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제 한 편을 차지한 일본 '망가'
- 인상 깊었지만 상실감도 느꼈다
- 웹툰의 옷을 입고서야 빛을 본
- 우리 만화는 이제 시작이니까!
- 부산서 열리는 웹툰페스티벌
- 이런 멋진 축제로 만들어갔으면

부산의 웹툰작가 남정훈 박종찬 배민기 정규하 정영환 씨가 지난달 26~29일 열린 제44회 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 다녀왔다.

	한국관을 찾은 관람객에게 부산 웹툰 작가들이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프랑스의 작은 도시 앙굴렘에서 열리는 이 축제는 세계 최고의 만화 페스티벌로 유명하다. "어릴 때부터 가보는 게 꿈"이었다는 앙굴렘 참가를 위해 작가들은 자비(부산정보산업진흥원 일부 지원)를 들여, 부산서 20시간을 이동해, '꿈의 무대'를 밟았다. 이들은 한국관에 자신들의 작품도 전시했다 . 만화예술의 최전선, 앙굴렘 참가기를 배민기(부산경남만화가연대 대표) 씨의 기고로 싣는다.


지난달 26일 제44회 앙굴렘 만화축제가 개막했다. 모두 알다시피 프랑스는 예술의 나라다. 엄청난 예술품이 사람과 공존한다. 어쩌면 프랑스는 나라 자체가 예술품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앙굴렘은 날씨조차 예술이었다. 앙굴렘은 인구 약 4만 명의 작은 도시다. 만화축제 기간에만 떼제베(TJV) 열차가 앙굴렘 역에 선다. 첫날, 오전 9시도 안 됐는데 벌써 교통 정체가 시작됐다. 앙굴렘은 1년 중 축제가 열리는 딱 4일만 길이 막힌다는데 이조차 낭만적이다.

	자신의 작품 '몽당분교올림픽' 앞에 선 필자 배민기 씨.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축제 현장에 차린 한국만화홍보관에 나의 작품 '몽당분교올림픽' 세팅을 끝내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올해 한국관은 전시에 그치지 않고, 불어로 출간된 80여 종 한국 만화와 만화 관련 기업이 함께하는 비즈니스 매칭까지 준비했다. 올해의 앙굴렘만화축제에서 한국의 웹툰 관련 기업은 90만 달러(약 10억 5000만 원) 매출을 올렸단다. 나는 그림 그리고, 걷고, 햄버거 먹은 게 전부였는데 한쪽에선 그런 일이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인기 작가들이 모여 팬에게 사인을 해주던 출판사 부스와 독립만화 부스도 인상적이었다. 책을 사면 작가가 사인을 해주는데, 사인 금액도 각양각색이었다. 돈을 안 받는 작가가 있는 반면, 엄청나게 높은 완성도의 그림으로 팬에게 사인을 해주며 제법 많은 돈을 받는 작가도 있었다. 사인을 받으려는 독자는 모두 휴대용 낚시의자를 들고 다니며 한두 시간 기다리는 걸 서슴지 않는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부산의 웹툰 작가 5인이 '땡땡의 모험'을 창작한 만화가 에르제 흉상 앞에 섰다. 왼쪽부터 정규하 남정훈 정영환 배민기 박종찬 작가.

한국관은 '리틀 아시아' 부스에 속했다. 오래전부터 앙굴렘에 진출한 일본은 출판사별로 부스를 차렸다. 미국 만화를 포함해 유럽 만화 대부분이 한국이나 일본 만화처럼 연출이 친절하지 않다. 빼곡한 컷 안에서 빼곡한 대사를 읽어가며 화려한 그림을 감상해야 한다는 일종의 훌륭한 불편함이 존재한다. 그런데 여기 와서 일본 만화의 저력을 느꼈다. 2017년 앙굴렘의 공식 선정 작품 중 'demi sang'이라는 책이 있다. 이 작품은 이번 앙굴렘에서 본 작품 가운데 가장 기묘했다. 드로잉 스타일은 분명 프랑스 것인데, 컷 구성이나 연출 면에서 일본 만화의 느낌이 강했다.

이것만 놓고 일본 만화 스타일이 프랑스에 영향을 끼쳤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뒤에 알았다. 일본이 자국 만화를 세계 속에 심고 있다는 것은 앙굴렘 국제만화아카데미에서도 알 수 있었다. 아카데미 한쪽을 '망가(manga·일본 만화)가 차지했다. 많은 유럽 학생들이 일본 만화 '드래곤볼'과 '원피스'를 보는 장면은 인상 깊었다. 당연히 큰 자극을 받았지만 왠지 모를 상실감도 있었다. 그동안 우리나라 만화 마케팅은 "한국 만화가 좋으니까 보라"는 강압적인 방식이 아니었을까.

첫술에 배부르랴! 우리나라 만화는 세계 무대로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냉대받던 한국 만화는 웹툰이라는 새 옷을 입고서야 청소년보호법의 '주적'이 아닌 차세대 콘텐츠로서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 웹툰은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미성년자다.

	팬에게 그림을 그려주는 유럽의 작가.

앙굴렘에서는 관련 기업이나 지자체의 태도, 독자의 관심이 우리와 사뭇 달랐는데, 가장 달랐던 것은 작가가 독자를, 작품을 대하는 마음가짐이었다. 우리 마음가짐이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프랑스와 유럽의 만화가들은 만화가인 자신을 아주 자랑스러워한다고 느꼈다.

올해 부산에서도 웹툰 페스티발이 열린다. 아무쪼록 시민과 관련 기업 그리고 작가가 어우러져 멋진 만화페스티발을 만들기 바란다. 어르신부터 아이까지 즐겁게 만화를 보는 모습이 정말 기대되지 않는가. 동료 만화 작가들께도 말하고 싶다. 여러 만화축제를 경험해보시길 바란다. 가보니 정말 다르더라니까! 그래서 함께 우리 웹툰 페스티벌을 만들기를 희망한다. 현지에서 내 작품 '모스키토신드롬'이 10권가량 팔렸다. 지금쯤 전 세계에 뻗어 나갔겠지. 후후후!

배민기 웹툰작가·부산경남만화가연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