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남은 소리, 영남은 춤'
- 부산은 영남춤의 결절점
- 학내문제 국한할 것 아니라
- 지역문화 차원에서 헤아려야

경성대 무용학과가 다시 폐과 위기에 휩싸인 것은 정말이지 작은 일이 아니다. 여기서 '작은 일'이 아니라고 한 것은 이 일이 단순히 경성대의 학내 문제에 제한되지 않음을 뜻한다. 부산이라는 거점 도시의 지역문화 그리고 한국의 춤예술 판도와 향방에서 보아도 생각할 것이 많고, 파장이 커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지난 11일 경성대 무용학과 재학생들이 부산 서면에서 대학 측의 무용학과 폐과 추진에 항의하며 거리 춤을 추고 있다. 사진 제공 이인우

경성대 대학본부가 전통이 깊고, 상징성이 컸던 무용학과를 폐과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대학 측의 고민은 나름대로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학내문제로 국한하고, 지역문화 차원에서 갖는 의미까지는 깊이 헤아리지 못했을 공산은 크다고 본다. 현재의 상황에 관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단안이 조만간 내려질 터인데, 그 과정에서 지역문화와 춤예술에 관련된 의미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는 없다.

부산은 한국 춤예술에서 한 축이다. 나머지 한 축은 서울이다. 예술의 한 장르로서 춤은 요즘 시대에 뛰어난 '확장성'이 있다. 커뮤니티 댄스로 이어져 지역사회와 만나고, 남녀노소를 위한 예술교육과 사회교육 현장에도 춤 전공자들이 활발하게 뛴다. 예술가의 국제 교류나 해외 진출에서도 유리함이 있고, 최근에 많이 시도하는 예술의 장르 간 융합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인정받는다.

부산에 있는 처지에서 안타까운 상황은 있다. 이처럼 지금까지와는 달리, 앞으로 쓰임새를 넓게 개척할 수 있고 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는 춤예술의 새로운 시도와 실험 그리고 개척이 주로 서울(수도권)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예술 형식으로 춤은 현재 전환점에 섰다.

이런 가능성을 눈앞에 두고, 부산 춤의 한 축을 맡아왔던 경성대 무용학과의 명맥이 끊긴다면 이는 지극히 안타깝고 아깝다.

춤이 부산 문화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한 요소라는 점도 중요하다.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라는 사실은 곧 앞으로 무궁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지역의 예술 자원이라는 뜻이다. '호남은 소리, 영남은 춤'이라는 오래된 명언을 떠올릴 때, 부산은 영남 춤의 결절점이다. 도시의 규모가 넉넉해 예술이 자랄 바탕이 있고, 예부터 이어지는 자산도 풍성하다.

국가 또는 부산시가 지정한 부산의 무형문화재 가운데 동래야류, 수영야류, 동래학춤, 동래한량춤, 동래고무 등이 모두 춤이다. 부산에서 춤예술의 꽃을 피운 예인의 맥은 두텁고 길다. 우선 생각나는 대로 남성만 꼽아봐도 이매방 문장원 태덕수 황무봉 정무연(이상 작고) 김진홍 등 수두룩하다. 남성이 이렇게 많다면, 여성은 더 많다는 뜻이다. 다만, 여기에 일일이 쓸 수 없어 양해를 구한다.

이런 바탕 위에 춤비평가 강이문(작고) 채희완 등이 체계를 잡고, 젊은 춤꾼을 배출했다. 한때 경성대 동아대 부산대 신라대 등 4년제 대학 4곳과 몇몇 전문대의 무용학과에서 신진을 배출하면서 부산은 '춤의 고장'으로 문화적 정체성의 공든 탑을 쌓았다. 부산시립무용단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립무용단이며,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도 있다. 서울을 빼면, 국립과 시립 무용단이 다 있는 도시가 또 있는가.

동아대 무용학과가 몇년 전 폐과되고, 신라대가 꿋꿋하지만 입지가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경성대 무용학과가 없어진다면 이는 결국 지역 문화 정체성 위기다. 이렇게 되면, 부산대 무용학과 또한 뼈를 깎는 자기 혁신을 하지 못하면 수도권의 압력을 못 이기고 위기에 빠질 공산이 크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무용학과 교수와 교육자의 책임도 크다. 예술교육이든, 커뮤니티 댄스든, 국제 교류든, 전통춤의 재발견이든 활로를 열고 혁신해서 꿈을 안고 춤을 추려던 학생들에게 희망을 줘야 했다. 하지만 변화에 느렸고, 폐쇄적이었다.

경성대가 무용학과의 운명을 어떤 방향으로 잡든, 그 뒤에는 이런 넓고 큰 의미가 있음을 알고 결정해주면 좋겠다.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