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나물 고사리 방아 정구지…
- 갖은 나물과 기장 해초에
- 밀가루 들깻가루 넣고
- 걸쭉하게 죽쑤듯 조리

- 넉넉지 못할 때 부족한 곡식을
- 바다에 지천인 해산물로 메운
- '보릿고개' 음식이던 것이
- 잔칫상에 빠지면 안될
- 기장의 대표음식으로

- 한솥 가득해서 이웃과 나누고
- 모두 배 두드리며 물러나야
- 제 맛을 내는 공동체 요리

예부터 우리나라는 공동체 문화가 발달해, 이웃 대소사에 마을 사람들이 가족처럼 참여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 특히, 기쁜 날은 잔치를 열어 마을 사람 모두가 축하하며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는 사이를 '식구(食口)'라 했던가. 이렇게 잔칫상 앞에서는 기분 좋은 덕담이 오가고, 없던 인정마저 넉넉해진다. 그리고 잔칫상에는 그 지역의 귀한 식재료와 향토음식이 총망라된다. 그야말로 지역의 음식문화가 거창하게 펼쳐진다.

지방별 대표 잔치 음식으로는 전라도의 홍어회, 경북의 돔배기 산적, 제주의 흑돼지 수육과 몸국, 경남의 해물찜, 강원도의 오징어순대 등이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그 외에도 참꼬막, 개복치, 올갱이, 문어, 갈비 등 수많은 식재료가 잔치 음식에 등장한다.

부산에서는 돼지수육이나 잡채, 파전, 생선회 등속이 빠지지 않는 잔치음식이다. 그중 기장 지역은 아직 잔치를 둘러싼 전통이 남아있어, 몇 가지 음식이 여전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매집찜을 가운데 놓고 돌미역, 멸치김치, 갈치섞박지, 붕장어 조림 등을 찬으로 낸 상차림.

■나물·해산물 총동원, 바다 향 물씬

매집찜과 기장 우묵, 기장 설치가 그들로 기장 우묵(본지 지난해 7월 27일 자 이 시리즈 제25회 보도)과 기장 설치(지난해 11월 23일 자 제37회 보도)는 앞서 소개한 바 있다. 그중 매집찜은 기장의 전통 향토요리로 집안 대소사나 잔치 등에 빠지지 않고 상에 오르는 대표 음식 중 하나다.

얼핏 보기에는 다양한 나물에 전분과 들깻가루를 넣고 걸쭉하게 쪄낸 '나물찜'과 흡사한데, 청정 바다를 끼고 있는 기장의 지리적 특성상 싱싱한 해산물이 넉넉하게 들어가는 것이 매집찜만의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다.

기장 해산물과 나물이 총동원되어 들어가고, 바다 향이 물씬 나는 '떡청각'(기장에서는 애지, 왜지라 부른다) 등 여러 해초까지 한 대접에 푸짐하고 넉넉하게 내는 음식이 바로 매집찜이다.

매집찜에 들어가는 재료는 무궁무진하다. 먼저 나물류로 콩나물, 고사리, 고구마 줄기, 정구지, 방아, 죽순, 표고버섯 등과 떡청각, 미역, 톳, 몰, 서실 등 기장 특산 해초류. 삿갓조개, 밀고동, 소라, 대수리('맵사리' '맵딸' 또는 '맵쌀고둥'), 군소 등 해산물. 계절에 따라 이토록 다양한 식재료가 매집찜에 들어간다. 여기에 밀가루와 들깻가루를 넣고 걸쭉하게 조리해 먹는다.

원래는 식량이 모자라 주위에서 흔히 나는 남새와 바다에 지천인 고동, 따개비 같은 바위살이 해물과 해초를 한데 넣고 밀가루로 끓여 먹었던 음식이다. 적은 곡식으로 양을 늘려 먹던 보릿고개 음식이었던 것. 때문에 재료도 있으면 넣고 없으면 안 넣는 식이다.

■국죽과 국찜 그리고 매집찜

부산 기장군 일광면 뚱보식당 김미애 대표가 매집찜을 푸짐하게 끓여내고 있다.

기장에는 매집찜처럼 바특하게 만든 음식으로 '국죽'과 '국찜'이 있다. 국물이 자작하게 있는 것이 국죽이고, 나물찜처럼 되직하게 만든 것이 국찜이다. 국죽은 원래 '나물이나 푸성귀를 넣어 끓인 죽'을 이르는데, '국도 아니고 죽도 아닌 음식'이라 '국죽'이라 한단다. 기장에는 대변을 중심으로 '멸칫국죽' 등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국죽보다 걸쭉한 음식을 '국찜'이라 하는데, 기장에서는 '붕장어국찜'과 '고등어국찜' 등이 있다. 그중 한 가지가 '매집찜'이다. 기장에서는 '매집찜'을 줄여 '매집'이라 하기도 한다. 기장 사람들은 국이나 죽처럼 먹을 때는 '국죽'으로, 안주나 간식 삼아 먹을 때는 '국찜'으로 먹는다.

매집찜을 취재하기 위해 수소문하다 보니, 기장 일광의 향토음식점 '뚱보식당'이 매집찜을 재현하고 있단다. 주인장 김미애(59)씨가 반가이 맞이한다. "기장에는 매집과 기장 우묵 없으면 잔치 못 하는 걸로 알아예. 전라도의 홍어회 같은 음식 아입니꺼?" 주방에서 매집찜을 만들던 김 씨가 매집찜을 단박에 정의한다.

"어릴 때 어무이가 자주 해주셨지예. 집에 있는 거섶과 고동, 따개비 넣고 슥슥 비비서 한 그릇씩 툭 던져주면 밥 삼아 간식 삼아 먹었다 아입니꺼. 기장 사람들은 여럿이 어울릴 때면 이 매집찜을 앞에 놓고 막걸리 한 잔씩 기울이기도 하고예." 옆에 있던 이웃 최해모(57) 씨가 거든다.

주방에는 구수하고 향긋한 매집찜 냄새가 가득하다. 재료가 육지 것, 바다 것 모조리 들어가기에 조리하다 보면 어느새 한 솥 가득해지는 음식이 매집찜이다. 그러하기에 가족이나 동네 사람들이 둘러앉아 먹는 음식일 수밖에 없겠다.

"매집은 철마다 들어가는 기 다릅니더. 그때그때 계절마다 나오는 것 털어 넣고 만드니까 안 그렇습니꺼." 봄에는 햇고사리, 여름에는 방아, 가을에는 청각, 겨울에는 미역 등 각각의 계절 특산물이 들어가기에 계절마다 각기 다른 맛으로 사뭇 재미난 음식이다.

■기장 향토음식에 더 많은 관심을

봄에는 싱그럽고 풋풋한 맛이, 여름에는 풍성하고 넉넉한 맛이, 가을에는 진하고 농후한 맛이, 겨울에는 바다 내음 그윽한 싱싱하고 상큼한 맛이 어우러져 잔치를 벌인다. 게다가 기장의 싱싱한 해산물이 매집찜에도 넉넉하게 들어가 든든한 보양식으로도 부족함이 없겠다.

지인들과 매집찜 한 그릇씩 받아들고 맛을 본다. 후릅후릅 맛있는 소리를 내며 잘도 먹는다. "음~ 매집이 잘 됐네. 뻑뻑하이 찰지고~" "왜지(떡청각) 냄새도 좋~고, 들깨향도 은은하이 제대로네." 모두 한 술씩 뜨면서 시식 평을 내놓는다.

매집찜 한술 뜬다. 청각에서 나는 싱그러운 바다 냄새가 푸들푸들하다. 미역향이 물씬 뒤따른다. 과연 해초 생산지 기장다운 '첫맛'이다. 서실, 몰, 미역, 톳, 다시마 등 제철 해초들도 총출동이다.

따개비와 맵쌀고둥은 쫄깃쫄깃, 밀고동은 부드럽다. 군소가 들어가면 쌉쌀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 콩나물은 아삭하고 고사리는 구수하다. 정구지는 알싸하면서도 해초의 찬 성질을 따뜻하게 데워주기에 서로 잘 어울린다. 밀가루가 들어가 부드럽고, 들깻가루 덕분에 고소한 뒷맛 또한 좋다. 반찬으로 나온 돌미역을 멸치젓에 푹 찍어 먹으니 식감과 젓갈의 풍부함이 끝 갈 데 없다. 서실도 입안에서 잔물결처럼 살강거리고, 멸치김치와 갈치섞박지 또한 멸치젓국, 갈치젓갈의 구수함을 잔뜩 품었다. 붕장어 조림 또한 매콤하고 짭조름하다.

이러구러 한 솥 매집찜으로 여러 사람이 배를 두드리며 밥상에서 물러난다. 기장의 식재료를 모두 맛본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배불리 먹고도 반 이상 남은 매집찜을 김 씨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한 대접씩 포장해 기어이 손에 들려준다. 훈훈한 인정이다.

그래, 어렵고 힘들었던 살림살이에도 마을 사람끼리 함께 먹고 함께 나누던 기장 음식, 매집찜. 기장의 음식문화사를 반영하는 음식이지만, 그 자리를 점차 잃어가는 음식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부가가치 높은 기장 음식의 상업화 연구와 소비 인구 저변 확대에 더욱 관심을 가질 때이다.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

취재 협조=부산 기장군 일광면 뚱보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