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가, 곳곳에 매화가 지천이다. 갑작스럽다 싶은 이 꽃의 개화를 대하며 우리는 겨울을 이겨낸 그 치열함에 감동한다. 참으로 이 꽃처럼 새로 태어남은 자기의 세계를 깨뜨리는 일과 함께 일어난다. 그러고 보니 불교는 깨뜨림의 종교이고 새로 태어남의 종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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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화 |
특히 한국 불교의 핵심을 이루는 참선은 매 순간 깨뜨림과 새로 태어남의 정신적 개화를 실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하여 혜능 스님은 생각 없음(무념·無念), 모양 없음(무상·無相), 머물지 않음(무주·無住)의 길을 제시하였다. 이 길은 깨뜨림과 새로 태어남의 동시 실천을 통해 완성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길은 세 가지로 다르게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같은 자리에 도달한다. 왜 그런가? 생각 없음이라 표현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각작용으로서의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모양에 따라 시비호오의 차별적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일을 가리킨다.
사실 모든 현상은 구체적이거나 추상적인 모양을 갖고 있다. 아름다움과 추함도 모양이고, 착함과 악함도 모양이고, 추구하거나 벗어나려 하는 것도 모양이다. 심지어 공조차 있음에 상대되는 없음이라는 모양(공상·空相)을 갖는다. 이러한 모양을 대하되 그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지 않는 것이 생각 없음이다. 도를 추구하고 번뇌를 버린다는 생각조차 없이, 지금 당장의 이 실상에 발 딛는 것이 생각 없음이다. 그러니까 생각 없음은 모양 없음과 동의어일 수밖에 없다.
모양 없음의 길을 제시하였지만 모양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라, 특별한 무엇을 설정하고 그것을 지향하지 말라는 뜻이다. 특히 모양이 없음을 강조하는 설법을 듣고 모양 없음을 개념화(개념이야말로 모양이다)하여 이에 집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허공과 같은 모양 없음의 차원을 따로 상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모양을 대하되 그것을 둘로 차별하지 않는 데 있고 그것에 지배되지 않는 데 있다. 그것이 바로 진여와 하나되는 평등의 길이며, 우주법계를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지금의 이 부처에게 돌아가는 길이다.
머물지 않음 역시 지금의 이것으로 드러난 실상과 하나로 만나는 일의 다른 표현이다.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특별한 무엇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생각은 인간의 본성이므로 이것을 소멸할 수는 없다. 다만, 폭포와 같이 쏟아져 내리는 생각의 물방울들을 그냥 흘러가도록 놓아두면 된다. 최고의 보배인 마니주는 붉은 것이 오면 붉게 변하고, 파란 색이 오면 전체가 파랗게 된다. 그렇지만 그것이 지나가면 그 뿐, 어떤 색의 흔적도 남지 않는다. 머물지 않는 마음이 그러해서 어떤 것에도 스스로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산이 구름이 오면 오는 대로 맞이하고, 가면 가는 대로 보내듯 현장과 하나로 만날 뿐이라야 하는 것이다.
특히 수행자에게 자기 수행에 대한 자부심은 가장 경계해야 할 머무는 마음이 된다. '법화경'을 3000독 했느니, 장좌불와를 10년 했느니 하는 공부 이력에 자부심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자아는 이미 수미산처럼 높이 솟아올라 있게 된다. 진정한 수행자는 그렇게 머무는 자리를 깨뜨리고 오로지 지금, 여기 이것으로 드러난 부처와 하나로 만나는 개화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동의대 교양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