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 세계대전 끝난 현대의 시작점
- 장밋빛 꿈 꿨지만 강대국에 좌지우지
- 한국은 38선 등장하고 전쟁까지
- '희망의 0년'이 '최악의 0년'으로

- 트럼프시대·미중갈등 겪는 지금
- 우리는 또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0년'은 1945년을 말한다. 현대가 시작하는 해였다.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나던 해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그해에 인류가 가졌던 희망은 2017년 오늘 얼마나 성취되었을까? 72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패망한 일본군이 1945년 9월 베트남에서 항복과 무장해제의 뜻으로 영국 공군에 검을 바치고 있다. 글항아리 제공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일본과 독일이 침략했던 나라에선 환호가 퍼졌다. 환호성이 그치기도 전에 패전국에선 기아와 암시장이 판쳤다. 일본인과 독일인은 음식을 찾아 폐허 더미를 헤집는 삶을 살았다. 피로 물든 전쟁은 끝났으나 생존을 향한 처절한 전쟁이 시작되었고, 곧이어 전쟁범죄자의 심판이 이어졌다.

독일과 일본에서 누구를 얼마만큼 처벌하는지는 골치 아픈 문제였다. 일본에선 국민 대다수가 군국주의에 충성했고, 독일도 국민 대부분이 나치를 지지했다. 저자는 소련이 모든 나치당 출신을 정부 기관 직위에서 해고하라고 명령했으나 이는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그랬다면 독일 경제와 사회는 마비되고 붕괴하기 때문이었다. 일본과 독일에서 결국 '미미한' 군국주의자와 나치는 무사히 전후 체제로 흡수되고 말았다. 마침내 상징적인 전범만이 재판에 넘겨져 처벌되었다. 전범을 한 줄로 세워 몽땅 총살하겠다는 처칠의 견해는 실현되지 않았다. 역사는 우스꽝스럽고 잔인하다. 기시 노부스케를 비롯한 일본의 전범이 대부분 살아남아 전후 일본을 온전하게 재건한다.

1945년에 평화로운 세계 질서가 바로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구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는 오지 않아 치열한 갈등이 벌어졌다. 1945년 8월, 프랑스는 독립전쟁에 나선 알제리인을 무차별로 대량 학살했다. 9월 베트남의 지도자 호찌민이 독립을 선언하자 프랑스인과 베트남인은 서로 공격과 살인과 방화로 대응했다. 인도네시아 지도자는 네덜란드 식민주의자와 전투를 벌였다.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자는 '메르데카!'(자유)를 외치며 단검만 든 채로 탱크 앞으로 돌진했다. 힘의 논리가 이들의 운명을 결정했다. 저자는 이런 1945년의 복잡하고 다양한 갈등을 깔끔하게 우리에게 보여준다.

1945년은 백지상태였다. 나치와 파시즘은 몰락했고, 유럽과 아시아는 파괴되었고, 많은 피식민 국가가 독립했다. 새로운 출발이 가능한 듯 보였다. '독일 0년'이란 말도 나왔다. 일본에서도 1945년은 0년, 즉 폐허 위에서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는 완벽한 기회였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이 냉전을 벌이면서 '0년'은 희망을 가득 담은 백지에서 순식간에 미국과 소련과 각각의 나라들 이해관계로 얼룩져버렸다. '0년'은 '희망의 0년'에서 '갈등의 0년'으로 바뀌었다.

한국만큼 1945년을 열광하며 맞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8월 15일 일제에서 해방되자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무한한 장밋빛 꿈에 부풀었다. 그것도 잠시, 미국과 소련이 그은 38선이 등장했고, 친일파 청산은 사라지고 마침내 한국전쟁까지 일어나 최악의 '0년'이었음이 판명됐다.

2017년 오늘 우리는 1945년에서 어떤 과거를 보는 것일까?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제일주의'을 외치며 국제 질서를 바꾸고 있다. 강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은 한국과 전략적 동반 관계를 맺고 한국에 좋은 것은 중국에도 좋다며 한국을 껴안았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 MD 체계인 사드를 배치해 미국의 대중국 포위에 동참하려 하자 중국은 한국을 극도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사드는 '희망의 0년'이 아닌, '갈등의 0년'에 벌써 탄생했는지도 모른다. '갈등의 0년'은 미소 냉전을 거쳐 미중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경솔하게 사드를 매개로 미중전쟁의 한가운데로 휩쓸리며 몸을 마구 다치고 있다. 한국에게 지금은 2017년이 아니다. 끝없는 갈등의 '0년'이다. 오늘 한국의 진정한 국익은 어떤 선택에 있을까?

소설가·'작가의 드론 독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