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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불 꺼진 무대가 물었다, 당신은 고독하지 않냐고

연희단거리패 '황혼'

  •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
  •  |   입력 : 2017-03-02 19:18:18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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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년남녀
- 대화 속 희·비극 넘나들어
- 70대 맹인 연기한 명계남
- "관객 자신만의 질문 던지길"
- 5일까지 한결아트홀 올라

"당신은, 지금 누굴 안고 있는지 알고 있나요?"
지난 1일 부산 연제구 거제동 한결아트홀에서 공연된 연극 '황혼'(연출 채윤일)의 주역 김소희(왼쪽) 명계남이 열연하고 있다. 한결아트홀 제공
연극이 시작된 후 남녀는 계속해서 자신이 누구인지 구구절절 설명한다. '야스민'이란 이름의 여자는 50대 창부로 등장해 맹인협회 사무원, 배우로 거듭 말을 바꾸며 자신을 소개하고, 70대 맹인은 빈 국립대학 신방과 재학 중 핵폭발 현장 취재를 갔다가 눈이 멀어버렸다고 외친다. 각자의 무대를 맴돌던 이들이 비로소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지만, 여전히 혼란스럽다. 정말 야스민은 배우이고, 맹인의 속사정은 그러할까? 60분 내내 벗겨낸 이들의 정체를 아직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노인이 한 번 더 말한다. "야스민, 이건 정말 흉내가 아니야."

지난 1일 부산 연제구 거제동 한결아트홀에서 연희단거리패의 '황혼' 공연이 열렸다. 게릴라극장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채윤일이 연출하고, 탁월한 연기력을 인정받은 명계남과 연희단거리패 대표 배우 김소희가 출연했다.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투리니의 '알프스 황혼'이 원작으로, 지난해 11월 서울 게릴라극장에서 국내 초연했고, 부산에서는 오는 5일까지 공연한다. 부산 첫 공연인 이날 좌석 137석이 모두 매진됐고, 남은 공연도 좌석 80% 이상 예매될 정도로 반응이 좋다.

제목만 보고 노년의 삶을 그린 통속극을 예상했지만, 완전히 빗나갔다. 연극은 알프스 산장에 홀로 사는 70대 맹인에게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50대 여성이 찾아들어 끝없이 대화를 나누는 단순한 구조로 진행된다. 서로를 위로하는 노년의 로맨스를 그릴 것 같지만, 오가는 대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의 진실게임과도 같다.

채윤일 연출자는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어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알프스 산의 황혼은 '알펜 글뤼엔'이라는 고유명사가 존재할 정도지만, 종잡을 수 없이 바뀌는 아름다움 속의 현실은 도통 알기가 힘들다. 알프스 산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들의 이야기로 고독과 외로움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배우 명계남 역시 "즐거운 시간을 위한 연극이 있는가 하면, 고민을 던지는 연극이 있다. '황혼'은 후자다. 진실과 거짓, 희비극을 넘나드는 이야기 속에서 관객들이 자신만의 질문을 던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공연 내내 객석이 여러 차례 암전된 것은 독특했다. 이에 대해 채 연출자는 "감정에 빠져드는 것을 의도적으로 끊는 것이다. 계속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그는 "쉽지 않은 내용인데 반응이 좋아 나도 놀랍다. 배우들 덕분이 아닌가 싶다"고 웃었다.

실제 공연이 끝나고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관객들은 작품은 물론 배우에게 큰 관심을 드러냈다. 한 작품 안에서 모습을 바꿔가며 여러 역을 연기하는 방법과 두 사람의 호흡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김소희는 "내 몸을 빌려 여러 영혼이 왔다 갔다고 생각하며 연기한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지만, 줄리엣을 사랑하고 고집했던, 무대의 진입이 허락되지 않았던 여배우 '야스민'의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명계남은 "김소희와는 대학 동아리 공연 '우리 읍내'에서 함께 연기한 인연이 있다. 상당한 에너지를 느꼈고 호흡도 좋아 신나는 도전이었다"고 소감을 얘기했다.

한 남성 관객은 "명 배우야 워낙 유명하지만, 김 배우는 처음 본다. 전지현 씨와 오버랩이 되는데, 그간 했던 작품과 연희단거리패의 역사를 알려달라"고 질문하자 옆에서 듣던 명계남이 "밤새우겠다"고 받아쳐 극장 안이 웃음바다가 됐다. 평일 오후 8시, 토요일 3시, 일요일 4시. 2~3만 원. (051)868-5955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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