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매기 부리 닮아 '갈미조개'
- 명지에서 많이 나 '명지조개'
- 혀 빼 문 모양 탓 '바보조개'…

- 지역마다 이름만 다르고
- 다들 맛나다 입모아 칭송

- 아릿한 조개독 없어
- 회로 먹는 것이 맛의 甲
- 살강한 식감에 수육 샤부샤부
- 삼겹살과 함께 갈삼구이로

- 말린 것은 주전부리·밑반찬
- 된장·미역국에 넣으면 감칠나

`꽤 오래전 낙동강 지역의 한 모임에 초대받아 갔는데, 소주 됫병들이 몇 병과 함께 한 양동이의 조개를 삶아 안주로 내놓았다. 낙동강에 많이 잡히는 조개라면서 "맛이 달고 부드러워 술안주뿐 아니라 음식 재료로도 다양하게 쓰인다"고 했다.

	낙동강 하구에서 잡은 갈미조개로 조리한 갈미조개탕(앞쪽)과 갈미조개 수육. 주황색 속살이 깔끔하고 맛깔스러운 느낌을 낸다.

백합처럼 생긴 노란색 조개였는데, 복족(조개 혀나 발로 불리는 부분)이 밝은 오렌지색으로 참으로 먹음직스러웠다. 한입 먹어보니 연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적당하게 씹히는 육질이 대단했다. 달고도 단 육즙 또한 입 안 가득 풍성하게 흘러넘쳐 깜짝 놀랐다. 조개 자체에서 넘쳐난 뽀얀 육수도 '한 술 두 술' 뜰 때마다 그 시원함이 넓게 펼쳐지는 것이다.

무슨 조개가 이다지도 순하면서도 달고, 진한 감칠맛 속에서 깊은 시원함이 물결을 이루는 것인가? 부드럽고 연한 조갯살 속에 살강살강 속살대는 식감이 푸들푸들 살아있는 것인가? 참으로 훌륭한 식재료라 생각하며 그 조개의 정체를 물으니, 낙동강 하구에 사는 '갈미조개'라 했다.

◇ 깨끗한 모래톱 서식, 1~3월 제철

갈미조개는 낙동강 하구 다대포와 명지 앞바다, 가덕도 인근에 사는 조개로, 물이 깨끗하고 물살 좋은 모래톱 지역을 선호한다. 복족이 갈매기 부리를 닮았다고 '갈미조개'라 불린다.

원래 학명은 '개량조개'로 전국 해안의 모래밭이나 개펄에 분포하며, 산란을 앞둔 1~3월이 제철이다. 단백질과 비타민을 풍부하게 함유하며 맛 또한 이 시기가 절정이다. 낙동강 하구, 포항 등 동해 연안의 것이 품질이 좋고, 큰 것은 일본으로 수출도 한다.

지역에 따라 그 이름을 달리 부르는데, 전북에서는 조개껍질이 노란색을 띤다고 '노랑조개', 충청 지역에서는 누런 밀과 색이 닮아 '밀조개', 경북 포항에서는 낙동강 하구 명지에서 나는 조개라 하여 '명지조개', 강원도 해안 지역에서는 '명주조개', 부산의 낙동강 하구에서는 '갈미조개' 등으로 불리고 있다.

그 외에도 노란색 바탕의 조개껍질에 얼기설기 삼베무늬가 있어 '삼베백합', 일제강점에서 해방되던 해에 조개 생산이 많아져 기근을 면했다고 '해방조개'라 불리고, 일본에서는 잡힌 뒤에도 늘 입을 벌리고 혀를 빼물고 있다고 바카가이(ばかがい, 바보조개)라고도 한다. 쫀득하게 씹히는 맑은 단맛 때문에 일본 서민 초밥의 재료로도 인기가 높다.

◇ 낙동강 사람들 추억 속에도 생생히

낙동강의 갈미조개는 갈미조개잡이용 그물인 형망으로 채취한다. 주로 명지 앞바다 백합등 인근에서 잡는데, 닻을 내린 후 바닷속에 2개의 형망을 내리고 수심 5m 바닥을 100여m 정도 긁어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잡는다.

낙동강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배를 타고 이 갈미조개를 잡으러 다녔다. 끼니를 위해서는 가족 누구나 한 사람 이상의 밥벌이는 해야 했던 시절이다. 낙동강에서 조개를 잡는 김천열 씨가 회고한다. "갈미조개는 아부지 때부터 캤심니더. 낙동강 하구에 지천으로 있던 조갠데 참 맛있었지예. 하이고~ 그래도 어릴 때는 이 갈미가 엉성시리 싫었심니더."

갈미조개는 주로 겨울에 채취하기에 칼날처럼 살을 에는 찬바람 속에서 작업해야 했다. 어린 몸으로는 참으로 힘들고 벅찬 노역이었을 것. 뿐만 아니라 지금과 달리 조개의 다양한 조리법이 미비했기에, 조개의 속살을 일일이 까 햇볕에 말린 후 이를 팔아야 했단다. "쪼매난 손으로 조개를 까고 있을라먼 갯물에 담근 손도 시립고, 손가락이 부르터서 고생 많이 했지예. 그래도 말린 갈미조개를 심심풀이로 입에 넣고 오물거리면, 단물이 흥건하니 흘러나와 참 맛있었다 아입니꺼."

◇ 회, 갈삼구이 등 조리법 다채로워

	갈미조개와 삼겹살이 어우러져 환상의 맛을 내는 갈삼구이.

갈미조개는 뭐니 뭐니 해도 '회'로 먹는 것이 '맛의 갑(甲)'이다. 워낙 깨끗한 곳에서 사는 조개라 중금속 위험도 없을뿐더러, 특유의 아릿한 조개독도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낙동강 뱃사람들은 갈미조개를 잡으면 날것으로 즐겼다. 오래도록 씹으면 담백한 조갯살에서 단맛이 예사롭지 않게 배어 나와, 사람 마음을 흔쾌하게 한다.

그 외, 낙동강에서 맛볼 수 있는 갈미조개 음식은 '수육'과 '샤부샤부', '갈삼구이' 등이 있다. '샤부샤부'는 회 다음으로 갈미조개를 제대로 먹는 방법. 다양한 해산물과 채소로 맛을 낸 끓는 육수에 갈미조개를 살살 흔들어 입에 넣으면, 사각거리는 식감이 그야말로 감탄사를 자아낸다.

입을 갓 벌렸을 때 꺼낸 '수육'의 맛도 제대로다. 오동통한 몸통을 통째로 씹으면, 촉촉한 조개 살점에서 진한 육즙이 왈칵 쏟아진다. 살짝 쫄깃한 식감에 풍부한 육즙이 먹는 이의 마음을 풍성하게 한다.

'갈삼구이'는 원래 뱃사람들이 바다에서 돌아와 허기진 몸과 마음을 다스리던 음식으로, 낙동강 지천의 갈미조개와 두툼한 삼겹살을 함께 구워 먹은 데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배추나 깻잎에 불판에 익힌 갈미조개, 삼겹살, 콩나물을 함께 얹어 한입 크게 쌈을 싸 먹는데, 조개의 개운함과 고기의 고소함, 콩나물의 아삭거림이 조화를 이뤄 든든한 '보양식'을 즐기는 느낌이다.

건갈미조개는 갈미조개를 까서 말린 것으로, 부드럽게 쫄깃한 식감이 참 좋다. 원래 살이 달면서도 담백하지만, 이를 말리면 진한 감칠맛과 달큰한 맛이 농후해진다. 두고두고 반찬으로 먹거나 입이 심심할 때 간식으로 먹을 수 있다. 낙동강 사람들은 이를 산적으로 만들어 먹고 된장국, 미역국 등에 넣어 먹기도 한다.

◇ '부산의 향토 식재료'로 가꾸자

재첩이 지천으로 잡혀 대한민국 재첩의 원산지이자, 백합조개가 대량으로 서식해 '백합등'이란 모래톱까지 있었던 천혜의 자연 보고, 낙동강. 하구언이 건설된 이후 재첩과 백합이 거의 사라진 자리를, 그나마 갈미조개가 대신 이어가고 있는 요즈음이다. 갈미조개가 낙동강 사람들의 생업을 오롯이 책임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강으로 흘러드는 오염원 탓에 생산량이 예전만 못하단다. 워낙 맑고 깨끗한 곳을 좋아하기에 그렇다. 들큰한 육즙과 연한 속살이 그저 그만인 낙동강의 진미, 갈미조개. 갈미조개 생산을 위해 낙동강 하구에 종패를 뿌리고 강으로 흘러드는 오염원을 제거하는 등 민관이 힘을 합쳐 '낙동강 갈미조개' 복원에 나서고 있다. 앞으로 부산 사람들이 풍성하게 즐기는 '부산의 향토식재료'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