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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3> 성선경 시인과 시집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씨'

묵묵히 오늘의 삶 견디는 이들의 어깨를 어루만지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2-06 19:08:25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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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녕에서 태어나 마산서 살며
- 전통 서정을 바탕에 두고
- 일상을 시로 풀어낸 지난 30년

- 멸치 한마리, 밥과 반찬, 명퇴…
- 살아가는 모든 순간을 끌고 와
- 고된 하루살이에 희망을 준다

내 할아버지가, 내 아버지가 이런 삶을 사셨겠구나. 성선경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는 혹 자신이 걸어온 모든 길을 기록하는 형태를 '시'로 정한 것이 아니었을까.

시인이며 교사였던 그는 지난해 3월 명예퇴직했다. 그 심정을 담았던 시가 아마 연작시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의 한 편인 '한로(寒露)'일 것이다. '명예퇴직서(名譽退職書)를 앞에 두고/끝까지 가지를 움켜쥔 단풍잎같이 붉어져 볼 것인가/풀잎에 내린 찬이슬같이 끝까지 매달려 볼 것인가/놀란 자라목같이 밤새 주름진 생각의 관절들이/우두둑 우두둑 뼈마디 꺾이는 소리를 낸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한 집안의 가장인 우리들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평생을 일하고도 힘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고단한 일상을 견뎌내고 있을 수많은 '우리'들이 생각났고, 이 시대를 온몸으로 관통하는 '모두'가 생각났다.

시인을 만나면 묻고 싶었다. 산다는 일은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꿈과 야망이 있었고 힘과 열정이 넘쳤던 젊은 날들이 스러져갔어도 아직 가슴 밑바닥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음을, 서서히 스러졌던 그 과정조차 진정 아름다웠음을.

■창녕 출신 마산 시인, 두 고향 품다

성선경 시인이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비포 바닷가 마을'의 매화나무 앞에 섰다.
성선경은 1960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1987년 무크지 '지평'과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올해로 시력 30년이다. 시집 '모란으로 가는 길' '진경산수' '봄, 풋가지行'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파랑은 어디서 왔나' 등을 냈다. 그의 시는 전통 서정을 바탕으로 두고 일상을 이야기한다. 첫 시집부터 출판된 순서대로 읽다 보면 성선경이라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감히 짐작해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고향 창녕을 떠나 마산으로 온 뒤 지금까지 마산에서 사는 그는 '창녕 출신 마산 시인'이다.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마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인을 만나 성호동 임항선그린웨이로 향했다. 임항선은 경전선 마산역에서 마산항역을 이었던 철도로, 2012년 1월 26일에 폐선되었다. 현재 시민의 산책로로 사랑받는 이곳은 나무로 만든 시비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이어진다. 지역 출신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걷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이곳에서 성선경의 시 '별'을 만났다.

'아차 순간 내 헛디딘 잘못 하나로/그만 정한수 사발이 깨어져 흩어졌습니다./이렇게 깨어진 사금파리들이/저 하늘에 가득 찼습니다./나는 얼마나 잘못하며 살아왔을까요?/이젠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실제 그릇이었을까, 마음의 그릇이었을까. 그것이 깨지는 순간을 느끼고, 시인은 밤하늘의 별을 보았을 것이다. "저는 얼마나 많이 잘못하면서 살아왔을까요." 시비를 묵묵히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시

임항선을 뒤로 두고 비포리 바닷가로 향했다. "동지를 전후해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가 있지요. 그래서 동지매라고 하는데, 옆에는 도화나무가 서 있고. 필경 어느 선비가 이 쓸쓸한 바닷가에 자신을 유폐시킨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평소에 글이나 시를 쓰고 나면 복잡했던 머리를 식히기 위해 이곳을 찾고, 겨울에는 매화를 보기 위해 이곳으로 옵니다. 가끔 나 자신을 유폐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퇴직을 앞두고 '유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시인이 스스로 자신을 유폐하는 것은 어쩌면 시 속으로 그리고 자신의 내면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퇴직 후 펴낸 시집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씨'의 명태 씨는 명예퇴직을 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란다. "이제는 크게 화날 일도 없고, 웃을 일도 없는 명태 씨.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하며 지낼 명태 씨를 위해 세상에 떠도는 유머를 모아 쓴 시도 있어요. 명태 씨의 세속화 과정이죠."

이 시집에는 명태 씨, 아니 성선경이 느낀 삶의 무게와 빛났던 순간들이 담겨 있다. '내 한 때는 큰 바다를 꿈꾸었으나/망망대해에 어쩔 줄 모르고/이리로 저리로 쏠려 다니다/이제 여기//접시 위에/내 한 몸 편안히 눕히니/모두 부질없다'(시 '멸치 한 마리' 중)라는 구절이나, '불알이 떨어질라 달리면/세상 밖으로 쭉쭉/나아가는 줄 알았다./그대로 결승점에 도달하는 줄 알았다./정년을 몇 년 앞두고/문득 돌아보니 그저 제자리다./다람쥐 한 마리가/열심히/쳇바퀴를 돌리고 있었다.'(시 '누가 나에게 꿀밤을 쥐어주나' 중)는 구절. 그저 슬프기만 하지는 않다. 큰 바다를 꿈꾸었고, 세상 밖으로 쭉쭉 나갔던 순간이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시인에게도, 우리에게도.

그는 삶을 살아내는 일을 '밥罰'이라는 시에 이렇게 썼다. '내 새끼에게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이겠다고/내 밥상에 한 접시의 찬이라도 더 올려놓겠다고/눈알을 부릅뜨고 새벽같이 일어나/사랑과 평화보다도 꿈과 이상보다도/뭄뚱아리를 위해 더 종종거린 죄'라고. 그의 시는 사랑, 평화, 꿈, 이상을 가슴에 품고 오늘의 삶을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이 된다. 모든 사물과 현상을 끌고 와 삶을 증명하는 시를 쓰는 성선경 시인. 그는 퇴직하지 않은 현역 시인이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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