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원·익명시대 실험정신 더 필요

'이우환 라운드테이블' 행사장은 그 자체가 마치 이우환(81) 작가의 작품 같았다. 지난 25일 '2017년 이우환공간 라운드테이블'(본지 지난 24일 자 22면 보도)이 열린 부산시립미술관 별관 이우환공간 2층 전시실. 전시실 벽면에는 작가의 대형 회화작품이 걸려 있고, 바닥에는 크고 푹신한 방석이 깔려 있었다. 무대와 측면에는 간소하고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관객은 방석에, 발제·토론자는 의자에 앉았다. '불편한' 환경에 시간이 흐를수록 관객과 토론 참가자들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이리저리 몸을 꼬고 '요가 자세'를 취하는 관객도 있었다. "이우환 선생님에게 오늘 우리는 하나의 작품"이라고 김영순 부산시립미술관장이 농담 같은 진담을 던졌다.

	지난 25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이우환공간에서 열린 '2017 이우환 라운드테이블'에서 김영순 부산시립미술관장이 발제하고 있다. 맨 오른쪽 의자에 앉은 이가 이우환 작가다. 서순용 선임기자 seosy@kookje.co.kr

부산시립미술관은 이날 이우환공간 개관 2주년 행사로 국내외 미술전문가를 초청해 '아시아의 문맥에서 본 전후 아방가르드 미술과 이우환의 세계'를 주제로 라운드테이블을 열었다. 섹션 1에서 김 관장이 '이우환의 '만남'을 찾아:존재와 무를 초월하여', 아시아아트퍼시픽 엘렌 응 발행인 겸 편집인이 '이우환과 전후 아시아 아방가르드 운동의 계보학'을 발제했다. 이후 발제자와 이브클라인 재단 다니엘 모케 이사장, 국립현대미술관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 히말라야미술관 이용우 관장이 토론하고 관객과 대화했다. 4시간 동안 진행된 행사에서 비록 40여 명 관객이 몸을 비틀었지만, 집중력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우환 작가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관심과 호기심이 눈에 띄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1945년 이후 진행된 한·중·일 아방가르드 역사와 이우환 작가의 작품세계를 고찰했다. 이용우 관장은 "아방가르드는 형식이 따로 있지 않다. 실험성, 개혁성, 급진성 등 과거의 평가·가치·시스템에 새로운 목소리를 내고 제안하는 형식이 아방가르드"라고 정의했다. 객석에서는 "기존 질서에 저항했지만, 이미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시장에서 팔리는 등 제도권에 편입된 아방가르드를 어떻게 봐야 하나"는 날카로운 질문이 나왔다. 이우환 작가는 "캔버스에 점 하나 놓고 '이게 그림이다' 하면 일반인은 뭔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다. 시장에서 팔리는 것도 잘 알아서 팔리는 것이 아니다. 비슷한 작업을 반복하지만, 나는 매일 죽고 다시 태어난다. 늘 다르기 때문에 나는 살 수 있다. 조금이라도 개선하고 색다르게 하고 싶다. 내 자신도 아직 내 작품에 대해 잘 모르겠다. 이게 아방가르드 아닐까"라고 말했다.

아시아 아방가르드에 대해 김 관장은 "(아방가르드인) 일본의 모노하와 한국의 단색파는 2차 대전 후 세계로 발신한 아시아의 유일한 현대미술"이라 말했다. 이용우 관장은 "단일한 'ism(이즘)'이 없는 오늘날의 다원적, 익명적 시대에 실험정신은 더욱 필요하다. 실험정신이 강한 예술과 예술가가 빛나는 시대다. 실험정신이 빛난 아방가르드를 재조명해야 할 이유"라고 말했다.

이우환 작가는 이 행사에 앞서 작품 3점을 추가로 기증했다. '선으로부터(From Line)'라는 제목의 1974년, 1980년, 1981년 회화이다. 이로써 그가 부산시립미술관에 기증한 작품은 모두 28점이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