고, 건강 축제로 확대해 부산의 콘텐츠로 키울 확장성이 좋다"고 그는 설명했다.
갈꿈회는 역량이 어느 정도 익으면, 더 큰 무대로 진출하려는 지역의 대중예술인과 지망생을 위한 인큐베이팅(인재 육성)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경규 회장님은 여건이 될 때 부산시와 협력 아래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시도할 구상도 하고 있다"고 그는 소개했다. 고향 사랑으로 뭉친 '갈꿈회의 꿈'이 꽤 체계적으로 자라는 셈이다. 그 실무적 중심에 이재용 부회장이 있다.
1년 중 긴 시간을 전국 곳곳 촬영현장이나 수도권에서 보내느라 바쁜 배우 이재용이 유달리 '부산 문화'에 애착과 사랑이 큰 첫 번째 이유는 단순했다. "1963년생인 제가 부산에서 35년을 살았습니다. 영화와 드라마 활동을 하면서 수도권으로 제 거처를 아예 옮기고 부산 서울 왔다갔다 한 지는 15년이 넘었죠." 이 말은 이렇게 이해됐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부산.'
부산의 안과 밖을 모두 겪었다는 장점
그의 부산 사랑이 질기고 뜨거운 이유는 또 있었다.
"젊은 시절 부산에서 연극할 때부터 부산에 애착이 컸어요. 그때 언론이 부산을 놓고'문화 불모지' 같은 표현을 쓰면 화가 났죠. 서울 진출할 때는 칼을 갈았어요. 맞짱 한 번 떠보자는 심정이었죠. 저 자신뿐 아니라 후배들, 제자들을 혹독하게 트레이닝시켰습니다." 그는 여전히 예술과 생존 사이에서 날카로운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갈꿈회 회원을 모아 예술투어를 다니고, 서울 쿤스트독 갤러리 운영위원을 비롯해 문화예술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힙합 씬 청년들을 후원한다.
그러면서 그는 문화에 관해 부산도 알고, 부산 바깥세상 현실도 잘 아는 흔치 않은 존재가 됐다. 인터뷰 내내 유장하게 쏟아진 그의 '체험 바탕형 조언'은 설득력이 컸다. ▷부산은 '원 앤 온리(One & Only)' 콘텐츠를 창출할 조건이 여전히 매우 좋다 ▷부산에 살면서 막상 못 보는 많은 장점을 정리하자 ▷비행기 타고 김해공항에 착륙할 때 부산의 산, 강, 바다가 모두 보이는 건 환상적이다. 그래서 '드론' 같은 입체적 시각이 필요하다 ▷지속성 있는 실행플랜을 마련하자.
그의 제언과 아이디어를 다 담을 수는 없어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그와 헤어지면서 확실한 느낌을 받았다. 배우 이재용에게 부산에 대한 의리가 무척 소중하다는 것.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