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철 시인이 다시 '변화'의 문턱에 섰다. 먼저, 환경이 바뀌었다. 최 시인은 2010년부터 6년간 지냈던 도요마을(경남 김해시 생림면 도요리) 생활을 정리하고 지난해 12월 부산 기장군 일광면으로 이사했다.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예술감독이 일광면에 짓는 가마골 소극장에서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최영철 시인이 11번째 시집 '돌돌'을 출간했다. 최 시인은 부산 기장군 일광면에 들어서는 가마골 소극장에서 새로운 문학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실천문학사 제공

그리고 그의 나이 앞자리가 바뀌었다. 2014년 시집 '금정산을 보냈다'를 냈을 때 50대였으나 이제는 60대로 접어들었다. 나잇대가 바뀌니 세상 보는 눈도 조금은 달라졌다. 열한 번째 시집 '돌돌'(실천문학사)은 변화의 길목에 선 시인의 치열한 고민과 반성 끝에 나온 시가 실렸다. 최 시인을 기장군 일광면에서 만났다.

최 시인은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했으며, 시집 '일광욕하는 가구' '그림자 호수' '호루라기' '금정산을 보냈다', 산문집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 등을 낸 한국 시단의 중진이다. 백석문학상, 최계락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도요문학무크' 편집을 맡고 있다.

"도요마을에서 지낸 6년간 시를 많이 썼어요. 덕분에 시집을 두 권이나 냈지. 시인이라면 시를 남발할 것이 아니라 적게 써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나도 그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네." 그는 도요마을에서 연극과 문학, 예술인과 어울려 지냈다. 그곳의 생활은 고요하고, 외로웠다. "도요마을은 정적인 곳이에요. 종일 있어도 개 짖는 소리 한번 안 날 때도 많아. 처음에는 조용한 게 좋았는데 3년쯤 지나니 나 스스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더군요. 도요마을의 강이 곱게 흘러가는 게 좋았는데, 나중에는 그 강이 내 기운을 빼앗아 가는 것 같더라고. 그 외로움을 견디려고 시에 더 매달렸던 것 같아요. 도시에 있었다면 이렇게 시를 못 썼겠죠."

그래서일까, 혹은 나이가 들어서일까. 이번 시집의 시에는 인생에 관한 고민의 흔적이 뚜렷하다.

'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걸 깨달은 1초 전/내가 잘못한 게 많다는 걸 깨달은 1초 전/1초만 더 물어뜯게 해달라고 애원한 1초 전/(…)멀리 버려둔 지난 생이 순식간에 비상소집 된 1초 전/그것들 볼 낯이 없어 눈을 감아버린 1초 전'('1초 전')

'순한 것들은 돌돌 말려 죽어간다/죽을 때가 가까우면 순하게 돌돌 말린다/고개 숙이는 것 조아리는 것 무릎 꿇는 것/엊그제 떨어진 잎이 돌돌 말렸다/(…)/돌돌 저 먼데서부터 몸을 말며/여기까지 왔다'('돌돌')

"50대에는 청춘의 야망, 젊음, 이런 것을 일부러 의식했어요. 60대가 되니 그런 데서 무뎌지는 대신 세상을 넓고 깊이 보게 되는 것 같아. 젊을 때는 시가 단조롭더라도 지향하는 바가 뚜렷했지만, 이제는 시의 결을 섬세하고 촘촘하게 해서 더 두텁게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일까. 누군가는 제 시의 언어가 바뀌었다는 감상평을 내놓더군요."

시에 대한 고민은 더 치열하고 깊어졌다. 기초예술이 무너지는 요즘 세태가 시인을 더 몸부림치게 한 듯했다. "시인은 시가 가진 욕망이 침체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새로움을 추구해야 해요. 자기 방식에 자주 싫증 내야 하고, 새롭게 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져야죠. 내가 진짜냐 가짜냐 끊임없이 되물어야 하고. 스스로 혹독해지지 않으면 모두 가짜에요. 그런데 요즘 이런 질문을 던지는 시인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더 나아가 기초 예술을 하는 사람은 많은데 기초 예술을 제대로 하는 이는 줄어든 것 같아. 그런 현실이 안타깝죠."

최 시인은 이런 답답함을 지켜만 볼 수 없어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 달 가마골 소극장 개관에 맞춰 2층 북카페에서 다양한 문학 프로그램을 시도하며 새로운 문인공동체를 꾸리는 것이다. "새로운 가마골 소극장에서는 우리(이윤택, 최영철)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볼 거에요. 작가와 독자의 만남뿐 아니라 문학과 연극 춤 음악 등과의 만남, 문학인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강좌 등을 열 겁니다. 특히 울산과 포항의 문인도 초대해 '동남권 문학공동체'를 만들고자 합니다."

잔잔한 강 마을에서 벗어나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마을에서 새로운 기운을 얻은 최 시인은 변화를 시작했다.

김현주 기자 kimhj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